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재벌들, 돈 냈지만 대가성 아니다?
    하태경 “5공 청문회 나온 재벌총수 자제가 6명"
        2016년 12월 06일 0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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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6일 개최한 1차 청문회에서 여야 위원들은 재벌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이날 오전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모두 9개 그룹 총수가 출석했다. 여야 위원 대다수는 ‘박근혜 게이트’로 그 민낯을 드러낸 한국 사회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끊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재벌 총수 대부분은 정경유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상투적 대답으로 일관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준 것도 대가성이 없었고 정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었다며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게이트의 ‘피해자’임을 자청하고 나서기도 해 여러 위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하라는 삼성의 압박 있었다”

    오전 청문회의 집중 추궁의 대상은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삼성은 청문회장에 나온 9개 기업 중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이라는 가장 많은 돈을 출연했다. 가장 많은 자금을 출연한 만큼 가장 많은 혜택을 본 것도 삼성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뿐 아니라 최순실 모녀의 소유인 독일회사 비덱스포츠에도 돈을 보내고 그 대가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지게 하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은폐를 약속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 직전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난 사실을 거론하며 “개인 이해당사자로서 국민연금을 만났나. 누구를 위해서 만났나. 삼성을 위해 만났나, 국가를 위해 만났나, 개인 이재용을 위해서 만났나”라고 물었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사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즉 삼성 총수 일가만의 이해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겨냥한 것이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한화증권 전 사장도 “삼성으로부터 이 합병에 찬성해달라는 압력전화 받았나”라는 박영선 의원의 물음에 “(압력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합병에 찬성) 안 하면 좋지 않다는 식의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은 “양사의 합병이 제 승계나 이런 쪽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한화증권의 세부사항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쪽으로 하시는 건 조금, 한 번 재고를 해달라”며 주진형 전 사장의 폭로를 부인했다.

    “고 황유미에게 5백만원, 정유라에겐 3백억…이게 삼성이다”

    삼성이 최순실 일가에 돈을 주고 정부로부터 받은 대가 중 하나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 은폐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삼성이 독일로 최순실을 만나고 온 이후 피해자 유가족과 약속했던 1천억 규모 재단을 설립을 무산하고 직업병 문제를 외면했다는 지적에 고작 “가슴 아프다”는 대답을 내놨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황유미씨 알죠. 모르면 안 된다. 2010년 황유미씨가 사망한 당시 24살이었다. 삼성은 황유미 죽음 앞에 제일 처음 보상금 500만 원 내밀었다. 알고 있나”라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이재용 부회장은 “아이 둘을 가진 아버지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는 동문서답을 했다.

    이에 “보상금 오백만원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고 재차 추궁했다. 이 부회장이 “몰랐다”고 답하자 윤 의원은 “하기야 그게 돈으로 보이겠느냐”고 질타했다.

    윤 의원은 삼성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 것에 대해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점 또한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올해 6월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노동자, 에어컨 실외기 작업을 하다가 추락사했다. 삼성 측은 자기 회사 직원 아니라고 외면했다. 삼성 핸드폰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상실했다. 그런데 삼성은 또 자기 회사 직원이 아니고 3차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이 모든 일에 정말 삼성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나”고 말했다.

    이어 “정유라를 직접 지원한 것만 백억이다. 이 돈이 노동자들의 목숨과 피의 대가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한다”며 “고 황유미에게 5백만 원. 정유라에게 3백억 원. 이게 삼성이다.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이고,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하고 정경유착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 총수들 일제히 ‘대가성’ 부인
    “청와대 요청하면 어쩔 수 없다” 촛불 분노 재계로 향할 듯

    기업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것 또한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은 (삼성이 자금을 출연한 것이)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승계 등을 포함한 모종의 대가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의 지적에 이재용 부회장은 “저희한테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지원 요청이 들어온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뭘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원해서 출연한 적 없다. 이 건도 마찬가지”라고 일축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진 대가성 여부 질문에도 “저희가 모든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경우에도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건 없다”고 했다.

    SK그룹은 두 재단에 111억원을 내고 최태원 회장의 사면과 관련한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최태원 회장도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적 없고, 그건 제 결정도 아니었다”며 “기업별로 할당을 받아서 그 할당 액수만큼 낸 것이다. 당시 그 결정은 그룹 내에 사회공헌위원회가 하고 있고 저는 거기 속하지 않아서 제가 더 드릴 말씀 없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또한 “무슨 대가를 기대해서 출연한 사실 없다”고 답했다.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하고 서울 면세점 추가 입찰과 ‘형제의 난’ 수사 관련 로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대가성 부인에서 나아가 자금 출연의 배경에 박근혜 정부의 압박이 있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들도 이번 게이트의 피해자라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정부의 (자금 출연)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했고,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기업 입장에선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총수들의 이 같은 답변은 모두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을 통한 답변이다.

    “전경련, 정경유착이 습관…결국 최순실 부역자 됐다”

    여야 위원들이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궁한 이유는 이번 게이트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적폐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민심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문회에 참석한 총수들은 민심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오늘 이 자리는 단순히 ‘잘못했다, 앞으로 잘하겠다’ 이런 상투적인 말을 반복하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며 “5천만 국민들이 여기 정치인과 저기 앉은 기업인이 구시대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 쓸 수 있느냐, 그 희망을 보기 위해 (국정조사를) 지켜보고 있다”고 운을 뗐다.

    하 의원은 “88년 5공 청문회 때 나온 분들의 자제가 6명이다. 그 정경유착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자식들에게까지 정경유착의 고리를 세습할 순 없다. 끊어야 한다”며 “그 매개물이었던 전경련 해체의 말이 나와야 한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으로 성공한 습관에 안주해서 최순실의 부역자가 됐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앞서 여야 위원들의 추궁에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답변을 거론하며 “전경련 해체에 앞장선다는 말을 왜 못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순실 사건 일어나고 나서 저도 고해성사를 했다.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새누리 해체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재용 증인은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서 새로운 경제 열어나가겠다는 의지 보여 달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나도 (새누리당 쇄신에) 실패할 수 있다. 이재용도 과거 정경유착의 구시대 잔재를 청산하는 데에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확고한 의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압박했다.

    더 나아가 하 의원은 “전경련에 기부금 내는 거 중지하겠다고 약속하라”고 거듭 강조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끝내 “그러겠다”는 답을 내놨다. 삼성은 전경련에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는 기업이다.

    정부의 세무조사 등이 두려워 두 재단에 자금을 출연했다는 재벌 대기업들의 해명과 관련해서도 하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자영업자들은 국세청에서 세무조사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세무조사가 두려워서 (자금을 출연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다?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안낸 걸 면제받기 위해 협조했다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국정농단 세력에 협조한 거 맞나, 틀리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은 “이 사건으로 이해 법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책임질게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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