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의혹 커지는데
    새누리당·국민의당, 침묵
    민주당 “맹목적 믿음과 찬양은 제2의 박근혜 대통령 만들 뿐”
        2016년 12월 29일 04: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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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에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이어 검찰에서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반기문 총장의 해명 촉구와 검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2야당은 이러한 의혹에 즉각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낸 반면 반기문 총장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반 총장에 대해 해명을 촉구하는 야당을 비난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여야2당이 집권을 위해 후보 검증까지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재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9일 국회 브리핑에서 반기문 총장의 박연차 전 회장에 대한 뇌물수수를 검찰이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은 언제까지 두 눈 감은 채 외면할 것인가”라며 “차기권력 대상 앞에서 누구보다도 작아지는 검찰의 비겁한 모습을 보며 우리 국민은 가장 시급한 척결 대상은 정치세력과 결탁한 정치검찰”이라고 비판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도 “반기문 총장의 금품수수를 덮은 것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드러난 표적을 취사선택해서 정권에 부역했다는 말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정치공작”이라며 “검찰은 당장 당시 수사를 누가 기획했고, 누가 가이드라인을 만든 건지 모두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에 대해서도 “기회주의적 국민 기만으로 권력을 탐하려 한다면, 국민적 평가는 더욱 빠르고 냉혹하고 반 총장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박 전 회장이 2009년 검찰 수사 당시 반 총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이 이를 덮으며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박 전 회장과 가까운 법조계 인사의 증언을 보도했다.

    앞서 지난 24일 <시사저널>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외교부 장관 시절인 2005년 20만 달러, UN사무총장에 취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3만 달러 모두 2차례 걸쳐 총 23만 달러(약 2억 8천만원)를 박연차 전 회장에게 받았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해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반 총장과 박 전 회장 모두 해당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박 전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법조계 인사 A씨가 인터뷰에서 “박 전 회장이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을 때 측근들에게 ‘반기문까지 덮어버리고 나에게만 압박수사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박 전 회장이 이 사실을 공개하려 했지만 ‘기획수사’ 의혹 언론보도가 나면서 검찰이 외부에 흘리지 말라고 압박해 알리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수사에서 검찰이 반 총장까지 공격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 전 회장 측이 의혹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선 “박 전 회장 자신도 뇌물공여죄가 적용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2009년 수사에 대한 트라우마(후유증)도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박 전 회장을 직접 조사한 검사는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이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A씨는 반 총장 측의 해명에도 적극 반박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회장은 이날 만찬에 늦게 도착했으며 반 총장은 이날 행사 중 박 전 회장과 따로 만난 사실이 없다’는 반 총장 측의 주장에 “박 전 회장은 그날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만찬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며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명예총영사인 박 전 회장이 베트남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에 만취한 채로 갔을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박 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과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방송화면)

    박 전 회장이 반 총장에게 거액을 전달한 데에는 태광실업이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추진 때문일 것이라고 <경향신문>은 봤다.

    태광실업은 2005~2007년 베트남 국가기간산업인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를 위해 총력을 다했다고 한다. 이때 한국 정부의 외교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반 총장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박 전 회장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 조사에서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답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우리 정부에서 외교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고 진술했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뇌물수수 사건 판결문에도 “박 전 회장은 정 전 비서관에게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청와대와 외교부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 발전소 사업을 지원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적혀 있다.

    여야 통틀어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반 총장에 대한 메가톤급 의혹이 불거지자 민주당과 정의당 등 2야당들은 반 총장에게 해명을 촉구했다. 2야당이 반 총장에 대한 의혹제기에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경쟁 후보라는 점도 있지만,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기동민 민주당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맹목적인 믿음과 찬양은 제2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 뿐”이라며 “‘거목 반기문’ 신화는 깨져야 하고 철저한 검증으로 불행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도 26일 브리핑에서 “대선 전 불거지던 각종 의혹들에 대한 검증을 회피하며 국민을 속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며 탄핵이라는 결말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 대권주자로 반기문 총장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이 이러한 의혹에 입을 다물고 있다. 새누리당은 반 총장을 비판하는 야당들에게 “검증을 빙자한 흠집내기”라고 맞서는가 하면 국민의당은 애매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야 2당이 대권욕 때문에 유력 대권 후보에 대한 검증을 기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충분하다.

    정용기 새누리당 원내수석대변인 26일 “국민들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으로서 국제무대에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반기문 총장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다”며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예비경쟁자에 대한 무차별적 흠집 내기에만 골몰한다면 국민이 호응하겠는가”라며, 반 총장에 대한 우회적 ‘러브콜’에 가까운 브리핑을 냈다.

    반 총장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가 높으니 구체적 증언과 정황이 밝혀진 의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검증을 빙자한 흠집 내기 TF팀을 구성하는 대신 민생에 집중해주기 바란다”며 “더불어민주당은 자기 검증부터 하라”며 물타기에 나서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반 총장이 해명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공식입장을 밝히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반 총장 뇌물수수 의혹 보도가 나온 24일 이후, 국민의당이 낸 공식 입장은 고작 1건이다. 그것도 대변인 공식 브리핑이 아닌 박지원 원내대표가 기자들과 티타임에서 얘기를 꺼낸 정도다.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는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했다고 하면 반기문 총장 측에서는 해명하면 된다. 그 해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검찰에서 수사해서 그 결과를 발표해주는 것이 당연히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에게 할 도리”라면서도 “‘근거 없는 폭로 검증’은 밝은 정치, 깨끗한 대통령 선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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