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 DOC 논란,
    문제는 가수 아니라 무대
    [기고] 주최측은 중앙무대 축소하고 행진 개입 최소화해야
        2016년 11월 28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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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니 DJ DOC가 SNS를 달구고 있다. 이 사람 글을 읽으니 이게 맞는 것 같고 또 다른 사람 글을 읽으니 그게 또 맞는 것 같다. 들어봐야 알 것 같아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결론적으로 내 귀에는 크게 거슬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미스’가 여성에 대한 비칭인 것처럼 ‘미스터’도 남성에 대한 비칭으로 쓰인다.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국민들이 영어에서 온 말들을 낮은 격으로 쓰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물론 한자어는 그 반대로 취급되고 있지만 말이다.

    디오시

    유투브 화면

    상대에게 모욕을 주고자 할 때 쓰이는 말을 ‘비어(卑語)’라고 한다. ‘욕’도 비슷한 말이며 대부분의 비어는 사회 약자와 관련이 있다. 여성, 장애인, 거지 부랑아 등 사회 하층민이 그러한 약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어를 사용하는 순간 약자 차별, 소수자 혐오의 굴레에 쓰일 수밖에 없게 된다. ‘바보’, ‘천치’, ‘병신’은 장애인, ‘씨팔’은 여성, ‘암적 존재’는 암환자와 관련이 있다. ‘지랄이 풍년’, ‘염병하네’, ‘거지같다’ 같은 말도 간질환자, 장티푸스환자, 무산자 비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약자 차별과 소수자 배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비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기모순일까? 두 가지 이유에서 ‘당장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째, 강자에게 사용하는 욕은 일종의 전복이기 때문이다. 비어를 약자나 소수자에게 사용한다면 곧바로 차별과 배제가 되겠지만 강자에게 사용할 때 그것은 강자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전복의 힘을 갖는다. 약자나 소수자와 관련되지 않은 비어가 있다면 좋겠지만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또 비어를 쓰지 않고 강자를 비난하면 좋겠지만 ‘통쾌한’ 맛이 떨어진다.

    나를 포함해 다수는 그 잘못된 통쾌함에 길들여져 있고, 앞으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당장은 쉽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대화 이후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런 말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자주 쓰여서 원래의 비어들을 대체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둘째, 비속어의 사용은 그 자체로 지배질서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비‧속어의 사전적 정의 중 하나는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이다.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이 비속어를 쓰는 것은 그 자체가 점잖고 귀한 것만을 대접해온 사회에 대한 항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여전히 DJ DOC의 ‘수취인분명’에 등장하는 ‘미스’나 ‘얼굴이 빵빵’을 여성 일반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 또한 두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 백 가지의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광화문 광장의 무대에는 누가 올라야 하는가? 누가 올라야 감동과 화합 모두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런 가수는 없다. 있다면 그 또한 파시즘의 발현이다.

    문제는 가수가 아니라 무대다. 무려 100만 명이 지켜보는 단일한 무대를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아니 무리를 넘어 파쇼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무대 앞으로 모으려는 시도는 다분히 전체주의적이다.

    26일 늦은 밤, 광화문 광장 남단의 이순신 동상 앞에 ‘하야하락(樂)’ 콘서트가 열렸다. 규모는 작았지만 열기는 세종대왕 동상 쪽의 본무대 못지않았다. 거대한 하나의 무대보다는 작지만 다양한 이해와 감성을 담은 여러 무대가 곳곳에 만들어지는 게 훨씬 더 ‘광장’스럽다. 양희은이건 DJ DOC건 부르고 싶다면 광장 한 귀퉁이에서 무명의 다른 가수들과 똑같이 소박하고 겸손한 무대를 가지면 된다. 마찬가지로 양희은의 무자격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격 있는 민중가수를 부르면 되고, DJ DOC의 언어가 싫은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무대를 만들면 된다.

    주최 측은 자신의 역할을 집회신고와 공간 확보에 그치고 광장을 수많은 소주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아니, 애당초 저항행위에 주최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주최 측이 사람들을 이끌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주최 측의 지시와 요구대로 움직이는 것은 저항이 아니라 또 다른 종속이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중앙무대를 축소하여 광장을 광장답게 만들어야 한다. 광장에는 질서와 통제보다 무질서한 자유가 어울린다. 무대뿐만이 아니다. 시위 행렬의 이동에도 인위적인 개입을 금하고 최소한의 안내만 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필자소개
    대학과 대학원에서 차례로 역사학과 행정학과 정치학을 전공했고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사회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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