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과 공부와 인생
[딸바보 입시산 동행기➂] 첫 산행
    2017년 01월 02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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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회의 글 ‘공부동냥과 선행학습’

방학인데도 날짜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딸은 주말마다 바빴다. 매주 토요일엔 청소년 독서 토론에 참여했고, 일요일엔 이 친구들 저 친구들 약속이 잇따랐다. 동반 산행이 흐지부지 되겠다 싶었다. 채근해서 날짜를 잡았고, 수차 다짐받았다. 그래서 2월 3일에야 산행에 나섰다. 딸과 나는 해가 중천에 솟아서 깨었다. 서둘러 씻고 아점을 먹은 뒤에 두둑이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나는 동반 산행의 중심 산으로 북한산을 점찍었다. 산보 구간과 바위 구간, 능선 구간과 계곡 구간 따위가 풍부했다. 한편으론 부드럽고 아기자기했으며, 한편으론 거칠고 웅장했다. 집에서의 거리도 적당했다. 딸은 좋다고 했다. 불광역에 도착해서 독박골로 등산을 시작했다. 산행의 기초를 얘기하며 천천히 산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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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이어질 동반산행의 첫 출발지에서 딸아이의 사진을 찍었다

“누리야, 산행 시작하면 처음 30분 정도는 천천히 걸으면서 발과 심장을 산길에 적응시켜야 해. 의욕과 힘이 있다고 무턱대고 속도부터 내면 더 빨리 더 많이 지쳐. 대체로 초보들이 범하는 오류야. 몸이 금방 한계에 부딪혀서 산행의 맛을 느끼지 못하지. 산이 싫어질 수도 있어. 산길, 나무, 꽃, 새소리, 경치 등을 맛보며 천천히 걸으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산에 적응되고 속도는 저절로 붙어. 앞으로 3년간의 입시 공부도 산행하듯이 해. 1학년 땐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상태만 유지해. 의욕이 앞선다고 처음부터 욕심내고 덤벼들었다가 지치거나 쓰러지면 3년을 완전히 망칠 수 있어. 2학년 올라가서 좀 더 집중하고, 3학년 올라가서 온힘을 쏟아 부으면 돼.”

딸은 귀담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 함께 오르는 산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좌우로 구불구불 했고 상하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내 인생이 산길처럼 심하게 굴곡졌다. 문득 딸의 인생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스런 마음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산길이 삐뚤빼뚤하잖아. 이 길처럼 인생도 오르막만 있는 게 아냐. 정상을 향하다가 느닷없이 내리막을 구르기도 하고, 똑바로 가는데 갑자기 휘어지기도 해.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아야 돼. 결코 정신 줄 놓으면 안 돼.”

딸이 태어나기 전에 끔찍한 일이 있었다. 내 막내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떴다. 엄마는 실성 상태였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만 했다. 난 방에 틀어박혔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잠들 때마다,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다 며칠 만에 마음의 멱살을 움켜잡고 휘청거리며 방을 나섰다. 악착같이 살아서 엄마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이젠 가족 누구도 엄마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된다는, 순서대로 죽어야 한다는 간절함이었다. 딸에게 가족사의 아픈 자락을 꺼내면서 다짐을 받았다.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삶을 포기하면 안 돼. 남은 가족들에겐 지옥이야. 누리야, 알았지? 꼭 명심해야 돼.”

“알았어, 아빠. 절대 그러지 않을게.”

딸은 굳게 약속했다.

딸은 산행 틈틈이 물과 귤로 갈증을 달랬다. 준비해 간 게 모자랄 듯싶어 나는 참았다.

“아빠도 먹어.”

딸내미는 괜찮다는 내 입에 귤을 넣었다. 참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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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부리봉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족두리봉에 도착했다. 아직 바위에 익숙하지 않은 딸은 겁을 내며 더듬더듬 올랐다. 봉우리는 맑으면서도 써늘했다. 배낭에서 계란을 꺼냈다. 노른자를 익히지 않은 반숙이었다. 속이 안 터지게 조심스레 까서 넘겼다. 아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며 반응을 기다렸다.

“맛있다! 맛있다!”

딸은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도 해 볼래.”

아이는 조심조심 껍질을 까서 맛나게 먹었다. 흐뭇했다. 반숙은 딸과의 산행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역작이었다. 냄비에 계란을 넣고, 계란의 4분의 3까지 물을 채우고, 가스레인지에 붙어 8분 30초 시간을 재고, 즉시 싱크대로 옮겨 찬물에 담아 만든 작품이었다. 목마른 산에선 빡빡한 완숙보다 부드러운 반숙이 좋다는 경험의 산물이었다.

딸은 선행 학습을 얘기했다.

“영어가 재밌어. 중학교 땐 문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어. 근데 수학은 잘 따라가지 못해. 문제 푸는 속도가 느려서 그래. 다른 애들은 일찍부터 학원 다니며 다 배워서 빨리 풀고, 나는 오랫동안 혼자 공부해서 느리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문제 풀 땐 스트레스 받아. 선생님한테 얘기했더니, 수업 하루 전에 미리 시간을 내줄 테니 와서 물어보라고 했어. 그렇게 할 거야.”

딸아이는 답답해했다.

“아빠 닮아서 그런가 보다. 고등학교 때 엄청난 수학 깡통이었거든. 아빠가 대입 연합고사 볼 때 수학이 2교시인가 그랬고, 다른 과목 몇 개를 합쳐 2시간이었어. 우선 1문제 1점인 암기 과목들부터 풀었지. 40문제인가 했는데 20분도 안 걸렸어. 그러고서 1시간 40분 동안 수학을 풀기 시작했지. 25문제였고, 1문제 2점이었어. 끙끙대며 3문제 풀고 나니까, 감독관이 시간 다 됐다는 거야. 쪽팔림 무릅쓰고 재빨리 연필을 굴렸지. 나중에 결과를 보니까 18점이나 나왔더라고. 대박 난 거지. 3개 풀고 6개 때려 맞춘 거야. 아빠는 지금도 숫자 계산을 못해. 인생 계산도 못하고.”

“아~ 하하하.”

딸은 크게 웃었다.

“문제가 안 풀려도 스트레스 받지 마.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러고서 나는 딸에게 인생 설계를 제안했다.

“교대를 생각해 봐. 초등학교 선생은 다른 직업에 비해 일찍 퇴근하고 방학이 있어서 여유가 있어. 문학이든 취미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지. 아빠는 네가 교사를 하면서 작가가 되면 좋을 것 같아. 넌 어려서부터 언어 능력이 있잖아. 방학 때를 활용해 해외여행 가서 세상 견문 넓히고 여행 작가가 될 수도 있지. 교사는 20년만 채워도 연금이 많아서 생활도 안정적이야. 너흰 과학이 발달해서 120살까지 살게 될 거야. 퇴임 후의 삶을 설계하지 않으면 안 돼. 이 나라는 노인 복지가 엉망인 나라야.”

“중학생 정도는 그래도 좋을 것 같은데, 애들은 좀 그래. 답답할 것 같아.”

딸은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농담을 던졌다.

“너, 선생 말 안 듣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런 거지.”

“그게 아냐. 작가는 하고 싶지 않아. 중학교 때까진 꿈이 많았는데, 다 아닌 것 같아. 지금은 뭘 하고 싶은 게 없어. 뭘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대학을 선택할 때까지도 꿈이 없으면 교대도 생각해 볼게. 근데 교대는 전부 1등급이어야 하는데…….”

딸아이는 진지했고, 말끝을 흐렸다.

내 발걸음이 빨랐는데, 아이는 잘 따라붙었다. 오를 때는 평범한 구간보다 바위가 적당한 구간을 좋아했다. 동반 산행이 순항하리란 느낌을 받았다. 향로봉까지 갔고, 탕춘대를 거쳐 이북5도청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가파른 바위 구간이었다.

“아빠,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무서운 것 같아.”

딸은 손발과 엉덩이를 바위에 붙이고 엉금엉금 기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아빠도 그래. 밑으로 낭떠러지가 보이니까 그런 거야. 그래서 산은 올라갈 때 힘들고, 내려갈 때 무서워. 그런데 누리야, 산은 내려갈 때 더 많이 조심해야 돼. 산에선 하산할 때 사고가 많이 나. 평평한 구간에서 넘어지고 굴러 떨어지기도 해. 방심하다 그렇게 되는 거야. 이미 많이 지친 상태라서 그렇게 되는 거고. 너도 지금 발에 힘이 빠져 있잖아. 길 좋다고 방심하다간 큰 사고 날 수 있어.”

내친김에 인생을 빗대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잖아. 그것처럼 세상 이치는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하산하게 되어 있어. 아까 우리가 족두리봉에서 경험한 기쁨처럼 인생도 정상에 오르면 희열을 느끼게 돼. 그래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지. 하산길이 무서워 머뭇대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인생이 추해질 수 있어. 정상에서의 희열도 남기지 못하고 망가지는 사람이 수두룩해. 비참하게 죽는 사람도 있어. 너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해. 삶의 정상에 오르면 하산이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언제 하산을 시작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야.”

“알았어, 아빠.”

산행을 마치고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갔다. 딸은 들깨칼국수와 두부김치, 나는 막걸리에 두부김치, 술잔이 2개 딸려 나왔다. 딸애와 나는 마주보고 킥킥거렸다. 중학생인데 술잔이 나왔다는 웃음이었다. 이왕에 조금 따라 줬다. 딸은 이번에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칼국수와 두부김치를 먹었다. 막걸리도 맛 봤다. 다 먹고 나선 이거 보라며 빵빵한 배를 내밀고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나는 파안대소하며 사진에 담았다. 음식 값 1만9,000원.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산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흡족해하며 배를 위아래로 쓰다듬는 딸아이

하산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흡족해하며 배를 위아래로 쓰다듬는 딸아이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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