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고 싶다’는
    벼랑 끝 화물노동자들의 외침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연대 국회 앞 농성장을 찾아
        2016년 11월 03일 08: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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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원의 ‘8.30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830방안)’ 이슈페이퍼 기사 링크

    월요일 새벽 5시, 아내와 아이들이 곤히 잠든 가운데 일주일 치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아직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거리는 조용하다. 도로 위 몇 대 되지 않는 차들 사이로 왕십리 집에서 경기도 의왕 부곡컨테이너 터미널로 향한다.

    오전 8시 30분, 컨테이너를 실을 화물차를 배차 받아 컨테이너를 올린 후 9시 30분, 공장에서 받은 수출 물량을 싣는다. 오후 12시, 이제 부산으로 향해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발하는 편이다.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시 휴게소에 들른다. 휴게소 음식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오후 7시, 쉴 틈 없이 달리다보니 부산에 도착했다. 컨테이너에 싣고 온 수출 물품을 내려놓고 다시 수입 물품을 컨테이너에 실어 다시 서울로 향한다.

    칠흑처럼 컴컴한 도로,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쏟아지는 잠으로 아득해진 정신,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넘었다. 아침 일찍 짐을 내려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4시,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한다. 뒤에서 들리는 소음에 깨보니 아침 8시다. 컨테이너에 싣고 온 짐을 내리는 소리가 분주하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짐을 내리고 다시 부곡터미널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짐을 싣고, 다시 부산으로 향한다.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토요일 아침, 왕십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눈 한 번 맞출 틈 없이 잠이 든다. 아내가 흔들어 깨워 겨우 눈을 뜬다. 저녁 밥상이 차려져 있다. 후다닥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그렇게 월요일이 온다. 월요일 새벽 5시, 다시 일주일 치 짐을 싸 어둑한 거리를 달린다.

    컨테이너 화물 노동자의 일주일이다. 일주일에 6일을 3, 4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매달 쥐는 돈은 고작 25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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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운임제 도입·지입제 폐지
    “‘살고 싶다’는 화물 노동자의 외침”

    지난달 31일부터 화물노동자들이 국회 앞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지입제 폐지, 표준운임제 도입이다. 이건 ‘우리도 먹고 살자’가 아니라 ‘살고 싶다’는 벼랑 끝 화물노동자들의 외침이다.

    오윤석 화물연대본부 서경지부장을 만나기 위해 3일 농성장을 찾았다. 화물연대는 지난달 10일부터 시작한 총파업을 9일 만에 접었다. 정부는 파업에도 대화를 원천 차단하고 등을 올렸다. 파업에 참여한 화물노동자들은 파업이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화물연대는 16개 지부장을 중심으로 지입제 폐지와 표준운임제 도입을 위한 법안 처리를 국회에 압박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는 9일 경 표준운임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화물연대는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고달프고 외롭다. 국회 앞에서 1시간씩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면 온갖 잡생각이 다 든다. 정부에서 내놓은 ‘830 화물운송시장활성안(830방안)’의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텐데부터…우리가 원했던 법안이 발의돼도 잘 안 되면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든다”

    오윤석 지부장의 이런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국회를 떠돌다 결국 폐기됐다. 화물연대는 2012년에도, 표준운임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을 상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국회 농성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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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물노동자들이 이토록 표준운임제 도입과 지입제 폐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표준운임제는 정말로 절실한 거다. 운송사나 화주가 화물노동자를 상대로 운임제로 장난을 못 치게끔 해달라는 거다. 그저 화물노동자한테도 보통 노동자들처럼 최저임금을 정해달라는 것과 같다. 지입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산 차량인데, 지입업체는 그저 번호판 하나 주면서 너무 많은 폭리를 취한다. 내 차로 일한 만큼은 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실 화물연대는 정부와 표준운임제 도입, 지입제 폐지 등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부가 돌연 ‘830방안’을 발표해버렸다. 이 방안은 표준운임제 도입과 지입제 폐지를 위해 화물연대가 싸워온 지난 10년 동안의 싸움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정부의 830 방안에 프랑스의 참고운임제가 나온다. 이걸 우리도 도입하겠다는 건데, 핵심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프랑스에선 화주, 운송업체가 참고운임제를 어기면 엄청난 수준의 벌금을 물린다. 그런데 정부가 도입한다는 참고운임제에는 이 벌칙조항이 빠져있다. 오로지 참고만 하라는 뜻이다. 강제성도 없는 그걸 누가 지키겠나. 실제 컨테이너 화물차의 경우 참고운임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마저도 최저입찰제를 통해 운송료를 대폭 내린다”

    정부의 830방안은 결국 기존의 폐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표준운임제를 거론하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할 의지는 없다는 뜻이다.

    “부산을 5~6번을 왔다 갔다 해도 한 달 수입이 20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집에 돈 갖다 주기는커녕 차 할부금도 내지 못 한다”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

    오르는 기름 값, 떨어지는 운임료는 화물차가 ‘도로의 살인무기’, 화물차 사고가 ‘도로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물연대의 농성 구호 역시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이다.

    ‘화주→운송업체→운송 하청업체→화물노동자’라는 다단계 구조도 화물차 사고의 원인이다. 여기에 지입업체까지 화물노동자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고 나니, 화물노동자는 더 많은 물량을 더 빨리 옮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화물차의 졸음운전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다. 때문에 화물연대는 표준운임제를 ‘안전운임제’라고 지칭한다. 여기에 화물노동자들은 화주와 운송업체들에 과적까지 강요받는다.

    “과적할 수 없다고 하면 운송사나 화주는 ‘그럼 하지 말아라. 차는 많다’라고 한다. 그렇게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과적을 거부할 수 있겠나. 세월호 참사로도 과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지 않았나. 그런데도 차 할부금이라도 내기 위해선 운송사가 하는 과적 요구를 거부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화물연대는 과적 단속에 걸린 화물차 노동자에 삼진아웃제를 적용하는 법안을 요구했다. 3번 과적 단속에 걸리면 화물차 운전 자격증을 박탈하는 내용이다. 자신들의 밥줄이 끊길 수 있는 법안을 요구할 정도로 화물노동자들은 과적의 위험성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맞서 과적 기준과 단속을 완화하는 방안을 대책이라고 내놨다.

    “화물차 교통사고로 1년에 1,200명이 죽고, 다치는 사람이 4만 명에 달한다. 전시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거다. 이 문제는 정말, 사회적으로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분명 과적을 규제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느낄 거다. 그런데 왜 못하겠나. 과적을 재벌 대기업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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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윤석 지부장의 1인 시위 모습(사진=유하라)

    농성장엔 조끼 입은 조합원들만 보였다. 국회가 바로 코앞인데도 야당 국회의원 한 번 방문 안했다. 다른 조직에서의 연대 방문도 많지 않다. 모든 언론과 투쟁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집중해 있어서다.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마치고 막 농성장으로 복귀한 오윤석 지부장에게 섭섭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섭섭하긴, 나라가 개판인데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다.

    오 지부장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경찰들과 화물연대가 실랑이가 붙었다. 듣자하니 경찰이 화물연대 차량에 붙은 ‘박근혜 퇴진’ 스티커를 떼라고 했고, 화물연대는 완강하게 버틴 모양이다.(관련 기사)

    화물연대도 매일 돌아가며 촛불집회에 나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조합원들은 화물차에 ‘박근혜 퇴진’, ‘박근혜 하야’ 스티커와 현수막을 걸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경적 울리기도 계획하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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