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몬드라곤을 가다
    [몬드라곤-1] 조합원 주인의 철학
        2016년 11월 30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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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말 협동조합운동으로 유명한 스페인 몬드라곤 공동체에 연수를 다녀온 이원표 대전사회적경제연구원 부소장의 연수 경험기를 몇 차례 게재한다. 한국에서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커진 지 이미 제법되었지만 여전히 더 많은 관심과 실천, 실험들이 필요하다. 연수 관련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도 올라와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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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시간이 넘는 비행을 거쳐서 스페인 빌바오에 도착을 했습니다.(현지시각 23시, 한국 6시). 너무 피곤해서 잠이 올 줄 알았는데, 역시 시차 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아침이 되었습니다. 서머타임이 10월까지 적용된다고 해서 아침에도 너무 어두웠습니다. 새벽 같은 아침거리를 걸으며 어제 못 느꼈던 빌바오 시내의 정취도 잠시 느껴보고, 오늘 방문할 연수기관에 대해서도 잠시 머릿속으로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몬드라곤 헤드쿼터 : 몬드라곤 협동조합그룹(MCG) 본부

    몬드라곤 시는 빌바오에서 버스로 약 5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에로스키 매장을 지나갔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스페인에서 에로스키는 약간 중저가 이미지라고 합니다. 까르프나 다른 대형마켓에 비해 지금은 좀 밀려있는 상태이고, 가이드가 살고 있는 마드리드에서는 모두 철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로스키는 주로 도시 외곽이나 중산층 이하 거주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매년 5천만 유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연수 일정에 에로스키가 있으니 그 때 더 자세히 알아볼 생각입니다.

    버스에서 몬드라곤 이정표를 보는 순간, 진짜 “몬드라곤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몬드라곤 시의 풍경은 집단 공업지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오밀조밀한 아파트와 우리가 잘 아는 파고르(Fagor) 공장이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멀리 지명의 유래가 된 몬드라곤의 산도 보였습니다.

    사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직접 보니 전혀 용하고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몬드라곤이 ‘용의 산’이라는 뜻이지만, 지역의 유래와 용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철 생산지였던 이곳은 원래 ‘아라사떼(Arrasate)’라는 지명을 갖고 있었는데, 1260년 당시 왕이었던 산초 10세가 이곳을 영토로서 공식화하면서 지명을 몬드라곤(당시 montdragon, 나중에 ‘t’가 없어짐)이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아마 왕이 전날 밤에 술 취해서 그렇게 지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도 ‘용’은 좀 뜬금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금 공식지명은 ‘아라사떼-몬드라곤’입니다.

    몬드라곤1

    지명의 유래가 된 몬드라곤의 산

    헤드쿼터에서 우리를 반겨주신 분은 이곳에서 협동조합 홍보와 견학안내를 맡고 있는 Ander Etxeberria였습니다. 헤드쿼터의 주소를 보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다 길, 5’입니다. 호세마리아 신부(몬드라곤 설립자)를 잊지 않으려는 몬드라곤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 본 것 같아 잠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몬드라곤은 총 261개의 조직이 함께하고 있는 그룹이고, 이중 협동조합이 101개, 협동조합이 아닌 자회사가 128개입니다. 몬드라곤 시의 주민이 약 2만 2천명인데, 이 중 절반은 몬드라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는 곳도 몬드라곤, 일하는 곳도 몬드라곤인 셈입니다.

    사실 몬드라곤 뿐만이 아니라 바스크 지역에만 협동조합이 2천개 가량이 될 정도로 스페인은 협동조합의 나라인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몬드라곤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협동조합은 주로 소비(유토)나 농업에 집중하고 있다면 몬드라곤은 제조업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차이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몬드라곤에서도 점점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소와 토끼, 밀, 그리고 야채를 생산하는 4개의 농업협동조합이 현재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

    Ander는 몬드라곤의 4개의 기둥(제조업, 금융, 유통, 지식)을 간단히 설명하고 호세 마리아 신부님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나 여러 자료에서 보았던 내용이지만 이야기를 끊을 수 없었던 것이 호세마리아 신부에 대한 Ander의 열정적인 존경심 때문이었습니다.

    호세 마리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호세 마리아 신부

    몬드라곤에서 평생을 사시고, 몬드라곤의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던 신부님이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지역의 대표신부로 부임한 적이 없고, 지위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검소한 신부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몬드라곤의 최초 협동조합 울고(ULGOR)의 창립멤버 두 분이 아직 생존해서 몬드라곤에 살고 계신데 작은 집에 소형차 – 사실, 그 분들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아느냐며 놀라지 말라는 투로 차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무슨 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말하는 뉘앙스로 봐서는 베르나급 정도 되는 걸로 생각하고 넘어 갔습니다 – 를 타고 다닌다고 합니다.

    Ander는 여전히 몬드라곤에는 호세 마리아 신부님이 남긴 연대와 인간을 위한 직업(일)이라는 사상이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가려면 항상 일을 가져야하고 거기에 불평등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러려면 교육이 중요한데, 당시 세라헤라유니온의 부유층만이 받을 수 있던 교육 수혜를 모든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헌신했고, 그 결과로 오늘날이 몬드라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세 마리아 신부가 학교를 세우고 매일 학생들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는데, Ander는 당시에 학생이었던 분들이 추억하기를 “신부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려웠고,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신부님의 이야기는 은은하고 잔잔하게 내리는 가랑비와 같아서 비를 맞을 때는 몰랐지만 어느덧 푹 젖어있는 것과 같았다”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1956년 ULGOR가 만들어지고 그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몬드라곤의 배경에는 15년간 헌신적으로 마을주민을 만나고, 아이들을 교육시켰던 호세마리아 신부님의 활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몬드라곤의 조합원은 여기의 소유주이지만, 다른 회사의 소유주와는 다릅니다. 다른 회사의 소유주(주주)는 회사의 순자산에 대한 자기 지분을 요구하고 언제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판매를 하지만 몬드라곤의 조합원은 그럴 생각도, 그럴 수도 없습니다.

    Ander의 말에 의하면 매년 회사 순이익의 30%를 직원에게 분배하는데, 비조합원에게는 현금으로 조합원에게는 출자구좌로 적립을 하는 식입니다. 가입할 때, 15,000유로를 출자하기 때문에 7년 전에 가입했다면 지금 출자금은 76,543유로가 된다고 합니다. 회사의 자산이 얼마든 이게 각 조합원의 몫입니다. 나머지는 몬드라곤 전체의 자산이고 이것은 전체 조합원과 지역을 위해서만 쓰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고 지분에 관한 논쟁이 슬슬 불거지는데, 이처럼 조합 내에 불분할지분(자본을 조합원이 집단소유)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회사의 자산뿐만이 아니라 급여 역시도 급여 차이가 최대 6배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실 몬드라곤에서 경영상의 지위나 숙련도, 성과기여도에 따라 점점 급여 차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연수 참가자들이 많이 궁금해 했는데, Ander는 단호하게 6배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몬드라곤 역시 지금 갖고 있는 고민의 핵심은 어떻게 조합원들을 주인으로 만들까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몬드라곤의 철학을 조합원들이 인식하고 조금 더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몬드라곤은 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7월 20일에 총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이 문제가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였고, 협동조합다움으로 돌아가려는 몬드라곤의 노력이 앞으로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사실, 올 해 총회에서 논의되는 안건 중에 하나가 ‘2017/2020 Sociocorporative Policy’였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여기에 대해 자세한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명함을 받았으니 나중에 이메일으로라도 물어볼 생각입니다.)

    오이나리 : 몬드라곤 지역 신용보증 기관

    몬드라곤 시에서 점심을 먹고, 몬드라곤 시와 빌바오 중간쯤에 있는 오이나리(Oinarri)를 찾았습니다. (스페인의 식사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짭니다. 그래서 고추장 따위는 생각나지 않고, 담백하고 좀 느끼한 게 먹고 싶습니다. 내가 이상한가?)

    오이나리는 신용보증회사입니다. 한국의 신용보증재단과 같은 역할인데, 이를 민간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맞아주신 분은 회사 대표이신 Pio aguirre이었습니다.

    오이나리는 몬드라곤의 중요한 파트너지만 협동조합은 아닙니다. 스페인과 유럽연합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신용보증회사이고, 이 법에 따라 움직입니다. 스페인에 오이나리와 같은 신용보증회사가 20개가 있고, 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이나리가 다른 신용보증회사와 다른 점은 바스크 지역에서 몬드라곤과 같은 협동조합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는 점뿐입니다.

    스페인의 신용보증회사는 대출을 받기 위한 중소기업을 회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입금을 내고 회원이 된 이후에 보증을 받을 수 있고, 스페인 법률에 따라 해당 신용보증회사의 회원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인데, Pio는 오이나리를 비롯하여 신용보증회사들이 이렇게 운영되는 것은 맞지만 협동조합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대출을 원하는 기업이 가입금(가입금은 대출을 모두 상환하고 회원에서 탈퇴하면 돌려줍니다)을 내고 회원이 되면 회사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사업을 이용하는데 ‘협동조합’은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는 이유를 좀 더 생각해보아야겠지만, 일단은 법률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인 것이 1차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증의 과정인데 아마 이것 역시도 협동조합임을 부정하는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Pio의 말에 의하면, 보증심사를 거쳐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중에 10%는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손실의 50~70%는 ‘CERSA’라는 파트너십을 갖는 공동체에서 손실금을 보조해줍니다. 일종의 재보증인데, ‘CERSA’는 몬드라곤과 에르끼데와 같은 바스크지역의 큰 협동조합그룹과 스페인정부, 그리고 유럽연합에서 나눠서 해당 손실금을 부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바스크주 정부도 손실금을 보조해주는데, 이 때문에 오이나리가 부담하는 손실금은 20%에 불과합니다. 보증을 하게 되면 1%의 보증수수료를 받는데, 이 보증수수료는 일부 운영비로 쓰이고 나머지는 적립이 되어서 오이나리의 대출손실을 메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오이나리의 보증은 결국 상당 부분 공공자금에 의해서 운영되고, 이는 오이나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용보증회사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중소기업을 살려 지역경제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만들려는 스페인과 유럽연합의 정책적 결정에 의하여 시행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조직의 구성과 운영방식이 협동조합과 유사하지만 그 운영자금과 목적, 존립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협동조합이라는 결사체이자 사업체인 이 회사는 그 존재 자체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 스페인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보증과 대출이 이뤄지면 바로 ‘도덕적 해이’ 논란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 일어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투융자 정책이 필요함을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몬드라곤1-3

    필자소개
    대전사회적경제연구원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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