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터를 보는 두 가지 시선
    [그림책 이야기]『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로레인 프렌시스. 피터 고우더사보스/ 소원나무)
        2017년 01월 03일 1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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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의 내용이 시선을 끌어당기다

    저는 컴퓨터로 작업한 그림보다 종이나 캔버스에 직접 그린 그림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섬세하게 작업을 하더라도 컴퓨터의 도움을 받은 그림은 종이나 캔버스에 그린 그림보다 차가운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컴퓨터 그림과 종이 그림은 그림의 온도가 다릅니다.

    그런데 『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는 딱 봐도 컴퓨터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스타일은 제 취향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지가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림의 스타일이 아니라 바로 그림의 내용이 제 시선을 끌어당긴 것입니다.

    표지에는 여섯 개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개의 풍선을 묶은 줄은 어떤 꼬마의 오른손 손목에 감겨 있습니다. 꼬마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데 눈을 감고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꼬마는 잠이 든 것입니다. 왼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팔을 뻗어 꼬마의 오른쪽 다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꼬마는 잠들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월터

    면지부터 특이하다

    책의 구성도 특이합니다. 면지에는 노란 바탕에 청색 다이아몬드 무늬가 빽빽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얼핏 보면 벽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사각형의 타일을 이어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타일을 붙여서 만든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금세 이상한 환각 상태에 빠질 것만 같습니다.

    특이한 것은 면지만이 아닙니다. 면지를 넘기면 판권 페이지가 나오고 그 오른쪽 페이지에서 바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보통 다른 책에서는 판권 페이지 오른쪽에는 속표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은 판권 페이지 오른쪽에 그림이 나온 것입니다.

    그림에는 6층짜리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밖에도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1층 현관에 개 한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이 개는 누구의 개일까요?

    아무데서나 잠들다

    월터는 방에서만 자는 게 아니었어요. -본문 중에서

    누군가 이 텍스트를 읽는다면 분명히 궁금할 것입니다. 월터가 방에서만 자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잔다는 뜻일까?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월터는 방에서만 자는 게 아니었어요.’라는 텍스트가 나오는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월터1

    월터가 잠든 곳은, 방도 아니고 거실도 아니고 부엌도 아닙니다. 바로 수영장입니다. 월터는 수영장에 들어가 하늘을 보며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수영장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 있는 아빠는 전화 통화를 하는 중입니다. 엄마 역시 컴퓨터를 보며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월터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잠이 듭니다. 시리얼을 그릇에 담다가 잠들고, 혼자 그림을 그리다가 잠들고, 혼자 시소를 타다가 잠들고, 심지어 엄마와 함께 아쿠아리움에 가서도 잠이 듭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부모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

    월터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잠자는 월터 이야기를 보는 두 가지 다른 시선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아무데서나 잠에 빠지는 월터 이야기를 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볼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아무데서나 잠에 빠지는 월터의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걱정될 것입니다. 전자는 인생의 슬픔을 모르는 어린이의 시선이고, 후자는 인생의 슬픔을 아는 어른의 시선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세대 간 시선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예술 작품을 보는 즐거움과 의미는 독자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작품을 바라보는 세대 간 시선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그 작품이 특히 어른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는 특히 어른 독자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저 역시 『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를 보는 내내 충격과 공포를 겪었습니다. 아무데서나 잠든 월터가 행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본, ‘기면증’을 앓던 소년(리버 피닉스)과 친구(키에누 리브스)의 여행을 다룬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아이다호>가 떠올랐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호오포노포노

    옛날 하와이에서는 누군가 병이 들면, 환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자신들이 어떻게 환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서로 고백하고 사과하는 의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환자의 마음을 달래서 환자의 병을 치료한 것입니다. 그 의식을 ‘호오포노포노’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프면 무조건 병원에 갑니다. 하지만 놀라운 현대의학이 고칠 수 없는 병들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호오포노포노’ 같은 사랑의 치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월터!』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을 달래주는 ‘호오포노포노’ 같은 그림책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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