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러려고 전기를 아꼈나…”
    [에정칼럼] 전기요금 할인받아 영화 <판도라> 보자
        2016년 12월 16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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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선물이 도착했다. 바로 전기요금 인하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기존 6단계 11.7배수에서 3단계 3배수로 대폭 완화됐다. 심지어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를 덜 쓰던 가구의 전기요금 부담이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새로운 1단계(200kWh 이하)가구에는 월4,000원의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제도가 도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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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평균 전기사용량이 57kWh인 필자의 가구는 약 4,340원을 전기요금으로 내야 했는데, 이제는 약 2,950원만 지불하면 된다. 월4,000원 보조가 아니었으면 6,950원을 낼 뻔했으니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매월 1,390원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나와 같은 고민에 빠져있을 이웃은 얼마나 될까. 한국전력공사는 2015년 월평균 전기사용량 구간과 가구수, 사용량 정보를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다. 필자의 가구처럼 100kWh 이하로 전기를 소비하는 약 436만 가구와 101~200kWh를 사용하는 523만 가구는 정부의 특별한 배려로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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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월평균 201~300kWh 정도의 전기를 사용하던 약 701만 가구는 개편 전후의 전기요금 변화가 없어 안타깝게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반면에 전기를 301~400kWh 소비하던 약 525만 가구부터 전기요금 인하라는 실질적인 선물을 받게 됐다.

    평상시 월 350kWh를 사용하는 가구는 전기요금이 7,380원 인하된다는 정부의 친절한 설명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400kWh, 600kWh, 800kWh 등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가구의 전기요금 인하효과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특히 전기를 많이 소비할수록 할인 효과가 커진다. 전기를 400kWh 사용하는 가구의 할인효과는 1만3090원인데 비해, 600kWh는 8만1310원, 800kWh의 경우는 할인효과가 17만8840원에 이른다. 이 구간에 속해있는 약 132만 가구가 부러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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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면 “내가 이러려고 전기를 아꼈나, 자괴감이 들고” 그러실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특히나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에너지절약과 태양광 발전기 설치 등을 실천하는 가정과 마을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시작된 전기요금 폭탄 논란 이후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했다. 이토록 국민들의 어려움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정부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정부의 보도자료를 들여다보면, 정부가 생각하는 어려움에 처한 국민이 누구인지를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적어도 한 달에 400kWh 이상의 전기 정도는 집에서 소비해줘야 이른바 국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특히나 기존의 3구간(201~300kWh)에 속하는 가구, 즉 가장 많은 가구수가 분포되어 있으면서 평균적으로 전력을 소비하는 가구들에게, 정부는 전기를 더 많이 소비해야 이익이라는 명확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우주의 기운인 것도 같다.

    산업부는 전력소비 증가를 바란다?

    이러한 추측이 맞다면(맞지 않길 바란다), 산업부는 왜 주택용 전기소비를 부추기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 단초는 올해 변경된 기후변화 관련 부처 변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5월 국무조정실이 기후변화 대응 컨트롤타워를 맡고, 종전 환경부가 해오던 배출권거래제 운영을 기획재정부가 맡게 됐다. 그 당시 온실가스 관련 정책을 총괄하던 환경부가 기업 요구를 외면한 채 무리하게 감축 목표를 밀어붙였다는 업계 불만을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언론들은 해석했다.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산업부는 에너지기본계획,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온실가스 감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주요 계획들을 관장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발표된 국가온실가스 감축로드맵을 보면, 산업부문의 경우는 감축이 아닌 ‘증가’로드맵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기사 참조).

    최근 들어 전력소비 증가세가 둔화 내지는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하고 있다. 전력소비는 2000년~2015년 기간 동안 연평균 4.8%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11년 4.8% 증가 이후에 2012년 2.5%, 2013년 1.8%, 2014년 0.6%, 2015년 1.3%에 머물고 있다. 용도별로 살펴보면, 가정용과 공공용, 서비스업, 제조업 모두 전력소비 증가율이 크게 낮아지거나 감소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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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라 전력수급기본계획 상의 전력수요가 2013년부터는 과다하게 예측되고 있다. 또한 실제로 2015년 말 기준 전력수급은 안정적이었고, 2017년 이후에는 설비예비율이 2000년 이후 최대인 26.3%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발전설비 과잉 투자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수요와 공급이 증가하는 것이 관련 기업들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만큼 산업부가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핵발전소의 감춰진 비용과 전기요금

    당장의 전기요금 인하가 각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본 정부가 원전사고 처리비용 중 일부(약 24조 3천억원)를 전기요금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3년 11조엔(111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던 원전 사고의 폐로, 배상 등 비용이 최근 들어 2배에 가까운 21조5000억엔으로 증가한 데 따른 조처라고 전해진다.

    물론 전력회사의 잘못인데 왜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외면한 채 값싼 전기를 소비해왔던 일본 국민들도 그 책임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핵발전소의 발전원가에는 사고의 위험성 등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과소평가되어 있다. 이러한 외부비용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추정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 비용은 kWh당 최대 203원에 달한다. 우리는 현재 원전의 위험성을 외면한 채 ‘반값’ 전기요금이라는 ‘주사’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영화 티켓 값으로는 부족하지만, 정부가 선물한 4000원으로 영화 <판도라>를 볼 예정이다. 우리 모두 할인 받은 전기요금으로 이 영화를 보자.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인 것 같다.

    판도라

    영화 ‘판도라’에서 핵발전소의 폭발 장면(유투브)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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