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과 광장의 에너지
    '어떤 나라 만들 것인가' 집중하자
        2016년 11월 29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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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탁 정의당 부대표가 부정기적으로 정치 칼럼을 보내주기로 했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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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사건은 이미 예측하고 있던 계기에 의해 촉발되는 것 같지 않다. 사건이 정리되고 난 이후 돌이켜보면 그 계기적 사건이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실시간 진행 과정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연속해서 사건의 흐름을 구성한다.

    12월 정기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이 이루어진다. 2일과 9일 국회 본회의가 개최되는데, 현재로서는 예산안 심의가 있는 2일보다는 9일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찬성 표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누리당 비박계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면 탄핵심판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청구 기각까지 걸린 기간은 63일이었다. 그 전례에 따른다면 2월 초에 탄핵심판 결정이 이루어진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1월 31일이어서, 임기 내에 심판결정이 이루어 질 가능성도 높다.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파면 결정 후 60일 이내에 보궐선거일(4월 12일)이 포함되어 있다면 보궐선거일에 대통령 선거를 함께 치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장 임기 내에 파면 결정이 이루어지면 3월 말에 대선을 치를 수도 있다.

    따라서 탄핵 소추가 이루어지면 본격적으로 대선 경쟁이 불붙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온갖 우연의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의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있다. 하나는 각 당과 대선 후보들의 정치적 행보가 광장의 에너지와 따로 갈 수 있는 위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당들의 각개행진 및 좌충우돌의 모습이 신뢰의 위기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보수의 재결집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다.

    탄핵소추가 되면 촛불의 열기가 사그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에 대해 나는 지나친 기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촛불은 마치 계획이라도 한 듯이 하나의 목표지점을 향하고 있다. 대통령을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게 한다는 목표이다. 하야가 되었든, 탄핵이 되었든 그 형식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탄핵 소추가 이루어지면, 파면 결정이 나올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광장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나눌까에 있다. 200만에 가까운 촛불의 행위에서 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저항의 함성에 머물지 않고,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대하지만 차분한 집단 의지를 보여주었다. 광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이제 우리가 만드는 대한민국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야당은 이 에너지와 함께 가야 한다. 이 거대한 파도를 누가 만들었는가? 마치 파동이 서로를 증폭시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듯이 이 거대한 힘이 만들어졌다. 누구라도 이 파도를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 양, 또는 이끌어 갈 수 있는 양 행동한다면 그 힘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많은 물은 큰 그릇이 필요한 것처럼, 이 에너지를 담을 큰 그릇이 필요하다.

    2016년 12월 31일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그 마지막 종소리를 신호로 새로운 새벽을 열어야 한다. 신새벽이라 해도 좋고, 7공화국이라 해도 좋다. 어떠한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특히 힘을 가진 정치인들은 작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광장의 에너지를 담을 그릇을 만들겠다는 큰 욕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다. 간간히 듣는 여론 조사는 힐러리의 당선을 크게 의심하지 말라고 요구하였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대세 효과를 노린 듯하다. 간혹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했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아주 자신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박근혜의 당선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 역시 여론 조사를 지나치게 믿은 탓이다. 흔히 듣는 오차범위 ± 2.5%, 95%의 신뢰도라고 하는 말이, 현실에서는 사람들을 너무나 안이하게 만든다. 위대했던 역사적 사건의 출현은 대부분 오차범위에서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난 이후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조합된다. 열패감에 빠진 백인 남성 노동자들의 반란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심지어는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을 뿐, 트럼프의 당선은 불가피한 객관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은 불가능했던 것인가? 힐러리는 애초부터 당선될 수 없었던 객관적 열위에 있었던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전략이다.

    과거는 현재로 수렴하고 현재는 미래로 발산한다. 현재로 수렴되는 과거는 현재를 만들기 위해 존재했던 설명될 수 있는 사건이지만, 현재는 미래를 설명하지 못하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몇 가지 뚜렷한 선들만 모아서 정리해도 아주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부차인지 각자 나름대로의 체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그렇게 설명될 수 없다. 이미 우리가 누차 경험하고 있는 바이다.

    200만 촛불이 앞으로의 경로를 이미 설정해 놓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것이 아니라 박근혜를 버린 것이다. 박근혜를 지지했다가 촛불의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너무나도 크게 입은 분들이다. 그 상한 자존심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진보와 개혁의 가치로 세계관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것이다.

    야당과 야권 대선후보들이 마치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교만함을 보이거나, 정국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좌충우돌한 모습을 보인다면 마치 썰물 빠지듯 민심은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다. 불안한 야당보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제대로 된 보수의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인물에게 힘을 실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자. 그 어떤 나라의 상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 과거의 이것은 이래서 문제였고, 저것은 저래서 문제였다는 어법은 저항의 시기에 맞다. 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시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새벽을 여는 어법을 찾자. 광장의 에너지를 담을 그릇을 만들자.

    * 사족 : 지난 10월 레디앙 편집장을 서울대병원 백남기 선생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레디앙에 글을 좀 써 올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글 쓸 짬을 내기가 만만치는 않을 것이어서 선뜻 답을 하면 안 되었는데, 그만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10월에 요청이 있었는데도 글을 쓰지 못했다. 급기야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김형탁을 약속을 지켜라’라는 편집장의 항의의 문구가 등장하였다. 페이스북에도 글을 잘 못 올리는 형편이었는데 최근에 정국과 관련하여 한 마디 올렸더니, 아차! 그것이 빌미가 되어 약속 이행을 공개적으로 요구받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11월이 지나가기 전에 글을 보내지 않으면, 그나마 선후배의 정마저 끊어질까 염려되어 뚝딱뚝딱 글을 써 보내게 되었다.

    필자소개
    정의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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