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 성장 아닌
    오랜 역사와 기반 가진 극우정당
    [유럽의 극우파-3]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2017년 01월 09일 10:18 오전

    Print Friendly

    ‘유럽의 극우파’ 앞 회의 글 “파시스트와 극우정당’ 링크

    반전과 반전을 거듭한 오스트리아 대통령선거는 무소속 반데어벨렌의 당선으로 끝났다. 대선 재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자유당(FPA)의 노르베르트 호퍼가 모든 여론조사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국가 수반을 극우정당에게 내어주는 것은 나치의 악몽이 남아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높은 투표율과 극우 반대 집결이 나타나면서 반데어벨렌의 완승으로 끝났다.

    벨렌

    녹색당 출신의 무소속 반데어벨렌

    재선거가 결정되면서 노르베르트 호퍼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았고 초반의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가 집권당인 사민당 후보를 제치고 결선투표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난민 문제였다. 시리아의 대규모 난민이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몰려들자 반난민 정서가 급등해진 것이다. 자유당은 재선거에서 확실한 당선을 위해 ‘난민 전원 본국 송환’이라는 극단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공약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으며 반(反)자유당과 호퍼 전선이 막판에 형성됐다는 것이다.

    더블린조약, 냉동트럭

    수만 명의 시라아와 이라크 난민들이 발칸반도를 지나 세르비아에 도착하자 세르비아는 헝가리로 가는 국경을 열어버렸다. 난민들의 목적지가 세르비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난민들의 목적지 역시 헝가리가 아니었다. 난민들의 최종 목적지는 사회안전망과 최소복지가 잘 되어있는 독일이었다. 난민들이 오스트리아로 향하면서 더블린조약이 EU 가입 국가들 사이에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약에 따르면 난민 신청은 ‘첫 번째 도착한 EU 가입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EU가 창설될 때만 하더라도 조약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유럽으로 EU 가입 국가가 확대되고,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하면서 첫 번째 국가인 헝가리가 모든 난민들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2015년 8월,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에서 버려진 냉동트럭이 발견됐다. 여성과 아이들이 포함된 71명이 모두 숨진 상태였고, 이들은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이었다. 유럽은 경악했다. 하지만 다른 냉동트럭 시도들이 이어졌다. 부다페스트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에 난민들이 무임승차하면서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는 EU 가입 이후 처음으로 직행 기차를 국경지역에서 환승으로 바꾸었다. EU 가입 국가들 안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슁겐조약이 협의도 없이 일시적으로 깨진 것이다.

    EU는 더블린조약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 뮌헨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언론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무력으로 막는 것도 불가능해지면서 뮌헨 외곽의 난민수용소는 급격히 늘어났다.

    모두들 독일의 메르켈 총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뜻밖에도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더블린조약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 조치는 몇 개월 만에 중단되면서 EU 가입 국가 할당제로 후퇴했다. 쏟아지는 난민들의 숫자도 문제였지만 모든 것을 난민문제로 돌리는 극우정당(AfD)의 공세가 먹히면서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민련(CDU)의 지지율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비엔나, 미하엘 호이플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던 2015년 10월 오스트리아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EU와 언론의 관심은 온통 비엔나 시장 선거에 주목했다. 오스트리아가 난민 문제로 헝가리의 유탄을 맞으면서 자유당의 지지율은 사민당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사민당의 미하엘 호이플 시장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길한 전망마저 등장했다.

    선거는 사민당이 39.4%를 얻어 32.3%을 얻은 자유당을 따돌렸다. 난민 문제의 회오리 한복판에서 치러진 선거를 감안하면 선전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선전이라도 하더라도 한때 50%가 넘는 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20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미하엘 호이플의 지도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됐다. 이를테면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등장한 것이다.

    비엔나를 제외하면 북부 티롤(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등 산간지역과 농촌지역은 자유당이 사민당을 추월하며 득세를 부렸다. 자유당은 ‘남부 티롤(이탈리아 돌로미티)을 오스트리아로 합병하자’는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을 자극했다. 남부 티롤 지역이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같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사민당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비엔나를 수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붉은 비엔나’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비엔나를 집권하고 있던 사민당은 기층 노동자들을 위한 대규모 공공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주택들은 단순히 주거의 미가 아니라 유치원, 도서관, 넓은 공원, 실내수도까지 하나의 공동체를 시도한 것이다. 90년 전을 감안하면 혁명적인 시도였다. 2차 대전 이후 지금도 그 유산을 이어받아 공공주택과 공공교통을 고수하면서 비엔나를 집권하고 있는 비결이다.

    칼막스호프Karl Marx Hof 1920년대 붉은 비엔나 당시에 지어진 공공주택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현재도 비엔나는 공공주택이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칼막스호프Karl Marx Hof 1920년대 붉은 비엔나 당시에 지어진 공공주택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현재도 비엔나는 공공주택이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하엘 호이플은 독일의 전 슈뢰더 총리와 비슷한 엘리트 코스를 걸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10대에 일찌감치 사민당에 입당한 후 착실히 단계를 밟아 비엔나에서 사민당 청년조직 대표의 자리에 올랐다. 곧이어 청년조직의 전국의장을 맡으면서 비엔나 지방의원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사민당의 전성기 동안 차세대로 기대를 모으며 마침내 사민당 비엔나 대표에 당선되었다. 그것은 곧 비엔나 시장에 당선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하엘 호이플은 20년 동안 사민당이 비엔나를 집권하는데 주역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붉은 비엔나의 계속된 지지율 하락은 단순히 난민 문제만이 아니었다. 유럽 전역에 다가온 경제위기에 오스트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높아가는 실업률과 마이너스로 향하는 경제성장률을 해결할 방법은 민영화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사민당은 배수진을 치고 있지만 새로운 전망은 제시하지 못한 채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미하엘 호이플은 붉은 비엔나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안전주행을 해왔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좌파적 기획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외르크 하이더, 하인즈 크리스천 스트라체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난민 문제를 틈타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것과 달리 오랜 역사를 가진 정당이다. 요컨대 전국적인 지역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전후 10년 만에 등장한 자유당은 표면적으로는 우파정당의 모습을 유지하며 간혹 극우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정도였다. 창당 이후 곧바로 의회에 진출한 자유당은 조금씩 지지를 늘려가며 성장해 갔다. 자유당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외르크 하이더가 당 대표를 맡으면서였다.

    비엔나 대학 법학교수인 외르크 하이더는 호감 인상, 뛰어난 언변, 해박한 지식을 무기로 공중과 광장을 뒤흔들었다. 극우정당의 성공 비결은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당들의 약점을 부각시키는데 있다. 삼박자를 모두 갖춘 외르크 하이더는 적격이었다. 하이더는 사민당이 아니라 중도우파 정당인 국민당(OVP)을 공략하면서 본격적으로 극우 색채를 드러냈다. 하이디는 사민당을 극좌로 모는 것은 표의 확장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공세를 국민당의 이도저도 아닌 무능에 맞추었다.

    1999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2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당은 과반수 확보는커녕 자유당과 엇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국민당은 사민당에게 연립정부를 제안하면서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날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연정이 유행이지만 이때의 붉은 비엔나, 사민당은 단호하게 국민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국민당이 자유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자 사태는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유럽의 국가들은 국제적인 공식행사에 국민당의 참석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차례로 내놓았다.

    중도좌파정당들만이 아니라 중도우파들도 줄줄이 성명서에 동참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외교관계를 단절하며 연립정부를 비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해졌다. 하이더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연정 유지파가 우위를 점하면서 희생양이 필요해지면서 하이더는 당에서 실각했다.

    연정은 유지됐지만 하이더를 지지하는 당내 세력들은 유지파를 공격하면서 당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불안한 연정은 와해되면서 조기총선이 실시됐다. 자유당은 20년 전의 지지율로 후퇴하면서 몰락했다. 유지파들은 모든 책임을 하이더에게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불안한 연정은 막을 내리고 조기총선이 실시됐다. 자유당은 20년 전의 지지율로 후퇴하는 냉정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은 다시 내홍에 휩싸였고 그 중심에는 하이더가 있었다. 하이더는 당을 떠나 ‘미래연합’이라는 새로운 극우정당을 창당했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하이더를 앞세운 미래연합은 2008년 총선에서 21석(전체 183석)을 얻으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스트라체2

    하인즈 크리스천 스트라체. 자유당을 이끌던 외르크 하이더가 당의 내분으로 떠난 위기에 등장해 1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표주자가 불확실한 자유당에 30대의 젊은 하인즈 크리스천 스트라체가 등장하면서 단숨에 이전의 지지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스트라체는 젊은 날의 하이더의 판박이라도 해도 좋았다. 하이더처럼 삼박자를 갖춘 것을 넘어 정치후각도 뛰어났다. 극우 발언만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포퓰리즘 공약으로 유권자의 시선을 잡아끌기도 한다.

    총선이 끝나고 얼마 후 하이더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스트라체를 앞세운 자유당은 미래연합의 지지기반을 빠르게 흡수했다. 두 개의 극우정당이 3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올리자 사민당도 더 이상 국민당과의 연정을 거부할 수만은 없었다.

    오스트리아 좌파는 지금

    동유럽 국가들 중에 중도좌파의 희망은 여전히 오스트리아 사민당뿐이다. 인접국가인 헝가리의 중도좌파 사회주의 노동당(MSZP)은 극우정당 청년민주동맹(피데스)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도 모자라 파시스트 정당인 요빅당(Jobbik)의 추월을 걱정해야 할 신세로 전락해 있다. 전국적인 지지기반이 무너져 당분간 재기하는 것은 어렵다는 전망이다.

    체코 집권 사민당(CSSD)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중도우파 포풀리즘 정당인 ‘예스(ANO)’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예스(ANO)는 체코의 농업재벌인 안드레이 바비스가 ‘불만족시민운동(ADC)’을 기반으로 창당한 정당으로 막강한 자금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의 베페 그릴로가 오성운동이라는 시민단체를 기반으로 창당한 것과 닮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 자체를 그대 베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주요공약도 부패 청산, 반EU , 반난민으로 차이점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사민당의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총리는 예스(ANO)의 반대로 EU 난민 할당제를 의회에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가을에 있을 총선에서 예스(ANO)가 사민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집권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민당이 자유당에게 1위 자리를 내준다고 하더라도 집권은 계속 가능할 전망이다. 오스트리아 녹색당(DG-DGA)이 10% 이상의 고른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민당의 지지율이 계속 추락해 녹색당과 과반수가 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른 중도우파정당을 연립정부에 포함하게 된다면 사민당의 정치는 계속해서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중도좌파정당들이 그렇듯이 수세적인 대응으로 일관한 오스트리아 사민당도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