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의 운명,
    그리고 미국의 맨 얼굴에 대한 성찰
    《미국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성찰》(장순/후마니타스)
        2016년 11월 26일 04: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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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도둑처럼 찾아 온 해방과 미군의 진주, 그리고 미군정이 주도했던 해방 정국에서 벌어졌던 거대한 혼란과 좌익 척결,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적 비극의 한가운데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5.16 군사 쿠데타로 말미암아 외국으로 떠나야 했던 저자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파편화된 사건들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던 거대한 힘의 실체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맞닥트리게 된 ‘미국’의 맨얼굴에 대한 증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순은, 일제강점기에 종교계와 교육계, 문화계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후에는 신생 대한민국의 제2대 국무총리, 특히 4.19 이후 민주당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기도 했던 장면 박사의 넷째 아들이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성찰

    저자는 현대 한국의 엘리트 집안 출신이지만,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15세의 어린 나이에 피난길에 나섰고, 결국 고국을 떠나 이국땅에 정착했다. 미국에 정착한 후, 저자는 조지타운대학교에서 현대 서양철학 및 정치사상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6년에서 1999년까지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센터의 연구원으로 부전공 분야였던 중국 사상과 역사를 연구했다.

    그는 정치사상과 중국 고대 철학을 연구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일생을 뿌리 채 흔들어 놓았던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과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이 책은 저자의 이 같은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성찰》은 전쟁과 독재 등 상당 부분 비극과 파행으로 치달은 한국 현대사와 미국의 상관관계를 주목하는 데서 출발해, 미국이 현대 한국사에 개입하게 된 배경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다면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미국 사회 특유의 ‘자명한 운명설’(미국의 팽창은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믿음)과 인종주의, 그리고 그것의 현대적 판본인 ‘미국이 주도하는 하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적, 사상적 배경을 탐구한다. 나아가, 이런 비전들이 수백만의 인종 학살을 낳은 인디언 전쟁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및 필리핀 전쟁, 한국전쟁 등 구체적인 현실에서 미국이 취했던 태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의 이 같은 비전은 미국 초기의 서부 개척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이 같은 서쪽으로의 확장은 초토화 정책 및 수백만 명에 이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체계적인 학살을 비롯해, 필리핀 정복과 점령을 포함한 태평양 건너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적 모험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인종 학살을 통한 아메리카 대륙의 토지 수용과 수백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수세대에 걸친 잔혹한 노예화에 토대를 둔 경제에서 비롯되는데, 이 같은 끔찍한 폭력과 제국주의적 정복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및 소위 적에 대한 비인간화가 미국 건국의 설계자들의 세계관의 특징이며, 그것이 미국의 서부 팽창을 주도한 여러 세대의 장군들을 통해 전해 내려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1880년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반란군 진압 작전을 지휘했고 미국-필리핀 전쟁 동안 반란군의 진압을 위해서 필리핀에 파견되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은 미국의 서부 팽창을 “태평양을 가로지른 웅장한 아리안들의 전쟁”으로, 필리핀을 “학습 중인 부속국”으로 보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태평양 건너에 살던 사람들을 문명화되어야 할 원시인들이라고 본 아서 맥아더 장군의 견해는 아들인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전수되었으며, 한국전쟁 동안 미군의 지휘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는 한반도의 이북을 한 미군 장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것도 서있지 않은” 완벽한 파괴 속으로 몰아넣고, 이남의 대부분도 파괴해 버린 융단폭격 작전을 지휘했던 것이다.

    초기 식민지 시대 개척사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략과 선택, 진주만 공습을 통해 시작된 일본과의 전쟁 그리고 어느 날 느닷없이 결정된 미국의 한반도 진주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미국의 한반도 개입의 근원에 “세계를 자신의 패권적 지배하에 하나의 영토로 통합하고자 했던 미국의 비전”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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