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체제와 단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레디앙칼럼] 거국내각, 미봉책과 덫
        2016년 11월 08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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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국 전망, 나도 모르겠다.

    현재의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박근혜와 정권을 둘러싼 엄청난 추문들과 온갖 대형 뉴스들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니. 각종 “~그랬다더라”는 음모론들이 횡행하는 증권가 찌라시들이 이제는 중요한 공식 뉴스의 원천이라고 한다. 설마설마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진실로 드러나고 있는 형국이다. 정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8시 JTBC 뉴스를 매일 챙겨 본다고 한다. 종편도 심심찮게 본다. 요즘 같아서는 한국의 제1야당 역할은 JTBC가 맡고 있는 거 같다. 정치인의 발언을 언론이 다루는 게 아니라 언론에서 매일 새로운 이슈와 뉴스가 터지면 정치인들이 이에 대해 논평을 하는 꼴이다.

    애초부터 박근혜 정권의 반대자였던 이들을 상수로 놓고 볼 때, 박근혜 정권 4년의 시간은 노동개악, 교과서 파동, 개성공단 폐쇄, 세월호 참사 등 정권의 행보, 정책들 하나하나마다 새로운 반대세력들이 생겨나는 시간이었다.

    박빠들의 심리적 공황상태

    그럼에도 박근혜 정권은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25~30%의 견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여기에도 커다란 균열이 생기고 지지층이 붕괴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말, 각종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박근혜의 견고한 지지층이었던 TK를 비롯한 범영남권, 60대 이상의 노령층에서 박근혜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요지는 ‘박정희의 딸이어서 잘할 줄 알았다’ ‘나름 심지가 굳고 자기 신념이 뚜렷하다’ ‘애국심이 강하다’는 등 자신들의 믿음이 처절하게 배신을 당했다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믿었는데 알고 보니 ‘최순실 치마폭의 박근혜’였다는 게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것이다. 특정한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더라도 그건 애국심에서 한 일이고 자기 신념이 뚜렷한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라며 애써 정당화했던 그들이, 정책이 아니라 최순실-최태민 일가의 손아귀에서 정치와 정책과 국정을 운영했다는 사실에서 큰 충격과 배신을 느낀 것이다.

    원래 반대파였던 사람들보다 지지자였다가 배신당한 이들의 상처가 더 크고 오래가는 법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지금처럼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과정이 진행됐던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냉혹하고 잔인한 칼을 휘둘렀던 이들은 한때 같은 배를 타고 있었던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었다. 당시 그 당의 대표가 현재의 추미애 민주당 대표다. 아이러니하다. 그런 과거의 상흔 때문에 민주당은 탄핵에 더 주저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박근혜의 열혈 지지자였다가 지금 박근혜에게 배신의 칼을 맞은 이들의 상처가 쉬이 치유될 거 같지는 않다. 박근혜 정권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박1

    가장 똑똑한 한국 국민들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정치사회 공부를 많이 하고 그만큼 지식의 양도 가장 많은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번 정권 때마다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슈가 터져 나오고 국민들은 그 이슈에 대해 집단학습을 했던 경험이 있다. 노동문제나 남북문제와 같은 국내 이슈가 아니라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던 이슈만 하더라도 수두룩하다.

    15년의 과거만 돌이켜보더라도 노무현 정권 때는 FTA 논란으로 국제통상 문제, 행정수도 이전 논란으로 ‘관습헌법’이라는 신종 용어와 행정학 문제,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 문제로 국제분쟁과 국제정치를 학습했고 이명박 정권 때에는 4대강 논란으로 환경과 생태학, 광우병 파동으로 식품문제와 환경과 의학문제, 용산 철거민 참사로 재개발과 도시문제, NLL공방과 천안함 사건으로 국제정치와 군사문제를 학습했다.

    박근혜 정권 때에는 더 다양하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으로 정보기관과 IT의 융합문제, 세월호 참사로 안전과 재난문제, 위안부 문제와 국정교과서로 역사학, 메르스 사태로 의학과 건강문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문제로 정치학과 헌법…이제는 최순실 사태로 사이비 종교문제까지 두루 국민들이 집단학습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비정규직이나 복지문제,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등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은 시사적 이슈에 대해 집단학습을 해온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국민들이다. 더구나 IT 선진국이고 정보통신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니, 남녀노소, 전국 곳곳, 각 계급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학습하고 논쟁하는 시간들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가장 순진한 국민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가장 순진한 국민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권 때만 되면 터지는 각종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의 갈등과 충돌 상황에서 과연 누가 우리 대다수 국민들, 노동자와 민중들의 입장에 서서 발언하고 주장하고 싸웠는지를 종종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망각의 힘을 그만큼 큰 탓인가?

    대표적으로 FTA 문제를 둘러싸고 이를 찬성했던 이들은 노무현 정권(이의 후예가 지금의 민주당이다)과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이었다. 또 4대강 논란이 벌어지고 사람들의 분노가 높을 때 이를 물타기 하면서 찬성했던 이들이 당시 제1야당 민주당의 송영길 인천시장이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들이었다. 자신들의 지역에 4대강의 떡고물이 떨이지지 않을까 하는 셈법이었을 것이다. 15년 동안 위의 대형 이슈들과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노동문제, 쌀 개방과 같은 먹고사는 문제, 건강하고 안정한 사회, 공정하고 평등한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국민과 민중들의 입장에서 일관되게 때로는 새누리당과 때로는 민주당과 싸워왔던 이들은 시민사회와 노동세력, 진보정당들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걸 자세히 기억하지 않는다. 물론 이에는 그 과정에서 진보세력 스스로의 잘못과 오만과 무능의 문제도 적지 않았고, 결국 국민들에게 새누리당/민주당이 아닌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한 탓은 국민 탓이 아니라 진보세력 스스로의 내부 문제가 더 큰 것은 사실이다.

    격변의 시기가 항상 선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국정농단) 국면을 정권의 위기라고도 얘기하고 내일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격변의 시기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격변의 시기, 난세를 규정할 때 “낡은 것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새로운 것들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시기” “사회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는데 아직 그 대안은 뚜렷해지지 않은 시기”라고들 한다. 그래서 격변의 시기, 난세는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후퇴를 반복하고 수많은 시행착오의 고통을 겪으면서 나아가는 법이다. 우리 현대사의 기억들이 그걸 반증하고 있다.

    전두환

    1980년 국보위 현판식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들

    1950년대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갖은 독재의 악행과 추악한 부정부패로 위기가 커졌지만 대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던 진보당의 조봉암이 정권에 의해 타살되면서 그 어둠이 지속되기도 했다. 그 어둠의 끝이었던 1960년 4.19혁명의 불길이 타올랐지만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역사는 다시 후퇴하고 긴 암흑의 터널을 견뎌야 했다.

    박정희의 군사독재 10년이 위기에 처하면서 야권의 김대중이 박정희를 대체할 수 있는 지도자로 부각되고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신음하던 노동자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지만 1971년 선거를 끝으로 다시 박정희 종신집권의 유신독재가 자행되었고 김대중은 해외망명길에 나서고 시민들과 학생들은 독재의 억압에 신음하고 노동자들은 다시 노예의 사슬에 얽매이게 되었다.

    1979년 부마민중항쟁이 발생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박정희가 자기 수하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새로운 여명이 밝을 거라도 기대를 했지만 전두환이라는 또 다른 군사 독재자에 의해 우리 사회의 암흑은 또 연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광주 수천 명의 민중들이 군사정권에 의해 학살당하기도 했다.

    그 전두환의 시대도 87년 항쟁으로, 그 이후 노동자 대투쟁으로 끝날 거 같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지 못했고 시대는 노태우 군사정권의 집권 연장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격변의 시대, 대중적 분노가 급격히 고양되는 시대가 항상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한 방향으로만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그 시대의 변화를 좌우하는 올바른 민중진영의 역량이 대안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에 항상 지배계층과 권력자들은 변신하면서도 자신들의 권력을 놓치지 않고 연장해왔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사회적 불만이 항상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격변의 시대를 규정하는 말 중에 “격변의 시대는 대중들의 불만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이대로 현 체제에서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요소는 지배집단과 권력자들도 현재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래서 그들 내부에서도 분열이 생겨나고 확산될 때 만들어진다”는 말도 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항상 분노와 저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 그 불만들은 지배집단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하면서 무기력과 절망의 구렁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에 대한 불만은 가득하지만 도저히 이 사회가 바뀔 거 같지도 않고 나 스스로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이 빠질 때이다. 스스로 살아남는 생존의 전략만이 전부가 되는 시대가 있다. 멀지 않은 최근까지의 우리 모습이기도 했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빈곤, 양극화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악화되었지만 그것이 개별적 생존 모색이 아니라 집단적인 노동운동, 학생운동, 사회운동의 참여와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시기가 최근의 우리 모습이기도 했다. 아니 아직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노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더욱 깊어지고 있었고, 무기력과 불만이 분노와 저항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터져 나온 것이다. 특히 학생들과 젊은 세대에 분노의 뇌관은 정유라였다. 알바와 실업자와 비정규직의 악순환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허덕이고 있는데, 다른 한 축에서는 온갖 특혜와 부정부패가 이뤄지고 있었고, 그 배후에 박근혜-최순실과 같은 권력자들과 기득권층들의 추악한 탐욕과 갑질과 부패가 맞물려 있다는 게 그 분노의 뇌관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이 대중적 분노에 놀라면서 지배집단 내부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박근혜의 굳건한 동맹군이라고 여겨졌던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언론들이 박근혜에 칼을 겨누고 서로 극한의 갈등을 전개하고 있고, 하루 24시간 진보와 야권, 시민운동을 비방하고 공격하던 종편 채널들이 박근혜의 추문을 폭로하고 대공업적으로 유통 전파시키고 있다.

    3

    5일 범국민대회

    이번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다들 분노한다. 박근혜와 최순실에 얽혀있는 그 부패 사슬과 권력집단의 추악함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는 거 같다. 박근혜 지지 확신범들도 감히 지지 입장을 대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오게 된 것인가? 개별적인 사건들의 인과관계와 그 경중, 누가 이 파국의 원인 제공자이고 분노의 불꽃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라는 화두를 흔쾌히 정리하기에는 아직 혼미하고 어지럽다. 그걸 박근혜와 최순실 말고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거시적 맥락에서 이번 격변의 원인을 세 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박근혜는 박정희 독재의 DNA를 갖고 있으며 불통의 권위주의에 익숙한 캐릭터이며 민주주의와는 담을 쌓는 측근에 휩싸이는 궁정정치에서 성장한 배경 등이 이런 파국적 사태를 낳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박근혜가 당선되면 이명박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누군가의 예언처럼 박근혜 개인의 캐릭터와 정치적 특성에서 이번 국정농단의 원인을 찾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접근은 박근혜의 불통적 독재적 극우적 정치관이 한국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미국의 트럼프나 유럽에서도 박근혜와 유사한 DNA를 가진 극우파 정치인이나 세력들이 급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런 접근법의 귀결은 박근혜 및 그와 연루된 부패 사슬구조의 일부를 제거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명박 정부가 더 나았다거나 조금 더 나아가면 노무현 김대중 정부로의 회귀가 정당화되며, 그런 방향의 해법이 제시될 뿐이다.

    둘째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지배집단의 균열과 갈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일보-박근혜의 전쟁설이다. 심지어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의 정보를 조선일보 등의 반 박근혜 보수집단에서 흘리고 확산을 시도했다는 음모론도 존재한다. 그 가장 조잡한 버전이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갈등이 발화점이라는 설이다. 박근혜의 성골 이너써클에서 배제된 진골 보수세력들과 6두품 세력들이 권력투쟁을 벌이고, 그 갈등 과정에서 불거진 추악함과 부패의 고리들이 대중들에게 폭로되면서 사태가 이너써클 내부의 갈등에서 국민적 격변의 국면으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비박계들도 대통령의 위력과 권세 앞에서 불평불만만 던지다가 이제는 박근혜 탈당과 친박 숙청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게 지금 오늘의 모습이다. 물론 이들 뒤에는 한국의 지배집단인 재벌과 미국도 존재한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한국의 사태는 한국 국민들이 해결해야 하며, 그 결과가 어떠하든 한미동맹은 견고히 유지될 것이라고 밝히는 것은 이들 지배집단 내부의 갈등이 어느 쪽으로든 평화적으로 정리된다면 그가 누구든 관계없다는 의사 표시이다. 이런 접근의 귀결점은 결국 현재의 지배체제, 정치체제와의 단절이 아닌 지배집단 전체의 이해를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하야나 탄핵이 아닌 박근혜의 2선 후퇴와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거국내각을 구성하여 현재 상태를 조정 조율 관리하면서 박근혜의 남은 임기를 보장하자는 의견이다. 박근혜 체제와의 단절이 아닌 타협과 휴전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셋째는 박근혜 정권의 극우적인 정책들, 현재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들, 자본주의의 폐해들이 누적되고 축적되면서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물론 그 폭발의 계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정유라-최순실, 최순실-박근혜, 최태민-박근혜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지배집단의 추악함과 천박함, 부패와 이권 나눠먹기가 사람들의 분노를 촉발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알바-비정규직-실업-고용대란-노후불안의 공포가 갈수록 심화되는 현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현실, 세월호와 같은 재난참사에 대한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국가에 대한 분노, 대우조선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와 그 와중에서도 낙하산들에 의해 저질러진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분노, 먹고 살기 힘들고 아파도 불안하고 내 집 마련은커녕 결혼도 부담스러운 현실, 그에 반해 행정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계, 문화계, 체육계, 국방 분야 전반에 걸쳐 지배계층과 기득권들의 담합과 협잡, 권력과 기득권의 세습이 국민들 눈에 뚜렷이 보이면서 더욱 심화된 박탈감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과 비판과 냉소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분노와 저항의 거대한 몸짓으로 타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접근에서의 해법은 박근혜 개인의 진퇴를 넘어서 박근혜 정권의 반노동 반인권 반민생 반평화 정책과의 단절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본과 재벌이 지배하고 노동하는 민중의 권리가 거세되고 핍박당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이어야 한다. 그 다음 정권의 담지자가 누구이든 이 과제를 수용할 수 없다면 현재의 분노에 대한 대안도 해결책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대투쟁

    87년 노동자대투쟁 모습(사진=민주노총)

    다시 민주주의, 민주주의혁명을 생각하자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의 민중들은 독재와 억압에 끊임없이 싸우고 맞서왔다. 때로는 그 귀결이 퇴행과 후퇴의 모습을 띨지라도, 그래도 다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싸우고 다시 전진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4.19가 그러했고, 전태일 열사의 처절한 절규가 그러했고, 광주항쟁이 패배가 아닌 새로운 전진의 밑거름이 되었고,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들의 거대한 깨어남이었던 789투쟁이 그러했다.

    하지만 87년 직선제를 쟁취하고도 야권의 아집과 욕심, 지배권력의 간교함으로 독재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군사독재와 달리 선거 등 절차적 합법성을 획득한 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반노동, 반민생 정책을 자행하더라도 이에 맞선 강력한 투쟁 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이면에서 비정규직 확산이 자행되고, 양극화와 시장 지상주의가 심화되고, 불평등과 복지 축소와 파괴가 진행되어도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과거 형식적 정통성조차도 없었던 군사독재와 달리 민주적 선출 과정을 거쳤다는 게 투쟁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지배와 착취와 억압은 이전보다 더 다면화되고, 개인의 생활과 삶 속으로 침투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 경쟁과 생존의 논리를 강요해왔다.

    선거와 투표가 민주주의의 전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는 투표와 선거의 민주주의가 전부가 아니다. 투표와 선거는 수단이고 절차이고 과정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 사회, 자본과 노동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주장과 이해를 조정하고 조율하고 협의하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징표는 경제적으로는 노동소득과 비노동소득의 분배 비율이고, 정치적으로는 노동 등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들과 기업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들의 공존과 경쟁이고, 사회적으로는 노동조합과 같은 계급적 계층적 이해를 대변하고 대표하는 다양한 사회조직들의 활성화 정도이다. 노동소득 분배율의 악화, 진보정당의 미미한 의석 비율, 낮은 노동조합 조직율과 그것의 축소 경향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민주주의의 미달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한국 사회는 투표장에서의 1인 1표 권리는 보장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알갱이들은 여전히 제약되고 배제되고 핍박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자본과 재벌의 지배와 착취는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노동의 권리는 제약을 넘어 노예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정희 시절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권력의 우위 하에서 정경 유착이 이뤄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시장과 자본의 권력이 정치권력을 제어하고 지원하는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이나, 최순실 파동에서 보이듯이 돈 몇백 억을 지원하고 각종 친자본 정책을 실현시키고 정치권력을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재벌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진 면목이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주의, 이번의 민주주의 혁명은 박근혜 개인과의 대결을 넘어서 박근혜 체제,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의 유착 체제를 허물고 균열을 내고 부수는 혁명이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무당 권력을 넘어 시장권력을 규제하고 제어하는 혁명이어야 한다. 박근혜 개인의 퇴진을 넘어서 박근혜 정책, 아니 최순실 정책의 폐기이고 박근혜 체제와의 단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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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밤 문화제의 모습

    거국내각, 책임총리가 아닌 즉각 하야와 퇴진

    당장 12일, 민중총궐기가 예정되어 있다. 이 집회의 투쟁 강도와 규모와 메시지가 향후 정국을 규정하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새누리당 비박계 등을 비롯하여 여·야당의 주류세력들이 박근혜 2선 퇴진과 거국중립내각을 통한 정국 안정화를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민중총궐기의 요구와 양태를 국민주권 실현을 위해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하야 압박을 위한 시민대회로 규정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 거국내각은 박근혜 내각과 무엇이 다른지, 김병준이나 김종인 같은 이들이 책임총리가 되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장관을 나눠먹는 게 지금 우리 민중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고 추궁해야 한다. 특히 야당들에게 답을 들어야 한다. 박근혜가 아니라 거국내각의 이름으로 노동개악이 추진되고,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가 지속되고, 사드 배치가 진행되고, 국정교과서가 발행되고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밀실에서 논의되고, 세월호 진상규명이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핵발전소 건설이 강행되고, 우병우와 정치검찰의 적폐가 여전히 진행된다면 그것은 거국내각도, 책임총리도 아닌 새로운 가면을 쓴 박근혜 정부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해야 한다. 거국내각 등의 타협책은 정치 기득권 세력들의 국정 안정화일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정부 정책 등으로 고단한 민중들에게는 안정화가 아니라 고통의 지속일 뿐이다.

    박근혜의 하야와 퇴진, 박근혜-최순실 정부의 문제적 정책의 중단과 폐기, 선거관리 중립내각과 조기대선 실시, 한상균 위원장 및 구속된 노동조합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싸우자. 철도 파업 승리와 사드 배치 반대 등의 요구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박근혜 하야 투쟁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민심과 괴리된 여야 정치 기득권의 정치적 타협이 이뤄진다면 단연코 거부하자.

    필자소개
    정종권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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