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임대주택,
    에너지복지와 주거복지의 만남
    [에정칼럼]에너지전환 기여와 기후변화 대응 역할도
        2016년 11월 25일 04: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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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눈이 내린다는 절기 ‘소설(小雪)’(올해는 11월 22일)인 오늘 출근길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이면 고흥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촛불화재 사건이 다시금 생각난다.

    2012년 여름, 우리나라가 세계 7번째로 20-50클럽의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 명) 반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그해 겨울, 전기요금 미납으로 단전이 된 전남 고흥의 한 가정에서는 밤에 촛불을 켜고 자다가 이불에 불이 옮겨 화재가 났고 할머니와 외손자가 사망했다.

    고흥

    2012년 11월 고흥 촛불화재 사건의 현장

    세계 7번째 20-50클럽 달성이라는 화려한 숫자의 이면에는 6개월치 전기요금 15만7천원을 내지 못해 60대 할머니와 여섯 살 외손자가 숨지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것일까? 우리 사회 한편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면 전화 한 통, 공문 한 장에 800억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전경련을 통해 어느 재단에 순식간에 모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02년 Rio10+ 세계정상회의에서 에너지가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받았다. UN산하기구나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들도 에너지기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개발도상국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전기를 공급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에너지는 이제 의식주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본권인 것인데, 이상기후로 인해 폭염과 한파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에너지는 이제 한 사람의 생명과도 직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에너지복지는 아직 우리나라 복지체계에서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에너지복지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제2의 촛불화재, 폭염과 한파로 인한 사망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계속 에너지복지를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에너지복지 정책으로는 동절기 에너지 비용을 지원해주는 에너지바우처와 저소득층 주택에너지효율화사업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에너지바우처의 경우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먼저 저소득층의 주거지는 보통 매우 노후하고 에너지효율이 낮은 주택이어서 겨울철이면 단열이 잘 되지 않고 여름철이면 폭염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에너지바우처를 지급한다고 해도 효율이 좋은 주택에 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또한 에너지바우처의 경우, 저소득층 가구의 특성 상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도시가스보다는 연탄, LPG, 등유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화석연료를 지원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태양광·태양열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하면서도 에너지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저소득층의 대부분은 월세나 사글세로 살고 있기 때문에 태양광·태양열 제품 설치의 수혜가 저소득층보다는 임대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고, 자가의 경우에도 노후건축물 구조상 태양광·태양열 제품 등을 설치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소득층 주택에너지효율화사업 역시 이미 노후화된 주택에서 에너지 효율을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에너지복지는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에너지바우처나 주택에너지효율화사업은 현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책이기에 꼭 필요한 정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근본적인 대책도 함께 고민해야 하겠다. 에너지복지의 근본적 대책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주거문제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그 해법으로 ‘녹색임대주택’을 제시하고자 한다.

    녹색임대주택은 임대주택에 패시브공법을 적용하여 에너지효율을 극대화하고 태양광·태양열·지열 등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활용하며 나아가 생산된 에너지를 에너지저장장치에 저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녹색임대주택은 저소득층에게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보장하면서도 저소득층 가구의 에너지비용을 낮출 수 있어 에너지복지와 주거복지를 함께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건물에너지 효율성 제고, 궁극적으로는 건축물의 에너지생산을 통해 우리나라의 에너지전환에 기여하고 기후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임대주택 보급률은 약 6%에 불과해 유럽의 20~30%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임대주택 보급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한 형편인데, 바꿔서 생각해보면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녹색임대주택에 대한 잠재성, 그리고 그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몇 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에너지복지의 일환으로 태양광을 임대주택에 보급해주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임대아파트에 미니태양광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지자체의 사례도 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이 전기료를 아낄 수도 있고 재생에너지를 보급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러나 임대주택을 건설할 때부터 이를 고려하면 비용이나 효과성 측면에서도 훨씬 좋을 것이다.

    또한 2020년부터는 공공건축물에 제로에너지빌딩 설계가 의무화된다. 그러나 제로에너지빌딩은 ‘제로’를 어느 기준에 두느냐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지니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더불어 ‘에너지 제로’가 아니라 ‘에너지 생산’빌딩으로 개념을 잡아야하지 않을까.

    가장 이상적인 녹색임대주택은 패시브공법과 재생에너지의 조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래 사진과 같이 건축물 디자인이 재생에너지 보급에 최적화된 형태다. 건축 디자인은 중세의 종교적 건축, 근대의 실용주의적 건축 등 한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데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오늘, 기후친화적 디자인이 건축 디자인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에정컬럼사진_서울정책아카이브

    태양광 설치에 최적화 된 건물 (출처: 서울정책아카이브)

    헌데 이 건물의 주인공은 서두에 언급한 800억 모금의 정체인 전경련이라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죄는 미워하되 건물은 미워하지 말자. 어찌됐든 주거복지와 에너지복지, 나아가 에너지전환에 기여하는 녹색임대주택이 하나 둘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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