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사진가가 기록한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이야기
    [다큐멘터리 사진] '비주류 사진관'의 정남준
        2016년 11월 07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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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인간이 행한 행위를 객관적이고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을 으뜸으로 치는 반면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드러내고 그 위에 아우라를 씌워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사진이라는 매체에 이를 대입해 생각해보면 전자는 기록성을 가진 다큐멘트 사진이고 후자는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예술 사진이다. 흔히 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이 양자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매우 애매한 카테고리의 사진들이다.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해도 시대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고, 대상이나 촬영 방식에 따라 그 이름이 또 달라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성에 방점을 두고 약간의 예술적 표현을 가미하여 대상을 재현하는 사진을 말한다. 그 예술적 표현 정도가 적은 것은 일정한 주제 아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작업이고, 예술적 표현의 정도가 큰 것은 주제나 메시지보다는 독자 해석의 다양성을 높이 사는 경향이 큰 작품이다.

    정남준의 《구룡마을 이야기》는 전형적인 포트폴리오 방식으로 하는 서사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사진의 각각에 따라 일정 부분 다큐멘트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진가의 시각이 강하게 들어가 있으면서 그 안에서 주제가 일정하고, 표현 방식이 지금 시대 많은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사진 문법에 충실한 사진들이다.

    따라서 사진 전체를 보거나 읽고 난 후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메시지는 독자에 따라 특별히 달리 해석할 여지는 적을 것이고, 그 위에서 그가 제시하는 사회운동 차원에서의 목표성은 잘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 장 한 장의 사진은 사진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때로는 안정적 구도로 때로는 불안한 구도로, 때로는 관조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개입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직유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감동을 일관되게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이성의 메시지를 개별적으로는 감성의 느낌을 적절하게 버무려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를 따뜻하면서 슬프게 전달해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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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 정남준은 부산에서 출발한 ‘비주류사진관’이라는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 동인의 관장을 맡고 있다. 오로지 현장 사진만 – 여기에서 현장이라 함은 시위나 저항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이 살면서 투쟁하는 곳 – 찍는 그 동인들은 사진을 철저하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 삼는 소위 사회 다큐 사진을 지향한다.

    전시도 현장에서 하는 거리 사진전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참이다. 갤러리나 미술관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규제하는 것은 없지만, 단체의 이름으로는 하지 않는다. 전시하는 작품 또한 ‘사진은 프린트가 절반’이라는 사진계에 널리 퍼져 있는 격언과는 아무런 관계를 두지 않는 그저 장면을 보여주고 사람들과 메시지만 공유하는 데 충분하기만 하면 되는 질을 유지할 뿐이다. 그래서 굳이 소위 말하는 작품성이라는 데 얽매이지 않는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그 작품성이라는 거,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가 하는 사진은 시대가 요구하는 탈(脫)아우라 다큐멘터리 사진일 뿐이다.

    정남준은 2014년 9월 서울에서 우연히 알게 된 구룡마을을 처음 접하면서 어떤 전율을 느꼈다 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 높이 솟구친 69층 타워팰리스를 바라보면, 이곳의 집들은 그 타워팰리스에 대롱대롱 매달린 번데기 집과 같았다고 했다. 사회 다큐 사진 하는 사진가들이 흔히 크게 감정 이입을 받는 빈부 격차의 극한 대비와 사회적 소외의 장면들로부터 먼저 강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꼴로 2년 넘게 부산에서 이곳을 찾았다. 구룡마을은 현재 1,100여 세대에 2,000여명 남짓한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약70%가 독거민이다. 독거의 주요 사유는 이혼이나 사업 실패, 실업 등인데, 역시나 80% 가까이가 전라도 출신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이 땅의 뿌리 깊은 지역 차별을 경남 남해-부산 사람이 새삼스럽게 목도하게 되었다. 그 동안 재개발 문제는 수십 번이나 제기되었으나 6개의 여러 자생 입주민단체들이 갈등하느라 이웃 공동체로서의 성격도 많이 사라져버리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위에다 정치인들은 재개발에 관한 거짓 공약을 남발하면서 사람을 버리고 표만 챙기는 현상들이 한국 사회에서 놓쳐서는 안 될 기록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사진적으로도 마찬가지였으니, 골목이 많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다양한 장면들이 촬영의 대상으로도 안성맞춤이어서 이곳을 장기 주제로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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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다큐 사진을 하는 사람들에게 라포 형성은 필수다. 사진가가 사진에 욕심을 내다보면 사람을 대상화 하여, 이미지는 얻지만 사람을 잃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큐 사진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정남준은 처음 한동안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주민들과의 교분을 쌓았다. 작품을 위한 라포 쌓기라는 얄팍한 전략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대학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한시도 놓치지 않고 사는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힘없는 인민에 대한 사랑, 그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는 시대정신을 붙들고 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인민 소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멀리 부산에서 올라가 카메라 들어보지도 못 하고 막걸리만 먹고 돌아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빨갱이’라고 의심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같이 밥 먹자고,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붙들면서 그곳 주민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좋다. 사람 사는 맛이 바로 이런 데 있다. 사진 찍으러 갔다가 사람을 만난 경우다.

    구룡마을 작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언제 완성될 지 알 수도 없고, 완성이라는 게 과연 있을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는 이상 삶의 이야기는 계속되지 않겠는가? 구룡마을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고향 떠나 서울로 왔다가, 86년 아시아게임과 88년 올림픽 때문에 살던 목동에서 상계동으로 다시 상계동에서 이곳으로 쫓겨나 이곳에 임시로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뿌리를 내리고 싶어도 내릴 힘도 없고, 돈도 없고, 그래서 쫓아내면 저항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 한 채 쫓겨 가야 하는 부평초 같은 인생들이다. 어디 간들 혼자 사는 몸뚱이라 하난 의지할 데 없겠는가, 하고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다.

    악착같이 버티지 못하니 사람들이란 대개 인성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본의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들을 사회 부적응자 혹은 불만 많은 불순분자, 일 하지 않고 먹으려는 자, 국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주류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이렇게 규정한다.

    그 대상, 구룡마을에 대한 성격 규정이 이렇게 이중적이다 보니 사진가는 그 이중적인 시각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 전체 마을을 겉으로 볼 때는 대체적으로 암울하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따뜻한, 사람 살 냄새 나는 세상임을 알게 되는데 그의 사진 전체가 이런 톤으로 깔려 있다. 우리가 아파트 닭장 같은 데로 들어가 살다 보니 잊고 사는 공동체의 따뜻한 풍경, 그렇지만 거대한 자본의 도심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을 천형으로 이고 사는 그 풍경,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불안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풍경이다.

    사진가 정남준은 전체 풍경은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주류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반면에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여줄 때는 따뜻하고 포근하게 재현한다.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인 사회 구조주의에 입각하여 세계를 해석하는 좌파 사회학자의 입장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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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 정남준은 사진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으니 아마추어 사진가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 사무장이다. 밥벌이가 있으니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 소위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전업 사진가는 이런 작업을 하기 어렵다. 팔리는 사진을 해야 하는 부담감, 예술적 가치 혹은 작품성을 높여야 하는 부담감, 프로젝트 과제를 발주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야 하는 의무감, 이런 것으로부터 독립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거대한 사진 권력에 줄을 서야 하고, 더러운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정남준 같은 아마추어 사진가는 다르다. 그들이야 말로 부패 권력에 줄 설 필요도 없고, 되지도 않는 작품성 운운할 필요도 없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역사와 사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존중뿐이다. 그래서 그는 2년 여 동안 작업한 사진들로 구룡마을 현장에서 거리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사진이라는 것이 원래 대상을 사진가가 전유하여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사용하는 것이 기본 원리라지만, 그래도 그 대상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예의와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사진가 정남준은 갤러리와 미술관으로 빼앗겨 버린 현장 중심의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명맥을 이어가는 몇 안 되는 좋은 사진가다. 그 앞에는 굳이 작품이라는 말도, 전시라는 말도 쓸 필요가 없다. 그는 오로지 사진을 사회 변혁에 필요한 유용한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그 안에 인민 존중, 역사 기록, 사회 참여의 시대정신이 살아 있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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