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참한 대학 생활은
    비참한 사회의 반영이다
    [책소개]《비참한 대학 생활》(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책세상)
        2016년 11월 20일 02: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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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의 현실은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대학은 자본주의의 하급간부를 육성하는 공장이 되었고, 지식인들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 “대학생은 사회 전체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소외에 대한 저항에 나설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66년 11월 《비참한 대학 생활》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분출된 프랑스 대학생들의 목소리다. 국제적 전위조직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과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총학생회가 함께 제작. 배포해 당시 대학가와 프랑스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던 이 작은 책이, 분노와 저항의 함성으로 뜨거운 오늘 대한민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68운동보다 1년 반 앞서 1966년 11월 22일부터 스트라스부르 캠퍼스 곳곳에 뿌려졌던 이 책은 당시 대학생들의 비참한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그 근원인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극복할 새로운 혁명의 방향을 제시한 격문이자 시국선언이었다. 이 책이 제시한 ‘일상생활의 혁명’은 68운동의 신호탄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이후 전 세계 학생운동 및 혁명운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비참한 대학생활

    2016년 한국의 대학 역시 50년 전 프랑스 대학의 ‘비참한’ 생활과 멀리 있지 않다. 흙수저, 헬조선 같은 신조어가 상징하듯,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빈곤의 한복판에서 고투하고 있다. 학점 관리, 취업 준비의 압박에 시달리지만 졸업 후의 전망도 암담하기만 하다.

    자본과 권력에 포섭된 대학이라는 현실 역시 유사하다. 시장 논리와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교육행정이 대학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하는 대학생의 선언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재정 지원이라는 권력 앞에서 장기적이고 통찰력 있는 학문 연구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며, 대학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도 이러한 상황을 묵인하는 쪽에 가깝다.

    비참한 대학 생활을 행복한 대학 생활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 책은 대학생들에게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말고 사회의 비참함에 눈을 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참함의 근원인 사회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의 축제적 전복이라는 새로운 혁명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제언은 실제로 전 세계 수많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적 실천에 나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저항과 혁명의 슬로건을 외치게 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지금 한국 사회도 저항의 촛불이 거대한 횃불로 타오르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으며, 그 현장에 대학생들이 있다. 권력의 사욕에 이용당했던 이화여대는 학생과 교수들의 저항으로 총장 사퇴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헌정 질서가 파괴되는 참담한 현실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는, 비참한 대학의 현실이 비참한 사회의 반영이라는 인식을 확대시키며,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참여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50년 전 프랑스 대학생들의 저항이 대학 개혁과 사회 변혁을 이끌어냈듯, 오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대학을 만들어가는 데, 나아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향해 연대하는 데, 이 책의 목소리는 크고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사회에 저항할 때 나의 비참함에 저항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대학생이 “성직자와 경찰 다음으로 가장 널리 멸시받는 존재”라는 도발적인 비판으로 시작한다. 대학생들이 1960년대 소비자본주의의 물신주의적 스펙터클 사회에서 신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빈곤 영역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궁핍한 대학생의 처지를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들에게도 비판의 칼을 겨눈다. “무책임하고 온순한 ‘연장된 미성년’ 시기”에 머물러 있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결핍에만 관심을 둘 뿐 사회의 총체적 비참함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대학이 자본주의 사회의 수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배계급의 인식이 대학 위기담론의 실체이며, 이들이 지배하는 경제체제가 무교양 대학생들의 대량생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학이 “제도화된 무지의 기구로 전락”해버렸다. 따라서 저자들은 대학 구조개혁에 찬성하는 학생운동 내 근대주의자들, 그리고 대학이 자본주의 하급간부를 “속성으로 키워내는 공장”으로 변화한 현실에 저항하지 않는 당대의 진보 지식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현실의 비참함을 은폐하는 과시적인 소비문화도 비판 대상이다. 대학생들이 문화상품이라는 “아편”에서 현실의 “환상적인 보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 내에 도입된 심리상담소라는 “유사경찰의 통제에 자발적으로 의존하는” 학생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심리상담이 선사하는 순간적 위안이 저항의식을 억누르고 자본주의 상품논리를 내면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리학 도서 열풍이 거세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당의정 처방이 위력을 발휘하는 한국 사회로서는 기시감이 드는 대목이다.

    이 책은 보헤미안적 삶의 방식으로도, 심리상담으로도, 문화상품 소비로도 해결되지 않는 “대학생의 극단적 소외에 대한 저항은 오직 사회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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