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의 정치화와 급진화
    [기고] '착한 시민'과 DJ DOC 논란
        2016년 11월 28일 02:52 오후

    Print Friendly

    11월 26일 촛불 시위는 대성공이었다. 눈이 오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150만, 전국 200만이라는 경이적인 시위 참여는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촛불시위의 성과들에 고무되어 거대한 대중적 열기를 예찬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이미 촛불시위는 그 성격과 방향을 둘러싼 논쟁들에 직면했다. 이날 시위에 앞서 두 가지 논점이 온라인을 도배했다. 현 국면이 단기적으로 끝날 사건이 아니기에, 더 나은 민주적 체제를 만들기 위한 긴 과정의 일부이기에, 이러한 논쟁은 필요하며 불가피하다. 나는 여기에 내 생각을 피력함으로써 동료 시민들과의 토론에 기여하고자 한다.

    집회

    26일 150만명이 참여한 광화문 촛불집회의 일부 모습

    첫째 논점은 ‘착한 시민’ 프레임에 대한 것이다. 나는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착한 시민들’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곧 ‘폭력시위’만이 진정한 시위이며 촛불이나 문화제는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는 식의 딜레탕트 극좌파의 주장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폭력/비폭력이란 문제설정은 핵심도 아니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논점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핵심은 시위 참여자들이 경찰 차벽에 붙은 스티커까지 제거해주는 ‘착한 시민들’이 아닌 ‘정치적 시민들’, 즉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권자임을 선언하는 정치적 주체로 거듭난 시민들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촛불집회가 실정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헌법적 권리(주권자로서 국민)를 요구하며 저항하는 정치적 성격을 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박근혜 이후’를 상상하고 그에 대한 정치적 토론이 공론장에서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단지 박근혜나 최순실 개인에게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재벌과 유착한 국가, 청년들의 삶을 산산조각낸 헬조선의 기득권 자본주의, 세월호 참사 때 생명을 방기하는 집권세력의 부도덕함, 공정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과 이제껏 집권세력의 부패를 방조해온 검찰, 한 마디로 한국이란 국가의 모든 공적 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한국형’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가 이 거대한 정치적 흐름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이후에는 어떤 정치적 질서가 펼쳐질 것인가? 12월 초 야당이 발의하는 탄핵안이 일부 비박계의 지지를 얻어 통과된다면 박근혜는 직무정지될 것이고 황교안이 국무를 대리하다가 6개월 뒤 헌재에서 합헌 판정이 나면(이것도 불확실하지만) 60일 뒤 선거를 거쳐 야권후보(이재명을 미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으론 문재인)가 당선하는 것. 이것이 아마 시위 참여자들 대다수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100만 이상의 시위대가 매주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 정치적 사건의 귀결이 ‘야권당선’에만 국한된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 이상을 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 이상을 원할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닐까. 시위에 나선 시민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이제 박근혜의 지지율이 4%로 떨어진 상황에서 단지 ‘박근혜에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박근혜 정권으로 대변되는 기성 정치 질서가 망쳐놓은 모든 것을 재건할 수 있는 정치적 의제를 제기해야 한다. 롯데, 삼성 등 불법을 일삼은 재벌총수들의 구속, 법인세 인상과 보편적 복지, 세월호 특조위 재건,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철회, 백남기 사망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배상, 국정원과 검찰의 정치개입 차단 등을 요구하고 또 시위의 자유 역시 요구해야 한다.

    이제 광화문의 축제는 ‘박근혜’ 개인에 대한 비난과 분노표현을 넘어 새로운 사회체제를 상상하고 기획하는 공론장, 아고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위는 더욱 더 ‘정치적’인 방향, ‘박근혜 이후의 변화된 한국사회’에 대한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시위 참여자들은 ‘착한 시민들’이 아니라 기존 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성난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해 토론하고 주장하는 민주적 ‘대중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논점은 집회 공연이 취소된 DJ DOC에 관한 것이다. 공연 취소 발표 이후 온라인 게시판과 소셜미디어에는 이 결정을 존중하는 입장과, 이에 반대하며 여성들의 ‘과도한’ 요구를 지적하는 입장 사이의 논란이 벌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DJ DOC를 돌려내라면서 혐오발언을 섞어가며, 과격한 ‘페미’들의 주장이 촛불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 거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틀렸다. 촛불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것은 온갖 혐오발언들을 섞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공격충동을 해소하는 마초 남성들이다. 다른 성을 배제하면서 진행되는 시위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래퍼 산이의 혐오적 가사를 정권 비판으로 둔갑시켜 보도한 몇몇 ‘진보’ 언론사들을 보며 큰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제목부터 ‘나쁜 년’이다. 물론 중의적 뜻(Bad year)으로 썼지만, 문자 그대로는 영어의 bitch에 해당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이다. ‘그와 넌 입을 맞추고 돌아와 더러운 혀로 핑계를 대’ 같이 박근혜를 ‘음란한 여성’으로 모는 가사가 이를 증명한다. ‘병신년’ 같이 장애인과 여성을 동시에 비하하는 가사도 등장한다.

    DJ DOC의 새 노래 ‘수취인분명’은 래퍼 산이만큼 저열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관점의 표현이다. ‘미스 박’이 성형 주사로 하도 얼굴을 찔러대서 퉁퉁 부었고 얼굴이 빵빵해졌다는 내용은 ‘성형녀’ 이미지를 대통령에게 덧씌운 것이다. 한 마디로 ‘김치녀’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말로 들린다. 이런 노래들은 촛불시위의 미래에 아무런 긍정적 영향도 줄 수 없다. 나는 그들의 공연을 취소한 주최측의 결정이 옳다고 본다.

    이제는 박근혜의 지지율이 4%로, 퇴진 찬성 여론도 90%에 육박한다. 이제 와서 누구나 반대하는 박근혜를 비난하는 행렬에 가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다가 박근혜의 ‘여성성’에 대한 공격을 은근슬쩍 정치적 비판과 뒤섞어버린 래퍼 산이나 DJ DOC류의 마초 가수들의 행위는 정혀 영웅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혐오 가사를 유포하는, 이제 와서 관심 좀 끌어보려는 유명 가수들보다는 그들의 공연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하는 여성들이야말로 시민적 정치적 주체로서 더욱 성숙한 사람들이고, 집회 주최 측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잘한 일이다. 중요한 사실은 ‘여성’으로서의 권리가 시위의 현장이라는 민주주의의 무대에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큰 진보다. 내가 촛불집회가 더욱 정치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 가깝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나는 우리가 더 많은 토론과 논의들과 마주함으로써 이 민주주의의 축제를 풍성한 담론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촛불시위가 더욱 정치화되고 급진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변혁의 길은 그러한 다양한 마주침들이 이루어낼 새로운 성좌로 우리 앞에 드러날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시립대, 충북대 강사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