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녹색 총리 탄생할까
    아이슬란드 독립당 연정구성 실패
        2016년 11월 18일 0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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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첫 좌파녹색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주인공은 아이슬란드 좌파녹색운동 대표인 카트린 자콥스도티르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실시된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 독립당은 21석을 획득하며 제1당을 차지했다. 제2당은 10석(15.9%)을 얻은 좌파녹색운동, 제3당은 10석(14.5%)을 얻은 해적당, 제4당은 8석을 얻은 진보당이 각각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이달 초 요하네손 대통령은 제1당인 독립당 대표 바르니 베네딕손에게 연정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베네딕손은 부흥당(7석), 밝은미래(4석)와 연정을 논의했지만 평행선만 달린 채 실패로 돌아갔다. 요하네손 대통령은 난항을 겪을 것을 예상해 한 달이라는 기간을 주었지만 2주일 만에 베네딕손은 연정 구성 권한을 포기했다. 요하네손 대통령은 연정 구성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제2당인 좌파녹색운동 대표인 카트린 자콥스도티르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번 조기총선은 지난 4월 조세회피 폭로 문건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진보당의 다비드 귄로이그손 총리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 실시됐다. 선거는 시작부터 집권당인 진보당 심판의 성격이었고, 그동안 대기업 탈세의 강력한 처벌을 주장해왔던 해적당의 지지율은 40%까지 치솟았다. 선거 직전까지 20%의 지지율을 유지하던 해적당은 좌파녹색운동 및 밝은미래, 사회민주동맹과 연정에 합의했다. 개표 결과 좌파녹색운동이 해적당에 1.4% 차이로 앞서면서 예상을 뒤엎고 제2당을 차지했다. 독립당이 연정 구성에 실패할 경우 좌파녹색운동이 다음 권한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좌파녹색운동의 집권, 산 넘어 산

    독립당의 연정 구성 실패는 어느 정도 예상되고 있었다. 연정에 필요한 과반의석(32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3개 정당 이상이 필요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부흥당이 독립당과의 연정에 부정적이었다. 부흥당은 독립당을 탈당한 세력들이 만든 당이기 때문에 감정문제는 차치하고 EU 가입을 둘러싼 입장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부흥당은 EU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독립당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같은 당 안에 받아들이기 힘든 노선을 가진 그룹이 존재했던 것이다.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어업쿼터의 축소는 필수적이다. 아이슬란드 수산업 관련 경제인구는 3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좌파녹색운동이 얻은 득표수가 3만 표다. 어느 정당도 어민을 위협하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연정 구성 권한을 부여받은 좌파녹색운동의 앞날도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좌파녹색운동 이념 중의 하나가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 즉, EU 가입 반대를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흥당이 EU 가입을 계속 주장한다면 연정 구성은 교착상태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 좌파녹색운동이 집권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흥당이 EU 가입을 연정의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거나 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지하는 경우다. 이른바 소수정부다.

    부흥당이 좌파녹색운동의 손을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연립정부 구성은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려 4개 정당(부흥당 포함 5개 정당)이 참여하는 연정이기 때문에 내각을 배분하는 게 또 다른 난관이다.

    제3당인 해적당에게 어떤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좌파녹색운동이 흔쾌히 양보를 한다고 해도 다른 정당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테면 통상 제1 파트너 정당에게 외무장관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EU 미가입국이기 때문에 가입국보다 더 뛰어난 협상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아웃사이더 해적당에게 외무장관 자리를 주는 것을 다른 정당들이 반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연립정부 구성 권한을 부여받은 카트린 자콥스도티르의 정치력에 따라 좌파녹색 총리라는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수도, 좌절될 수도 있다.

    좌파녹색운동 트로이카

    좌파녹색운동을 이끌고 있는 트로이카. 좌측부터 카트린 자콥스도티르, 스반디스 스바바르스도띠르, 스테인 그리뮈르 시그푸손.

    좌파녹색운동은 사회민주동맹에 실망해 이탈한 일부 의원과 녹색운동그룹이 모여 1999년에 창당됐다. 좌파녹색운동은 민주적 사회주의, 생태사회주의, 유럽회의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하고 있다. 좌파정당과 녹색정당의 선거연합이 아니라 하나의 정당 안에 두 개의 색깔이 출발부터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창당 첫 해인 1999년 선거에서 6석(9.1%)을 차지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2007년 9석(14.3%)을 차지한데 이어 2009년 조기총선에서 14석(21.6%)으로 도약하며 사회민주동맹이 이끄는 연정에 참여했다. 4년의 연정기간 동안 사회민주동맹은 좌파녹색운동의 요구사항들을 외면하면서 좌측이나 녹색으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실망한 지지자들의 이탈로 2013년 총선에서 7석(10.8%)에 그치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탄탄한 조직력으로 지지율을 빠르게 회복했다.

    좌파녹색운동의 창당을 주도한 것은 55년생인 스테인 그리뮈르 시그푸손(Steingrímur J. Sigfússon)이다. 시그푸손은 사회민주동맹과의 연정에 재무장관으로 참여했지만 그가 추진하려는 정책은 사회민주동맹의 사보타주로 번번이 좌절된 경험이 있다. 좌파녹색운동이 연정에 성공한다면 백전노장인 시그푸손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주목꺼리다.

    10선 의원인 시그푸손은 당의 좌장역할을 맡고 있으며, 4선 의원이자 이제 막 40세인 카트린 자콥스도티르가 당을 이끌고 있다. 원내대표는 스반디스 스바바르스도띠르(Svandís Svavarsdóttir)가 맡고 있다. 좌파녹색운동은 노르딕 녹색좌파동맹(Nordic Green Left Alliance)의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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