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스트와 극우정당
    [유럽의 극우파 바람-2] 헝가리
        2016년 12월 12일 08: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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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극우파-1 폴란드

    부다페스트에서는 툭하면 요빅당(Jobbik)이 주도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부의 세금인상과 긴축정책에 거세게 항의하는 지지자들의 시위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저질스럽게 비난하는 이야기도 광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언뜻 보면, 당장이라도 총리를 화형에 처할 기세를 보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광장의 그림을 상상하면 집권우파 정당에 좌파들이 항의하는 모습이다. 좌파정당들이 세금인상과 긴축정책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이기 때문에 우파정당 지지자들이 광장에 모였을 수도 있다. 광장의 주인공인 요빅당은 파시스트를 연상케 하는 극우정당이고, 집권당은 우파정당이다. 상상하는 그림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2014년 헝가리 총선에서 빅토르 오르반이 이끄는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은 133(전체 199석)석을 차지했다. 압승이자 세 번째 연속집권은 덤이었다. 피데스를 맹렬하게 공격해온 요빅당(24석)은 제1야당까지 될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좌파통합리스트인 ‘Unity(38석)’이었다. 우파와 극우파의 사이를 뚫고 좌파인 Unity가 선전한 결과일까. Unity는 그동안 흩어져 있고 대립해 왔던 좌파세력이 사회주의 노동당(29석)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결과였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집권당이었던 사회주의 노동당은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헝가리

    오렌지 색깔이 피데스의 2014년 승리지역이다. Unity가 이긴 곳은 붉은색.

    합법적인 파시스트 요빅당

    요빅당의 정식 명칭은 ‘더 나은 헝가리 운동’(the Movement for a Better Hungary)이다. 요빅당은 2007년 ‘헝가리 호위대’라는 극우 대중조직을 만들면서 등장했다. 하지만 헝가리 호위대가 1940년대 파시스트 정당인 화살십자당의 깃발을 사용한 것이 국민들의 대대적인 반발에 직면하면서 연일 언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화살십자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만 명의 유대인을 추방하거나 학살한 정당으로 국민들에게는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야할 정당으로 인식되어왔다. 국민감정이 악화일로에 이르자 헝가리정부는 헝가리 호위대를 불법단체로 규정해 해산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불과 2년 만에 유럽에 불어 닥친 경기 악화에 그렇지 않아도 불안전하던 헝가리는 국가위기 상황까지 내몰렸다. 실업률이 치솟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요빅당은 문제의 원인은 유럽 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선동이었지만 2년 만에 음모론을 사실로 믿는 국민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요빅당은 14.8%(3석)를 득표하며 하루아침에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2010년 총선에서는 반유대주의와 집시 추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16.67%의 지지율을 획득해 3당(47석)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합법적으로 원내에 자리를 잡은 요빅당은 공개석상에서 “유대인들의 등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파시스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급기야 예루살렘에서 열리던 세계유대인총회를 부다페스트에서 개최하면서 경고음을 울렸지만 오히려 요빅당의 지지율이 더 상승하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요빅당의 당수인 가보르 보나(Gabor Vona)는 헝가리 호위대가 만들어질 때 참여해 20대에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가보르 보나는 뛰어난 언변과 극단적인 선동으로 단시간에 3당에 올랐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유대인 음모론을 주장하면서 실업자와 빈곤층을 파고들었다.

    주목할 것은, 극우정당인 요빅당이 사회주의 노동당 등 좌파정당들을 공격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요빅당이 고비마다 물고 늘어지는 것은 우파정당이자 집권당인 피데스이다. 집권당을 공격함으로서 제1야당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전략적인 행보라는 분석도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헝가리2

    사진 좌측이 요빅당의 지도자 가보르 보나. 우측이 피데스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피데스는 과연 우파정당인가?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는 263석(전체 386석)을 차지하며 두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헝가리 민주선거 이후 최초의 단독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개헌선을 넘는 압승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강력한 단독정부 구성과 개헌선을 확보하자 오르반 총리는 곧바로 개헌 준비에 착수했다. 이른바 ‘신헌법’이다.

    신헌법은 첫째, 1차와 2차로 진행되는 선거로 인한 비용 낭비를 줄이기 위해 선거제도를 대폭 개편했다. 386석인 의석수를 199석으로 대폭 줄였다. 헝가리의 인구가 천만 명에 약간 모자라는 숫자여서 386석은 민주선거를 도입할 때 과도하게 늘린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선거구가 피데스에 유리하도록 일종의 게리맨더링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둘째, 헌법재판소장의 임명권을 국회로 이전했다. 삼권분립을 위협한 개헌인 것이다. 또한 중앙은행의 독립 권한과 국민의 기본권을 대폭 축소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도 대폭 제한했다. 피데스는 효율적인 국회와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 조정이 아니라, 구체제(국가사회주의)를 연상케할만한 신헌법을 제정한 것이다. 폴란드 법과 정의당의 모델은 헝가리의 피데스였던 것이다.

    EU는 피데스가 신헌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입장을 표명하며 유예를 요청했다. 헝가리에 구제금융을 제공할 IMF 역시 유로화를 무기로 EU와 동일한 입장을 표명했다. EU에 규정되어 있는 ‘민주주의 조항’은 피데스가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있는 헝가리에게 IMF의 경고는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피데스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사회주의 노동당과 수만 명의 민중들이 국립오페라극장을 에워쌀 때, 피데스는 신헌법 탄생을 자축했다. 요빅당이 파시스트라면 피데스는 극우정당이다.

    파시스트와 극우정당의 선명성 경쟁

    유럽으로 향하는 대규모 난민 사태가 계속되자 독일 메르켈 총리는 EU국가들의 분산수용을 집행위원회를 통해 확정했다. 이주민들에게도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는 독일은 난민들에게는 1순위 국가였다. 난민들이 독일로만 향하자 그 숫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은 피데스였다. 피데스는 단 한 명의 난민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의회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뻔한 제스처였다. 피데스의 오르반 총리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산수용을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분산수용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절대적이었지만 국민투표는 부결됐다.

    피데스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아서 국민투표 자체가 무효가 된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당과 좌파들의 투표참여 반대 운동도 한몫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아한 것은 요빅당의 태도였다. 요빅당은 분산수용 반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지만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투표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지 않은 것이다. 요빅당의 상대는 오직 피데스와 오르반 총리였다.

    국민투표가 수포로 돌아가자 오르반 총리는 차선으로 난민수용을 금지하는 개헌을 의회에서 추진했다. 개헌안에 투자이민 즉, 부자들의 이민은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요빅당의 지도자인 가보르 보나는 “누구도 이민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부자이민 조항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EU 자유통행(슁겐조약)이 필요한 중국인이나 러시아들 정도가 올 것이라는 것이 가보르 보나의 논리였다. 요빅당이 마자르(Magyar) 민족순혈주의를 당의 노선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도 반대하는 이유였다. 번번이 발목을 잡는 요빅당에 질린 오르반 총리는 개헌안을 강행했지만 2/3에서 두 표가 모자라면서 또다시 부결됐다.

    피데스를 우파정당이라고 호명하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민주선거 이후 첫 단독정부를 만드는데 성공한 피데스의 오르반 총리는 국가주의 색채가 강한 신헌법을 좌파와 민중들의 반발에도 통과시켰다. 기본권을 대폭 제한한 내용도 그렇지만 헌법 전문에 명시된 내용들이 과거의 국가주의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 더 문제다. 극우정당으로 변모한 피데스는 요빅당과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헝가리 전체를 극우화하고 있다.

    헝가리 좌파는 지금

    중도좌파인 사회주의 노동당(MSZP)은 2002년과 2006년에 두 번 집권에 성공했다. 참사가 일어난 것은 2010년 선거였다. 지지율이 1/3 토막이 나면서 피데스에게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내준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190석에서 59석으로 추락한 결과는 유럽 좌파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사회주의 노동당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성적표는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유럽 전역에 불어 닥친 경기침체는 헝가리를 국가부도 위기로 몰아넣었다. 사회주의 노동당의 선택지는 유럽의 다른 중도좌파들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처방은 세금 인상, 복지 축소, 공공기관 임금삭감 등이었다. 요컨대 우파가 실시해야 할 정책을 좌파가 그대로 내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노동당의 전통적 기반인 노동계급(블루칼라)이 대거 등을 돌려버렸다. 생계를 위협받던 노동계급은 피데스에게 몰표를 던졌다.

    2014년 총선에서 좌파들의 연합체인 Unity로 소폭 지지율이 상승한 것이 전부였다. 사회주의 노동당만을 기준으로 보면 제자리 걸음이었다. 차기 총선에서도 좌파들의 반격은 요원할 전망이다. 우선 신헌법의 제정으로 선거구가 Unity에게 지극히 불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자기 Unity로 모인 한 지붕 네 가족이 잡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좌파의 반격이 불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난민이다. 난민수용을 반대하는 우회전을 선택하는 순간, 당의 노선을 우파정당으로 만들어야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헝가리 좌파들은 민중들과 함께 부다페스트의 거리에서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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