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로구 '평화의 소녀상'
    [진보 구의원의 동네이야기] 단톡방
        2016년 11월 03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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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서의 진보 구의원 활동을 연재하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첫 글을 쓰고 한 달이 지나서 다음 글을 연재해야 하는데 나라 상황이 급박하다.

    ‘연재도 연재지만.. 지금 이런 글을 써야 할 때인가?’ 대통령 하야, 거국중립내각 어쩌구가 나라를 흔드는 판에 동네에서 벌어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약간 한가해 보일수도 있고(물론 동네이야기가 의미가 작다 이런 건 아니다. 지금 나라 이야기가 워낙 크고 충격적이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렵게 글을 썼으면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게 더 좋은데 이건 생뚱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추석을 앞두고 블록버스터가 쏟아질 때를 피하고픈 독립영화 감독의 심정. 엑소와 트와이스 컴백 시기를 피하고 싶은 신인가수의 심정으로 쓰던 글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분위기로 보아하니 최순실 국면이 지나가도 요동치는 정국은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그냥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올리기로 했다.

    이것도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 때문

    작년 연말쯤이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중요한!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결정에 비선실세의 개입이 있었던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보가 부족한 나로서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하여튼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동네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뭘 해야 되는 거 아냐?’ ‘종로에 있는 소녀상 앞으로 달려가야 하나?’ 이런 이야기들이 처음 돌기 시작한 건 구로지역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정당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카톡방에서부터였다.

    내용도 문제였고, 당사자들이 배제된 것,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국가적 차원의 배상이 없는 것 등등 종합세트 ‘문제투성이 졸속굴욕협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없앤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나 보다.

    소녀상

    카톡 이모티콘 하나, 페이스북 좋아요 하나로 거대한(?) 지역활동 시작되기도

    ‘거 뭐 종로에 하나 없애면, 구로에도 만들고, 양천에도 만들고 전국 방방곡곡 더 많이 만들어서 싸우면 되겠네’. 구로구에 열린사회 구로시민회라는 시민단체가 있는데 거기 대표님께서 툭 던진 한마디에 잠시 카톡방은 정적을 이루었다.

    이후, ‘좋아요’ ‘해봅시다’ ‘구로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데, 힘 모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하는 의견이 하나둘 나왔고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교육의 장도 되고’, ‘지금 정부의 잘못을 더 알리는 기회도 되겠는데요’ 하며 ‘반드시 꼭 해 내야만 하는’ 의미까지 부여되었다.

    손가락과 손가락을 통해 이것은 대세가 되었고, 피할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적어도 늦은밤 카톡방에서는 그랬다.누군가 툭 던진 이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올해 1월부터 8월 15일 제막식까지.. 거의 8개월 동안 구로 지역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걱정도 하게 하고, 지치게도 하고, 칭찬도 받고, 꿈도 꾸게 했던 ‘구로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 자그마치 ‘8개월이 걸린 주민운동’은 그렇게 툭 던진 아이디어와 카톡 전파의 손끝 하나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아침 해가 떴고.. 이제 어젯밤의 당위와 감성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소녀상 이거 어디에서 만들죠?’ ‘동상인가요?’ ‘만드는 분이 따로 계신가요?’ ‘돈은 얼마가 들까요?’ ‘만든다고 하면 무조건 다 만들어 주시는 건가요?’

    툭 던진 한마디가 대세가 되었고, 하나의 물결이 되었으니 이제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정보가 너무 없었다. 종로에 가서 이미 만들어져있는 소녀상을 보기도 하고, 지키기도 해 봤지만 그걸 우리 동네에 만들 꺼라고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순항과 위기.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닐때가 있다

    서로 머리와 마음을 모으니 일이 술술 진행되었다. 지역에서 일 좀 해 봤다는 분들도 계시니 초반은 순항이다.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 모두가 내 일인 것처럼 참여한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드시는 작가분과 연락이 닿았고 지역으로 모셔서 소녀상의 의미, 이 운동의 취지를 듣고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일본군 ‘위안부’ 한일협상 무효와 구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주민모임> 발대식을 했다. 현수막 만들기와 붙이기, 홍보물 만들기는 재능과 여건에 따라 나누어 참여했고 생각보다 관심 가져주는 시민들이 많았다. 발대식은 기대보다 성대했다.

    발대식 이후 지역 단체와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주민모임에 참여해서 거리 모금과 단체 모금도 진행했다. 처음에는 단체 활동가들이 제안하고 시작했지만 점점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구로타임즈>라는 지역 신문도 호응해서 무료로 광고를 해 주었고, 당시 영화 ‘귀향’을 보자는 흐름이 있었는데 주민모임 차원에서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고 3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공동체 상영 행사에 함께해 주었다.

    공동체상영

    귀향 공동체 상영

    자신감이 올랐고, 참 잘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곧 돈도 다 모아서 한 두어 달쯤 고생하면 3.1절 쯤에는 우리 동네에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든 순간부터 또 어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순항의 이유였던 것이 이제는 어려움의 이유가 되었다.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어느 순간 책임의 분산을 가져왔다.

    겨울이 지나니 참여한 단체들마다 자신들 본연의 활동과 행사가 늘어났고, 주민들도 두 달 석 달 이 활동에만 지속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려워졌다. 한 사람 당 천원, 오천원, 만원 이렇게 모아서 5000만원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는데 우리는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만만하게 보았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특별히 리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어떤 단체에서 특별한 목표(조직 확장이라던가, 조직 홍보라던가)를 가지고 이끄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느슨한 연대와 당위로 시작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마음과는 다르게 ‘평화의 소녀상 주민모임’은 서로에게 두 번째 일, 세 번째 일로 밀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급한 일로 모임에 못 오고, 거리서명에도 빠지기 시작하고, 한두 단체가 자신들 본연의 활동과 겹쳐 잠시 주춤하니 조금씩 모금도 주춤해지고,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모두의 일은 모두가 함께 책임지기도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현실에서 조금씩 나타났다. 안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의미에 동의도 하고 참여도 한다. 무책임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모두에게 두 번째, 세 번째인 일은 언제 진행될지 기약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동네에서 힘을 모아서 집단지도체체(?) 형태로 진행하는 사업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거리 활동

    약속과 책임을 생각한 훌륭한 구로사람들

    위기가 오면 모두가 당황하게 되는데 이럴 땐 강력하게 버텨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투쟁현장도 그렇지만, 지역사회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구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 활동에도 그런 위기가 왔고 위기를 버텨주는 그런 분들이 계셨다. 옆에서 함께하면서 정말 존경하게 된 분들인데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낯 뜨거우니 그냥 전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분위기가 뜨고 잘 나갈 때는 이런 좋은 일에 나도 함께 하는게 자랑스럽고 신나서 저절로 힘이 솟는다. 이때는 뭘 건들지 않아도 된다. 어려운 순간이 오고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한발 더 진전시킨 것은 그간의 활동과 말한 것들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다들 힘들 때, 그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시 책임감을 나눠가지며 모일 수 있었다.

    주민모임은 약속과 책임을 다시 생각했다. 처음 시작할 때 말했던 이 건립 운동의 의미들, 지금까지 모금을 해주신 분들께 한 말과 참여해주신 분들의 마음, 함께한 수많은 사람들과의 시간을 생각했다.

    ‘말 꺼내는 사람이 책임진다’며 때론 투덜거려도 또 말을 꺼낼 것이다

    위기를 지나 평화의 소녀상 만들기는 계속되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한두 달 만에 똭!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봄 지나 여름에도 계속하고 3.1절까지 목표였던 것을 8.15까지로 변경해가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냈다. 그리고 8월 15일. 구로역 광장에서 ‘구로구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까지 성대하게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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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뭐 종로에 소녀상 없애면, 구로에도 만들고 여기저기 만들어서 없앨 수 없다는 걸 보여주지 뭐’라는 말이 시작이었다.

    그 말로 동네사람들이 함께 꿈을 꾸었고, 우리 동네에 만들어진 ‘평화의 소녀상’을 상상하게 했다. 함께 그려본 흐믓한 상상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옆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고, 즐거운 활동과 위기도 거치고, 책임감의 쓴물도 먹으면서 결국 그 말은 멋진 지역활동으로 영글었고 구로구 지역사회에 정말 큰 경험과 기쁨이 되었다.

    한참 힘들 때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도 나왔었다.“이거 동네에서 누가하자고 했지요? 함부로 말 꺼내는 거 아닌 거 같아요 ㅎㅎㅎ”

    평화의 소녀상이 구로역 광장에 당당하게 서 있는 지금. 아무도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고생 실컷 했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의 고생과 노력이 지역사회에 큰 힘이 되었다고 스스로들 느끼고 있다. 어려움을 이겨낸 힘을 바탕으로 우리는 동네에서 또 다른 기획을 하고, 사고도 치며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동네와 동네사람들을 조금씩 바꾸면서 말이다.

    어제.. 카톡방에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최순실 국정농단, 박근혜 대통령 하야.. 이거 동네 차원에서 뭐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역사와 전통의 구로인데..’ 아직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필자소개
    정의당 구로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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