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과 촛불이 만든 승리,
    박근혜 탄핵 넘어 박근혜 체제 끝내자
        2016년 12월 10일 0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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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히 광장의 힘으로 이뤄낸 소중한 성과였다.

    9일 오후 4시 여의도 국회 정문 앞,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압도적 찬성표로 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2만 여명의 시민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행복했던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시민들은 하늘을 향해 장미꽃을 던지고, 옆에 있던 이들과 얼싸 안고 어깨를 걸며 노래를 불렀다. 더러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장 문턱을 넘기까지 시민들은 한 달을 넘게 광장에서 추위와 싸우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그리고 이날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첫 걸음을 뗀 날이었다.

    탄핵 표결에 참여한 299명의 국회의원 중 234명(78.2%)이 탄핵에 찬성했다. 반대는 56표(18.7%), 기권 2표, 무표 7표였다. 야3당과 무소속의 의석이 172석 중 반란표가 없었다고 전제하면 새누리당 내 찬성표는 62표다. 비박계 비상시국회의의 예상 35표를 훨씬 웃돈다.

    작은 정치적 이해에도 동요하던 국회에서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은 광장 속 시민들이었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 돌아선 새누리당 비박계를, 이러저런 계산에 동요하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을 바로 잡기 위해 시민들은 직접 행동에 나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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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사진은 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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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서운 추위 속 시민들
    “박근혜 탄핵하라” “김기춘, 우병우 구속하라”

    오후 12시 탄핵안을 표결 처리할 본회의가 시작되기 아직 한참 남은 시간이었지만 국회 앞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국회 앞에 모인 2만 여명의 시민들은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정치권을 압박했다.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문화예술인들은 공연으로, 시민들은 자유발언대에 오르거나 개인적으로 챙겨온 확성기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경찰은 이날도 국회 앞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벽을 세웠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를 개방하지 않는 대신 차벽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차벽 뒤에서 있던 퇴진행동 측은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 간 폭력 경찰이 또 다시 차벽을 세웠다”고 규탄했다.

    국회 담장과 차벽 사이에도 경찰 병력이 3중으로 막아서며 도로를 거의 점거하다시피 했다. 결국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은 차벽 뒤에서, 정의당과 일반 시민들은 국회 담장 바로 아래서 집회를 이어갔다.

    농민들은 이날 국회 앞으로 트랙터를 몰고 왔다. 경찰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트랙터에 매달려 있던 농민들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내렸다. 아스팔트로 떠밀린 다른 늙은 농민들은 거칠게 막아서는 젊은 의경들 앞에 서서 그 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70대 한 농민은 “우리를 왜 막냐. 쌀값 10만원 받아서 어떻게 먹고 사냐. 그러니까 길을 열라”고 요구했다.

    일부 시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가기 위해 준비된 경찰의 렉카차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면서 얼굴에 피가 나는 정도의 부상자도 나왔다. 60대 남성은 “박근혜 하나 때문에 온 국민이 이게 무슨 고생이냐. 이 나이에 여기까지 나와서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고 경찰에 항의했다.

    탄핵 표결이 코앞으로 다가온 오후 2시 50분, ‘탄핵하라’ ‘처벌하라’는 함성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본회의가 개의하자 시민들은 도로 아스팔트에 앉아 초조하게 표결 결과를 기다렸다. 탄핵안 가결은 예상됐지만 혹시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민들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생중계를 지켜봤다.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민들은 만세를 부르고 환호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경찰은 촘촘하게 세운 차벽을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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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분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는 단순히 최순실의 국정농단 때문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눈이 멀고 불치병으로 죽어가며 부당하게 축적한 대기업의 돈을 대통령은 자신의 풍요로운 노후 대비를 위해 이상한 재단에 쌓아 놨다. 한바닥에서 잠을 자며 고용보장을 외치고, 일자리가 없어서 시급 만원도 안 되는 일자리를 전전하고, 컵라면 하나도 먹을 시간 없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304명의 학생들이 그 컴컴하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대통령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캐비어와 송로버섯을 먹으며 자기 혼자 더 잘 먹고 잘 살 궁리만 했다.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 잘못을 은폐하려는 대통령, 청년실업을 노동자 탄압의 도구로 삼아 세상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이라는 굴레에 가두는 정책들, 그리고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날아오는 빨갱이라는 손가락질.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와 기득권이 망쳐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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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곳곳에서 분노가 터져나왔다.

    정의당에서 설치한 자유발언대에 오른 20대 청년은 “누구는 돈도 실력이라고 하는데 어떤 청년은 컵라면 하나도 먹지 못한 채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돈 많은 부모 빽이 없는 이들에게 헌법이 빽이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은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머리를 할 수가 있나. 그것만으로도 탄핵 사유”라고 말했다. 한 50대 여성은 “나는 회사에서도 가끔 빨갱이 소리를 듣고 눈치를 준다. 그래도 세상은 저들이 빨갱이라고 한 사람들이 바꿔 낸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50대 여성도 “비박도 안 된다. 새누리당의 옷을 입었던 사람들은 다음 선거 때 절대 뽑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탄핵 그 이후를 위해 광장에 다시 모인다

    시민들로 가득 찬 국회 앞 도로는 기쁨의 노래와 함께 다음을 결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람이 불면 꺼진다’던 촛불은 이제 박근혜 즉각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광장으로 모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시민은 자유발언대에서 “오늘 탄핵 가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탄핵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즉각 퇴진으로 나아가야 하고 박근혜 세력을 비호하는 데에 치중하는 새누리당 내 친박 세력의 해체와 정계은퇴까지 강력하게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이후에 땅에 떨어진 우리나라의 국격, 민주주의, 민생, 평화, 인권 이 모든 주요한 가치들을 다시 세우기 위한 행동에 함께 해주실 것을 호소한다”며 “민주주의 파괴, 불평등과 민생고에 시달리게 했던 박근혜와 최순실, 재벌들의 협작 게이트를 모두 청산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4년 동안 재벌들을 위해 노동자 서민의 등골을 빼먹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양질의 일자리 없애고, 노동개악을 개혁이라고 우롱했던 박근혜에겐 탄핵도 사치스럽다”며 “양심이 있다면 즉각 사퇴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직무대행은 “재벌독식구조 속에서 신음하는 노동자 서민들, 헬조선에 사는 청년 학생들, 자영업자들, 천만 비정규직까지 민심은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다 함께 싸우자는 것”이라며 “광장에서 민주와 정의가 살아 숨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권태훈 정의당 서초구지역위원장도 “시민들이 촛불로 모이지 않았으면 탄핵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성과가 아니라 오로지 시민들이 이 사태를 바라보고 동참하고 전진해왔던 결과”라며 “앞으로도 제대로 된 헌재 판결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도 시민들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0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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