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꿈꿔야 해
    2016년, 문화부문에 치욕의 한 해
        2017년 01월 12일 1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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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계 내에서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권력의 문제였다. 문화예술인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수 있었다. 세속권력과 사익에서 분리된 순수한 가치의 세계라고 자평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발 빠르게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이야기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최소한 늦은 밤 술자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2016년 가을이 오면서 그 신화는 남김없이 깨졌다. 2016년은 문화부문에 있어 치욕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문화계는 고결한 존재가 아닌, 너저분한 사회의 한 귀퉁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예술인들이 권력관계 위에 있는 이들에겐 너무나 약했고, 아래에 놓인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가혹했다. 성별권력까지 쥐고 있다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은 덤이다. 좋은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을 두고 있다면, 아니 최소한 그런 이웃을 두고 있는 제자가 있다면 장관이나 기관장 정도는 꿈꿀 수 있었다. 그렇게 거머쥔 권력으로 지인들로 채워 넣은 작은 왕국을 건설하여 공적제도를 사유화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으니 도적질은 재빠르게, 아시아문화전당을 지나 동계올림픽으로 눈을 돌렸다. 그 중 특별히 총애 받던 이는 문화창조융합센터 하나 새롭게 얻을 수 있었다.

    억압 받는 이들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좋은 시절도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파편처럼 존재하던 각기 작은 부정들이 연결되자 너저분한 맨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충격적이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거나, ‘최순실-차은택 라인’으로 지목된 그들은 누군가의 동료였고, 선배이며, 후배였고, 스승이기도 했다. 그들이 속했던 직장과 학교에서는 좋은 사람처럼 여겨졌던 이들도 있었다.

    박근혜 게이트와 함께 포승줄에 엮여간 이들은 말이 없다. 아직 그 잘못이 알려지지 않은 자들은 겁에 질려있을 것이다. 성폭력 가해사실이 알려진 어떤 이는 거센 항의 속에 떠밀리듯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라졌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 세상이 나를 모함하니 내가 먼저 세상을 따돌리겠노라고 은퇴를 선언한 사람도 있었다. 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돌리면서 억울함을 토로한 이들도 있었다.

    ‘차은택 라인’으로 지목된 한 대학교수는 해명을 하고 싶으니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의 내막을 방대한 자료와 함께 풀어놓으며 자신이 얼마나 결백한 사람인지 증명하려고 애썼다. 역공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김종덕 장관과의 인맥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한 작가는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를 고소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친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허튼 소리하면 고소하겠다는 압력이었다. 해명하는 사람과 압력을 넣는 사람들 모두 지금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세간의 관심은 헌법재판소로 쏠렸다. 수많은 의혹과 문제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유야무야 되었다. 불충분하게 삭감된 ‘최순실 예산’의 빈자리는 국회의원들이 찔러 넣은 ‘쪽지예산’으로 채워졌다. 박근혜의 수첩에서 나온 정책과 법안도 별다른 저항 없이 진행되고 있다. 뒤늦게 그 실체가 밝혀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문화계에 깊숙하게 발을 담그고 있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기 어려운 사람의 이름까지 올라가 있었다. 문화예술인들의 방관과 공모가 없다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예술계 내부의 논란도 기억의 저편으로 흐릿하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성폭력을 행사했던 큐레이터가 복귀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돌리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해본 결과, 그냥 소문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불안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2016년, 문화계를 휩쓴 수많은 사건들은 민주적 질서와 공공성이 문화계의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한계는 이 두 과제에 대한 고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문화예술계의 정치·정책 감수성은 이권다툼과 문화선전에 머물러 있다. 인권 감수성은 전근대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를 파괴해오면서 예술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존을 넘어선 전망을 이야기해야한다. 지난해의 과제는 올해의 목표다. 2017년부터 문화계는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적폐를 해소하고 민주적 질서와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쌓아 올려야 한다.

    어떤 노랫말에서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스스로 발 딛고 서 있는 문화라는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한다.

    필자소개
    문화정책과 예술노동에 관심이 많은 미술비평가. 전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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