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예측 불가능한 미 대통령
    대선 이변의 주인공 '샤이 트럼프'
        2016년 11월 09일 06: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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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위험한 대통령이 탄생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11월 9일(현지시각) 자정을 넘기면서 미국 대선 개표 결과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 306명(과반 270명)을 확보하면서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 자리를 차지했다.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는 예상보다 낮은 23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개표 초반 동부지역 최대 경합 주 플로리다(29명), 오하이오(18명), 노스캐롤라이나(15명)에서 트가 모두 승리하면서 이변이 시작됐다. 클린턴은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캘리포니아(55명)에서 승리했지만, 또 다른 텃밭인 미시간마저 접전 끝에 트럼프에게 내주면서 완패했다. 펜실베니아(20명)과 위스콘신(10명) 같은 대형 주에서도 트럼프가 1~2% 차이로 선거인단을 독식하면서 압승을 거뒀다.

    미 대선

    이변의 주인공은 ‘샤이 트럼프'(Shy Trump)

    투표 직전까지 트럼프가 당선 가능한 시나리오는 하나였다. 4년 전 공화당의 롬니 후보가 승리했던 애리조나와 노스캐롤라이나를 그대로 유지하고 오바마가 승리했던 오하이오, 플로리다, 아이오와를 되찾는 것이 유일한 시나리오였다. 불가능할 것 같은 시나리오는 개표가 시작되면서 현실로 나타났고, 경합 주 대부분도 트럼프가 차지하면서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클린턴은 트럼프를 상대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표심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를 불신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숨은 표가 곳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막말과 인종주의 발언 때문에 공개적으로 지지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른바 ‘샤이 트럼프'(Shy Trump)의 존재가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와 언론들은 ‘샤이 트럼프’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측했지만, 개표를 시작하자 곳곳에서 숨은 표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부지역 석권이 승리의 열쇠였다. 트럼프는 선거 마지막 날 이른바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를 집중적으로 돌면서 불법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막판 표심을 움직였다는 것이 언론들의 해석이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 규제, 반이슬람,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백인 남성의 결집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대의 조기투표와 민주당지지 성향이 강한 히스패닉이 대거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클린턴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숨은 표와 백인 남성의 결집은 이마저도 잠재웠다.

    이런 숨은 표들은 기존정치에 대한 냉소와 환멸을 넘어 기존 체제의 격변을 기대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이를테면 주류정치인인 클린턴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를 지지한 것은 “세상이나 한 번 뒤집어져 봐라”하는 심리마저 있다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라는 대안을 거부한 민주당 주류는 참혹한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예측 불가능한 이단아 대통령의 등장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해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출렁거리고 있다. 캐나다 이민 홈페이지는 문의하는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다운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트럼프가 극우적인 공약을 해왔다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돌발행동을 자주 하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 직격탄은 한국이 맞게 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TV토론에서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한국이 주한미국 주둔비용을 턱없이 낮게 내고 있기 때문에 비용을 대폭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분담비용(9천억)의 두 배 이상을 내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대북정책에서도 “김정일 암살”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초강경 일변도를 고집하고 있어 한국 안보정책이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통치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내년 한 해가 큰 고비가 될 전망이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한국으로서는 악재다. 특히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면 재검토까지 주장하고 있는 것도 풀어야 할 난제다.

    중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만약 공약대로 실현된다면 대규모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백악관, 상원, 하원 모두 공화당 장악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현재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을 민주당이 가져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2곳의 개표가 남은 현재 공화당이 51명을 확보하면서 상원까지 지키는데 성공했다. 하원의 개표 결과는 공화당이 60여석을 앞서면서 여전히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원까지 장악하면서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거머쥔 것이다. 특히 2019년 상원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33명인 반면 공화당은 8명에 불과해 트럼프의 임기 동안 상하원 장악은 변동의 여지가 없을 전망이다.

    한편 이번 대선 결과로, 지난 7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가 트럼프가 당선되는 5가지의 이유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이 그대로 들어맞아 화제다.

    첫째, 미시간·오하이오·펜실베니아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의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이 지역들을 집중 공략했고, 모두 승리했다.

    둘째, (미국의) 백인 남성들은 여성 대통령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개표 결과 백인남성의 53%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주류정치의 표본인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 커다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클린턴은 트럼프보다는 낮지만 역대 대통령 후보 중에 가장 높은 비호감도가 여론조사에 계속 확인되면서 이를 입증했다.

    네 번째 예측은 샌더스 지지자들이 투표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사상 최대의 조기투표와 아프리카-아메리칸의 투표율도 특별한 변동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단정하기 힘든 내용이다.

    마지막은 199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서 제3당(개혁당)의 후보인 프로레슬러 벤추라가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면서 생긴 조어다. 제시 벤추라 효과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혐오를 의미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주류정치에 질린 유권자들이 트럼프 지지라는 극단적인 선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년 전에 일어났던 제시 벤추라 효과가 이제는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최근 유럽의 선거에서 여론조사의 결과는 모두 빗나갔다. 특히 브렉시트의 경우 투표 전날까지 잔류가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개표 결과는 탈퇴로 결정됐다. 자신의 입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때로는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의 결과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론조사는 이제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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