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파업과 똘레랑스
    "사용자단체 구성을 의무화하라"
        2017년 01월 06일 1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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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으레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시민의 발을 담보로…”라거나,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현실에 또 하나의 부담…”이라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면 파업에 동조하는 진영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시민들이 파업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를 예로 들며, 한국에서는 남의 주장을 존중하는 똘레랑스가 부족하다는 응답을 한다.

    그런데 과연 똘레랑스는 프랑스인들의 국민성일까?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남의 주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프랑스에서는 오랜 동안 쌓여온 배려에 대한 문화적 전통이 있어서일까? 그렇다면 한국은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적 전통이 없다는 말인가?

    한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나 가치관은 단 하나의 원인으로 귀속시켜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파업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를 설명하는 데는 똘레랑스라는 말 하나로 해결되고, 그 똘레랑스는 프랑스 사람들의 성숙한 문화적 태도로 인해 생긴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만 사용된다.

    프랑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 서두가 길어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동조합에 관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튼 파업에 그토록 관대한 프랑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8%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단체협약 적용률은? 이것 또한 놀라지 마시라. 98%에 가깝다. 즉 노동조합 조직력은 대단히 약하지만, 단체교섭의 결과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같이 누린다는 의미다. 비록 나는 싸우지 않더라도,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는 나한테도 혜택으로 돌아온다. 어찌 파업에 대해 관용적(tolerant)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표 2개

    위 도표는 노조 조직률(2012.OECD) 아래는 단체협상 적용률(2013. OECD. 맨 왼쪽이 한국. 맨 오른쪽이 프랑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15년 기준으로 10.2%에 불과하다. 민간 사업장의 경우만 별도로 보면 9.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단체협약 적용률은 얼마나 될까? 12% 정도로 조직률을 아주 조금만 넘어설 뿐이다. 무슨 말인가? 단체협약은 단체교섭을 하는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만 적용된다는 뜻이다.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나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파업은 오히려 짜증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조합원들이 열심히 싸워 임금을 인상하면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도 연쇄효과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꿈같은 소리다. 그런 시절은 80년대 후반 잠시 있었을 뿐이다. 기업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여 정규직의 높은 임금을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으로 조절하고 있다. 대기업의 임금인상은 중소기업의 임금인상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격차를 확대할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에서 파업에 대한 똘레랑스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의 가치관이 형편없어서도 아니고,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적 전통이 없어서도 아니다. 제도와 체제가 노동조합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단체 의무화와 산별교섭 법제화

    그러면 노동조합은 그동안 가만히 있었을까? 이 문제를 알고 있었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가치에 기반을 두는 산별노조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 노력은 2015년 기준으로 조합원의 56.7%가 산별노조를 포함한 초기업노조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2000년 들어 본격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정확하게는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이 이루어지고, 금속, 금융, 보건의료 등의 산별노조에서 산별교섭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산별교섭은 초기보다 점점 후퇴하고 있다. 말은 산별이라 하지만 산별 임금은 전혀 형성되지 않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아직까지 듣기 좋은 구호로만 남아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 노총의 존 스위니 전 위원장처럼 팔 걷어 부치고 조직화에 모든 노력을 집중합시다라고 외치면 해결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민주노총의 3기까지 이어지는 전략조직화 사업처럼 조직화 노력은 한국의 노조 활동가들도 열심히 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은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형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그 자체로 지속되어야 할 사업이고, 여기서 별도로 강조하지 않겠다.

    나는 제도를 바꾸는 사업을 제안한다.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실에서는 제도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리라 본다.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단체협약 적용률 확대를 법제화하는 방안이다. 또 하나는 산별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용자단체를 의무적으로 구성하는 방안이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에도 일반적, 지역적 구속력이라고 하여 단체협약을 확장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장의 범위를 벗어나서 적용되지 못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나라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처럼 노동조합 조직력이 강하고 산별 교섭력을 통해 실질적으로 단체협약의 적용률이 높은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처럼 노동조합 조직률은 높지 않지만, 법제도를 통해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경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직률도 최하위 수준이고, 단체협약의 효력을 확장하는 법과 제도도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법을 정비하여 제도적으로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은 산별교섭을 의무화하고 그 결과인 협약의 적용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산별교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교섭대상이 불특정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용자단체 구성을 의무화하여 노사 간의 단체교섭을 필수적으로 진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임의적 사용자단체는 노동조합의 힘이 아주 강력해야 운영될 수 있다. 노동조합의 힘이 약한데, 사용자들이 무슨 선의로 단체를 유지하려 하겠는가.

    똘레랑스와 배려가 없음을 탓하지 말자. 촛불을 통해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정당성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하는 운동에 그치지 말자. 대한민국을 개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가자. 사용자단체 의무적 구성을 법제화하고, 단체협약 실질적 효력확장제도를 도입하자. 우리 국민들도 충분히 관용적일 수 있다.

    필자소개
    정의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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