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나는 사람과
    떠나야 할 사람, 그 어긋남
    [왼쪽에서 본 F1] 한국과 F1과 연말
        2016년 12월 26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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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2016년이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것과 비슷하게, F1의 2016시즌도 여러 가지 사건이 얽히고설키며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경기 외적으로는 F1의 소유권이 미국의 리버티 미디어로 넘어간 것이 가장 큰 뉴스였고, 챔피언십만 보자면 독일의 니코 로스버그가 데뷔 후 11시즌 만에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 가장 인상적인 뉴스였습니다. 로스버그와 팀메이트 루이스 해밀턴의 치열한 타이틀 경쟁이 엎치락뒤치락 하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진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16시즌 챔피언 타이틀의 공식적인 시상이 펼쳐진 ‘FIA 갈라’ 행사 당일, 로스버그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F1에서 바로 은퇴하겠다는 발표였습니다. 한창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이제 겨우 단 한 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을 뿐이지만, 로스버그는 ‘이룰 것을 다 이루었으니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치열한 경쟁의 무대에서 하차를 선언했습니다.

    1950년 챔피언십이 창설된 이후 모두 67시즌을 치른 F1의 역사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고 바로 은퇴한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1958 챔피언 마이크 호쏜은 교통사고로, 1970 챔피언 요헨 린트는 경기 중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에 새 시즌에 참가할 수 없었고, 1992 챔피언 나이젤 만셀이 챔피언 등극 후 바로 은퇴를 선언한 것이 그나마 로스버그의 경우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만셀은 은퇴 후 세 차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윌리암스와 맥라렌을 위해 잠시 F1 레이스카에 올랐기 때문에 완전한 은퇴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2016 챔피언 로스버그는 은퇴를 선언했고, 이미 은퇴를 알렸던 2009 챔피언 버튼을 포함해 내년 2017시즌에는 두 챔피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F1 드라이버로서의 커리어를 유지할지, 은퇴를 선택할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로스버그와 버튼 등의 은퇴 선언이 팬들에게 너무 큰 아쉬움을 남긴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2016년 처음으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니코 로스버그

    2016년 처음으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니코 로스버그

    갓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로스버그와 현역 F1 최고의 베테랑 버튼의 은퇴에 더 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들이 ‘떠나야 할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량 면에서나 인기 면에서 로스버그나 버튼은 F1에서 최고 수준에 놓인 드라이버들이고, 큼지막한 문제가 있거나 안티 팬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버튼의 경우에는 제법 적지 않은 36세의 나이가 부담일 수도 있지만, 페라리에서 2017시즌에도 활약할 키미 라이코넨은 버튼보다 한 살이 더 많습니다. 종종 철인3종경기에 참가할 정도로 버튼의 육체적인 능력이 줄어 들었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로스버그의 경우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버튼 등 일부 베테랑 드라이버들이 성적 면에서 조금씩 하락세를 타고 있던 것과 달리, 로스버그는 분명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2년 연속 챔피언십 2위에 그치다가 겨우 챔피언 타이틀에 오른 직후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더 크게 만듭니다. F1 데뷔 후 11시즌 동안의 고생이 겨우 빛을 봤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로스버그가 자리에 남는다면 F1에서 가장 강력한 레이스카가 몇 년 더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해줄 텐데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이렇게 ‘남았으면 하는 이’들은 F1을 떠나게 됐습니다. 2016시즌을 끝으로 더는 볼 수 없는 사람은 꼭 드라이버뿐만이 아닙니다. F1을 주관하는 FIA의 기술 실무 책임자로 수십 년 동안 F1 그랑프리와 함께해 온 허비 블래시도 올 시즌을 끝으로 F1을 떠납니다. 허비 블래시의 경우 70에 가까운 고령이 은퇴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F1에서 중요한 일을 도맡았던 만큼 그의 떠남에 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윌리암스 F1 팀에서는 기술 부문 최고 책임자였던 팻 시몬스가 물러났습니다. 현업에서 완전히 은퇴를 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윌리암스를 떠난 그를 당분간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2000년대 중반, 르노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F1 최고의 엔지니어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시몬스의 미래도 불투명해진 셈입니다. 이래저래 2016년을 끝으로 떠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느낌입니다.

     F1을 주관하는 FIA의 기술 실무 책임자였던 허비 블래시

    F1을 주관하는 FIA의 기술 실무 책임자였던 허비 블래시

    그런데, ‘남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떠났으면 하는 사람’이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F1의 최고 권력자로 불리는 버니 에클스톤입니다. 따지고 보면 F1의 소유권은 투자회사 CVC가 10년 동안 보유하고 있었고, 이제 대형 미디어 기업인 리버티 미디어가 소유권을 승계해 에클스톤의 입지는 더 좁아질 만합니다. 많은 사람이 리버티 미디어와 에클스톤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하며 ‘F1 수프리모’가 곧 1선에서 물러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최근 에클스톤의 언행이 팬들의 기대를 벗어난 것은 물론 전문가나 F1 관계자들의 생각과도 상당히 어긋나고 있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에클스톤이 특유의 고집과 독재에 가까운 운영 때문에 비난을 받은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문제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 더 우려스럽습니다. 리버티 미디어의 F1 인수와 함께 에클스톤이 물러날 것이란 전망에는, ‘버니가 물러났으면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 포함된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버니 에클스톤은 ‘떠났으면 하는 사람’에 속하는 셈입니다.

    허비 블래시와 비교한다면 버니 에클스톤의 나이도 문제랄 수 있습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무려 86세의 에클스톤이 현업에서 총책임자로 활약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F1에 큰 공을 세웠던 에클스톤이기 때문에, 더 좋지 않은 기록을 남겨 과거의 공헌이 완전히 퇴색되기 전에 은퇴하기를 바라는 F1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에클스톤은 90세가 넘더라도 가능한 자리를 지킬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2016년 후반 우리나라 최대의 이슈가 됐지만, 수많은 사람의 외침을 무시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자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답답한 상황입니다. 리버티 미디어가 에클스톤을 완전히 끌어내리고 새로운 대체자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빠를지,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하는 최종 판단이 먼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에클스톤은 선출직 공무원이 아닙니다. F1이라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이끄는 ‘경제인’일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그 자리에 앉힌 공직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난을 할지언정 그를 강제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선출직 공무원은 얘기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최고위 선출진 공무원이라면 과연 사람들의 지지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타당한지, 의미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F1이든 우리나라의 현 시국 문제든, 이상하게 ‘떠나야 할 사람’은 자리를 부여잡고 떠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러는 동안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타까워했던 ‘이미 떠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일이 다수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행되곤 합니다.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나지 않고, 남았으면 하는 사람이 떠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2016년 한 해가 저물어가다 보니,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부디 많은 사람이 바라는 대로, 떠나야 할 이들은 있어서는 안 될 자리를 서둘러 떠나 ‘남았으면 했지만 떠나는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줬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는 연말입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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