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그치지 않는 전쟁들
    자국 정부의 군사적 행태 비판해야
        2016년 12월 26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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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입니다. 원시 기독교에는 다소의 평화주의적 지향이 있어서인지 대개 성탄절은 ‘평화’와 쉽게 연상됩니다. 중세 유럽 같으면 성탄절이 되어서 서로 대적하는 두 군대들이 그래도 명절이라도 제대로 쇠자고 잠시 휴전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서로 대적하는 불-독 양군에서 졸병들이 중심이 되어서 성탄절 때에 “밑으로부터의” 비공식적 휴전을 선포하고 적어도 그 며칠간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성탄절이든 그 어떤 명절이든 전쟁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전쟁은, 장기 침체에 빠진 후기자본주의로서는 그저 하나의 공기 같은 필수 요소가 되고 일상이 된 셈이죠. 침체 속에 총수요가 소폭 하강하고 세계 무역량도 인제 줄어들기 시작하는 속에서는, 서로 많이 죽이라고 갈등의 양쪽에 무기를 공급해주는 무기 장사야말로, 마약 시장과 함께 마진이 그래도 많은 마지막의 돈벌이 기회로 남는 모양입니다.

    2016년 내내 전쟁의 화염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유럽이라는 자본의 핵심부를 인제 남쪽과 동쪽에서 “영속 전쟁의 벨트”가 포위하고 있는 모양이 된 셈이죠.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거의 영구적 전쟁들은 물론 유럽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노르웨이를 위시한 유럽 ‘복지’(?) 국가들이 2011년에 폭격해 사실 무정부의 폐허로 만든 리비아에서는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민병대들의 혈전은 지속됩니다. 주요 경쟁세력 (대표자 회의와 총국민회의) 양쪽은 미국과 유럽 자본과 커넥션이 돼 있다는 것이 특징이지만요. 멀지 않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시절보다 더 악랄한 군사 정부가 쿠데타로 집권하여 지금 각종의 종교 근본주의적 집단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민주적” 유럽 국가들이 이 군사정권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그 잇속을 챙기고 있죠.

    전쟁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시리아 예멘 우크라이나 IS

    시리아 내전에서는 친서방 세력과 친러-친이란 세력 등의 사투는 이미 약 40여만 명을 죽였는데, 전혀 수그러들 것 같지 않습니다. 시리아뿐 만인가요? 이라크에서 터키 등의 비공식적 후원으로 만들어진 이슬람국가에 대해 미국과 이란의 후원을 받는 군대가 싸우고 있고, 예멘에서는 친이란 세력이 수도를 점령한 뒤에 친미 세력인 사우디가 민간인들의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주는 폭격전을 하고…예멘에서는 이미 1만 명 가까이 죽임을 당했고 아이들이 매일매일 굶어죽고 있는데, 세상은 아예 관심도 안보입니다.

    유럽의 남쪽만큼 사망률이 높은 건 아니지만, 유럽의 동쪽도 끝이 안 보이는 전쟁 중에 있습니다. 외국에서 이미 단신으로도 보도하고 있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매일매일 포격 등으로 사람이 죽습니다. 발틱 공화국에서는 비록 열전은 없지만, 많은 민간인들이 게릴라전 훈련을 받아야 하는 만큼 발틱을 무대로 할 서방과 러시아의 충돌의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유럽 주위에 전쟁이나 전쟁 준비 내지 게릴라에 대한 토벌을 하지 않는 나라는 마로코와 알제리아, 그리고 백러시아 등 몇 군데는 있긴 하지만, 사실 예외에 가깝죠.

    한반도 주변 신냉전 대결과 긴장 우려돼

    한국으로서 더 걱정스러운 것은, 미-일-한 블럭과 중-러-북 블럭이 만나는 한반도, 대만, 남중국해 같은 지점에서도 2016년에 긴장이 높아지기만 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은 남중국해에서와 같은 대치나, 사드 배치를 둘러싼 비공식적 경제 보복 조치, 한-일 군사협정과 같은 미-일-한 삼각동맹 강화 조치 등의 수준이지만, 그런 긴장이 첨예화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이 어디에 있는지 사실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참, 2016년의 개성공단 폐쇄와 사실상의 납치로 보일 여지가 많은 12명 북조선 여종업원들의 “계획 탈북” 등의 남한쪽 도발 행위들이 남북 관계를 거의 회복이 어려운 지경으로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패권 국가 내지 패권 국가 블럭들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경계선마다 각종 대리전들이나 외부적 개입의 정도가 심한 내부 갈등, 아니면 긴장의 암운이 도는 대치 등이 심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던 것은 2016년이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준)주변부에서의 각종 대리전과 대치의 형태로 지금 또 하나의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라는 느낌마저도 들 지경입니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장기 침체가 가져다주는 빈곤화에다가 인제 전쟁까지 세계의 민중을 더 괴롭게 만드는 셈이 되죠.

    민중 차원의 해법 중의 하나는, 일단 “자기” 정부의 군사주의적인 조치나 군사주의적 프로파간다에 대해 보다 비판적 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하고, 일차적으로 “자기” 나라 안에서의 군사주의 세력들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것일 겁니다. 그렇게 해서 민중이 국가들 사이의 패권을 둘러싼 이전투구를 초월해서, “싸우는 형제”인 세계 각국 자본가들의 세상을 넘어, 민중의 세상을 지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 사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북조선 여종업원을 사실상 납치하는 등 대북 도발들을 일삼는 남한 정부가 “북한 도발”과 같은 어법을 구사할 때에 그게 얼마나 위선적인지 잘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러시아 사람들 같으면, 알레포에서 러시아 폭탄 밑에서 죽어갔던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과연 다 “테러리스트”이었는지 고민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지금 예멘에서 아이들을 죽이는 사우디의 폭탄, 미사일들이 과연 어디에서 제조됐는지, 그리고 사우디는 누구의 동맹국인지 관심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싶고요.

    민중들까지 패권을 둘러싼 국제적 싸움에 정신 잃어 “자기” 나라의 편에 무비판적으로 서는 순간, 이 세계는 미래가 없는 암울한 약육강식의 밀림이 됩니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자면, 일단 “자기” 나라가 곳곳에서 벌이는 야만적 행위와 거리를 두는 거야말로 제일 급선무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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