• 가습기 살균제 대책,
    피해기준 선정 "엉터리"
    피해자단체 "절반 훨씬 넘는 피해자들 인정도, 지원도 받지 못해"
        2017년 01월 16일 06: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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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등은 16일 정부의 ‘엉터리’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 발표 등 피해자를 배제하는 방식의 태도를 비판했다. 특히 20일 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대해선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천명이 넘는 시민을 죽게 만든 참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엉터리 판정을 남발하는 정부를 규탄한다”면서 “피해구제법안은 대폭 보완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과 관련해 1, 2단계로 분류되는 피해자 수가 대폭 축소된 결과를 발표하며 “폐질환 대상자 급격히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찬호 가피모 대표는 “환경부는 피해자 중심으로 이 사건을 대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며 “피해자 중심으로 판정을 서둘러야 하며 그 판정 기준은 모든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피모 등은 판정 등급의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에서 자의적으로 설정한 기준이 1, 2단계 피해자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3, 4단계로 분류된 피해자에 대해선 전혀 배상을 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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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이들은 판정단계 구분의 재정의와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관리방법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이들이 제안하는 판정단계 기준은 이렇다. 가습기살균제로 명백하게 발생할 수 없는 경우를 4단계 피해자로 규정한다. 제품노출조사 결과 노출이 안 된 경우 또는 가습기살균제 노출로 발생하는 질병이 아니라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확인된 질병만 4단계로 분류하는 것이다. 3단계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으나 아직 건강상 피해가 나타나지 않고 있고 질병의 잠복기 등으로 인해 우려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는 피해자들이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 나타난 모든 건강상 피해자는 1, 2단계로 분류하되, 1단계는 폐 손상이나 천식, 태아 사망처럼 인과관계가 분명히 확인된 경우이고, 가습기살균제와 질병의 인과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는 모두 2단계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이 같이 제안하며 “정부와 정부에 용역을 받아 진행하는 판정기준 연구자들과의 토론을 제안한다”면서 “피해자들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판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습기 피해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다. 새해 들어서만 2주 동안 39명의 피해자가 신고됐고, 정부 신고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1월 1일부터 13일까지 신고된 사망자만 10명에 달한다. 전체 피해 신고는 5,380명, 이중 사망자는 20,9%인 1,122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정부가 지원 대상이라고 판단하는 피해자 수는 급격하게 줄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1월 13일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 대상 188명 중 1단계와 2단계 판정비율 갈수록 낮아져 급기야 이번 판정에서 10% 이하로 떨어졌다.

    관련성이 확실한 1단계는 8명(사망1)으로 전체 4.3%에 불과하고, 2단계(관련성 높음)는 10명(사망 0)으로 5.3%에 그쳤다. 반면 정부지원대상에서 배제되는 4단계(관련성 거의 없음)는 154명으로 전체의 81.9%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정부가 지금까지 진행한 4회차 판정 중에서 이번 판정이 1단계 비율이 가장 낮다.

    정부지원대상인 ‘1단계+2단계’ 판정 비율의 흐름을 보면 이렇다. 2014년 4월 1차 판정 47.6% -> 2015년 4월 2차 판정에서 42% -> 2016년 8월 3-1차 판정에서 21.2% -> 2017년 1월 3-2차 판정에서 9.6%로 급락해왔다.

    반대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3단계+4단계’ 판정비율은 급격하게 증가추세다. 2014년 4월 1차 판정에서 51%-> 2015년 4월 2차 판정에서 69.2% -> 2016년 8월 3-1차 판정에서 78.8% -> 2017년1월 3-2차 판정에서 87.2%다.

    정부는 피해신고자 중 가습기살균제 사용과의 관련성을 판정해 1~4단계로 등급을 나누고 1~2단계 피해자에게만 의료비와 사망장례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가피모 등은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절반이 훨씬 넘는 피해자들이 전혀 인정도, 지원도 받지 못하는 3-4단계에 처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며 “더 심각한 것을 정부의 이런 입장을 악용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은 3-4단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은주 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 질병으로 폐 이식 수술까지 받았지만 3단계 피해자로 분류됐다. 안 씨는 3단계로 분류돼 병원비 등 배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특히 정부가 언론 등에 공식석상에선 3, 4단계 피해자에 대해 지원을 약속하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이 받은 지원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안 씨는 “환경부 장관은 방송에 대고 3, 4단계 피해자도 병원도 보내주고 모니터링을 해준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이제 보상 받았으니 병원 다니기 쉽겠다’고 하더라. 제발 먼저 어떤 지원이라도 해주시고 방송을 하라”며 “피해자들을 두 번, 세 번 울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과 관련해 최예용 소장은 “이 법안에 정부의 책임이 하나도 포함돼있지 않고, 징벌적 처벌 조항도 삐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적용 시효를 충분히 늘려 추후 나오는 피해자도 이 법안에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제조사로부터의 기금조성 상한선을 설정한 것에 대해선 “계속해서 피해자 수는 느는데 왜 제조기업으로부터 기금 상한선 두나. 이것은 국회가 제조사의 책임 덜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처럼 법안을 수정하는 것을 국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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