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화된 미국인의 공포
    [텍사스 일기] 폭탄가방 대소동②
        2016년 11월 30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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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국이 시국인지라, 텍사스 일기 연재 글이 늦어졌다. 필자에게 원고 독촉을 하기가 어려운 시국이다. 그럼에도 진도는 나가야 하니 연재를 계속 이어간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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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 일기 : 폭탄가방 대소동① 링크

    미국 최남단의 대도시 샌 안토니오는 더운 지역입니다. 5월말인데도 불구하고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합니다. 물이 흐르는 인공운하 옆에서조차 그렇네요. 조카손녀가 탄 유모차를 아들이 밀고 다니는 바람에 녀석의 가방은 제가 대신 매었습니다. 관광선을 탄 다음(사진 1) 주위 산책로를 1시간 가량 걸어 다녔더니 모두들 허기가 졌습니다.

    사진 1

     

    차를 주차해놓은 힐튼 호텔 1층 푸드코너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각각 흩어져 새우볶음밥, 스파게티, 볶음국수, 피자 등을 한가득 골라옵니다. 배가 터지게 먹고 나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가방 좀 주세요.”

    제가 되묻습니다. “응? 무슨 가방?”

    식탁 주위와 의자 밑을 찾아봅니다. 안 보입니다. 분위기가 설국열차 달리는 들판처럼 싸하게 얼어붙습니다.

    나 : “(버벅거리며) 그게…. 뭐더라…. 가방을 니가 나한테 줬었냐…?”

    아들 : “아빠가 어깨에 매고 다니는 거 봤는데?”

    다들 식사 주문하러 간 사이에 가방과 유모차를 내가 지키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사이에 아무래도 깜빡 존 모양입니다. 딸아이가 눈을 흘기면서 추궁합니다.

    “누가 훔쳐간 거 아니에요?”

    “그 글쎄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아이들이 후다닥 일어섭니다. 식당 홀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러 사무실로 뛰어갑니다. 한참 만에 돌아온 아이들 왈, CC-TV에는 별 영상이 안 잡혀있답니다.

    잔뜩 기가 죽은 나 : “가방 안에 뭐가 들어있었…냐?”

    아들 : “배터리 충전기하고, 안경하고, 렌즈 통하고, 돈 하고….”

    나 : “그, 그래 많이 들어있었네.”

    그 순간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딸아이의 눈이 번쩍,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아까 우리 사진 찍은 곳에 놔두고 온 거 아녜요?!”

    머리 속에 필름이 좌르르 30분 전으로 감깁니다. 밥 먹으러 호텔로 돌아오는 길목에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 있었지. 뭔가 싶어 가보니 동상이 있었지. 맞아, 성 안토니오(St. Anthony) 동상!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오는 카톨릭의 유명한 성인(聖人)입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으로 35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요(그래서 사진 2.에서처럼 언제나 청년의 모습입이다). 탁월한 설교와 함께 50번 이상의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진 2

    리버워크 산책로에 세워진 성 안토니오 동상은 이곳에 놀러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 우리 일행도 사진을 안 찍을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천천히 슬로비디오로 장면이 떠오릅니다. 1) 식구들과 조카네를 동상 앞에 세운다. 2) 비장의 초 구닥다리 캐논 5D카메라로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다 3) “이모부 제가 찍어드릴께요 여기 와 서세요”, 라고 조카가 말한다. 4) 카메라를 건네준다. 5) 매고 있던 아들 가방을 동상 오른쪽에 살포시 내려놓고 한껏 포즈를 잡는다. 6) 줄 서서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 6) 허기진 배를 채우러 룰루랄라~ 푸드코너로 향한다. 7) 홀로 남은 가방이 울부짖으며 외친다. “Help me!”…

    성 안토니오는 스스로 세상을 떠난 도시 파도바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파도바의 성인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유명한 별명이 있지요. “잃어버린 물건 찾는 사람들의 수호성인”. 젠장, 이렇게 위대한 분 앞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다니!

    후다닥 성 안토니오 동상으로 달려갑니다. 가방을 흘리고 온 지 거의 1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그 자리에 놓여 있을까요. 일본에서 소지품 잃어버렸는데 반나절 후에도 그대로 있더란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갑니다. 혹시 미국도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동상 옆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텍사스가 강력범죄에 비해 좀도둑이 더 많다는 소문이 틀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아들 녀석, 신중한 성품 탓에 내색은 안 하지만 낙망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돈은 몇 푼 들어있지 않았고 휴대폰 충전기는 다시 사면 됩니다. 문제는 안경입니다. 오랫동안 쓰던 정든 물건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안경 구입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경점 간다고 덜렁 맞춰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반드시 안과의사한테서 처방전을 받아와야 합니다. 그 귀찮고 까다로운 절차와 비용을 생각하니 저도 맥이 탁 풀립니다.

    가방 뒤진 후 별게 없으니 근처에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의 노점상에게 누가 가방 버리는 것 못 봤냐 물어봅니다. 고개를 흔드네요. 동상 옆 길 좌우를 100미터 가량 왕복하면서 풀 섶을 샅샅이 뒤집니다. 쓰레기통까지 일일이 열어봅니다. 없습니다. 확실히 누가 가져간 겁니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리버워크 산책로. 시멘트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데, 흰 수염 기르고 마음씨 좋게 생긴 구역 담당 할아버지 경찰이 앞을 지나갑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들 녀석이 그에게 다가갑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눕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뭔 소리 주고받는지 잘 안 들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들 녀석이 환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게 아닌가요.

    “아빠 찾은 것 같아!”

    경찰 이야기인즉슨, 1시간 쯤 전에 누가 긴급 신고를 했다는 겁니다. 성 안토니오 동상 옆에 시커멓게 생긴 수상한 가방이 놓여있다고. 폭탄인 것 같다고! 관할 경찰에 비상이 걸린 건 당연한 일. 일단 동상 일대에 관광객 출입을 전면 차단시켰답니다. 폭발물 처리반이 가방을 조심스레 수거했답니다. 그리고 경찰서로 가져간 가방을 엑스레이 투시기로 철저히 검사했다는 겁니다(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음식을 먹고 있었으니 ㅠ ㅠ).

    뭐가 나올 리가 있나요. 몇 십 달러 현금과 동그란 안경 하나. 장방형의 자그만 예비 배터리. 그리고 콘택트렌즈 통 뿐. 그제야 경찰들이 휴! 한숨을 쉬고 가방을 열어보았다 합니다. 샌안토니오 경찰들 오늘 용궁 근처까지 갔다 되돌아왔습니다.^^ 물론 저도 다행입니다. 앞으로 사흘 동안 내내 식구들 잔소리를 들을 뻔 했으니.

    아들 녀석이 경찰서에서 가방을 찾아오는 동안 해프닝의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사건이야말로 미국이란 나라의 심리적 횡단면을 단칼에 잘라 보여주는 시범케이스란 겁니다.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악령처럼 사로잡고 있는 테러에 대한 공포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관광지에서 주인 잃은 가방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마 2가지 중 하나일 겁니다. 1) 누가 가방을 잃어버렸구나.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 2) 안에 뭐가 들었을까? 혹시 값비싼 게 있으면 흐흐흐…

    근데 일요일 오후 리버워크에 놀러온 미국인 관광객들은 달랐습니다. 검은 색 가방을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폭탄’을 떠올린 겁니다. 그래서 아무도 가방 주위에 접근하지 않고 부리나케 경찰에 신고부터 한 겁니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소동은 시민의식이 투철해서 생긴 일이 아닙니다. 테러에 대한 공포가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1년의 9.11 테러가 던진 엄청난 충격(사진 3). 그 후 십 수 년 동안 정부와 언론에 의해 광범위하게 증폭되고 심화된 공포심이 이제는 시민들 무의식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버린 것입니다.

    사진 3

    미국은 세계에서 입국 심사가 가장 까다로운 나라입니다. 명목상으로는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인권모독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신체투시기 등의 그 엄혹한 검사는 기실 테러 방지를 위한 용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영토(territory)를 지키고 있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서 두려움까지 완전히 제거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1852년 발간된 〈루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 : Der 18te Brumaire des Louis Napoleon>란 소논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진행된다고. 어쩌면 미국이 겪은 9.11 참극과 오늘 우리 가족이 샌 안토니오에서 겪은 코미디 같은 사건이야말로, 그가 언급한 역사적 반복의 사소하지만 현재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사람 수백 명이 벌벌 떨었건 말았건 간에, 오스틴으로 돌아오는 차 안의 한국인들은 몹시 행복했습니다. 집 나간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심정이 이러할까. 성 안토니오는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계시어 저에게 가호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가장의 위신을 간신히 되돌려받은 남자는 운전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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