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와 사람,
    과연 누가 악당일까요?
    [그림책 이야기]『커럼포의 왕 로보』(윌리엄 그릴/ 찰리북)
        2016년 11월 02일 11: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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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저는 끊임없이 저를 웃기거나 찡하게 만들 노래를, 영화를, 드라마를, 연극을, 책을 찾아 다녔습니다. 어릴 땐 정말이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제 몸이 배고픔을 느끼는 것처럼, 제 마음 역시 배고픔을 느끼기 때문이란 걸 알았습니다. 제 몸은 아무 것이나 먹어서 비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입맛이 너무나 까다로워서 삐쩍 말랐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제 마음을 울린 작품을 만났습니다. 영국의 신예 윌리엄 그릴의 『커럼포의 왕 로보』입니다.

    옛 서부

    한때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50만 마리의 늑대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유럽인 정착민들이 나타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에 변화가 생겼다. -본문 중에서

    이 페이지의 윗부분 그림에는 서부를 개척한다는 미명 아래 포장마차를 타고 달려오는 유럽인들의 모습과 그들을 구경하는 늑대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진 12컷의 그림에서는 유럽인들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약탈하고 몰아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옛 서부가 죽어가던 그 시절, 늑대들의 운명도 끝에 다다른 듯했다. -본문 중에서

    이 페이지에서는 마침내 서부에 철도가 놓이고 기차가 달려옵니다. 이제 늑대들은 유럽인들과 기차에 쫓겨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12컷의 그림에서 유럽인들은 목장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늑대를 사냥하고 살육합니다.

    이렇게 단 두 페이지의 그림으로 윌리엄 그릴은 불과 백여 년 전 북아메리카에서, 문명인을 자처하던 유럽인들이 얼마나 야만적인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윌리엄 그릴은 붉은 색 필터를 쓰듯이 인디언들과 늑대들과 야생동물들의 슬픔을 붉은 색연필로 노래합니다.

    커럼포

    하지만 불멸의 늑대들이 있었다!

    1893년 뉴멕시코 주 커럼포에는 5년 동안이나 커럼포 계곡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늑대 로보가 있었습니다. 로보가 이끄는 늑대 무리는 겨우 5마리였지만 영리하고 날렵했습니다.

    커럼포 지역의 목축업자들과 카우보이들은 모두 로보가 사라지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로보 무리를 잡지 못했고 마침내 로보의 목에는 엄청난 현상금이 걸렸습니다. 곧 로보를 잡기 위해 사냥꾼들이 몰려왔습니다. 사냥개 무리와 각종 덫과 강력한 독약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악명’ 높은 늑대 로보의 무리는 결코 잡히지 않았습니다. 커럼포의 왕 로보가 사냥꾼 어니스트 햄프튼 시턴을 만날 때까지 말입니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이 책은 신예 윌리엄 그릴이 화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의 『시턴 동물기』를 비롯한 많은 책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그림책입니다. 특히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이 쓴 『커럼포의 왕 로보』와 실제 시튼의 생애를 결합시킴으로써, 윌리엄 그릴은 더욱 감동적인 논픽션 그림책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은 화가이자 사냥꾼이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에 캐나다 남부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밀림에서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사냥하고 그림 그리며 성장했습니다.

    그런 시턴이 악당 로보를 사냥하고 난 뒤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기 바랐던 늑대를 잡았는데 시턴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턴은 너무나 슬퍼하며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서부영화

    제가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는 영화배우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영화를 많이 방영했습니다. 존 웨인은 주로 보안관 역할을 맡아 악당들을 물리쳤는데 그 악당 가운데는 꼭 잔인한 인디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사실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침략하고 몰아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유럽인들이 인디언으로부터 강탈한 나라였습니다. 더불어 존 웨인은 미국 언론과 함께 매카시즘을 선동하고 앞장서서 많은 영화인들을 가난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서부영화’ 같은 거짓말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늑대가 악당이라는 것입니다.

    늑대는 악당이다?

    늑대가 악당이라는 주장 역시 거짓말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은 저마다의 삶의 양식과 역할이 있을 뿐 인간의 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의 적이며 악당입니다. 인간은 늑대가 인간이 키우는 소를 사냥한다는 이유로 늑대를 멸종시키려고 했습니다. 돌고래 쇼가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돌고래를 마구잡이로 잡고 학살했습니다. 동물원이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납치하고 가두었습니다.

    윌리엄 그릴의 『커럼포의 왕 로보』는 늑대와 사람 가운데 과연 누가 악당인지를 가슴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왜 사냥꾼 시턴이 참회와 동물 보호의 길을 걷게 되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동물도 사람처럼 기뻐하고 아파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동물도 사람도 모두 감정이 있으며 영혼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늑대 로보의 아름다운 영혼을 느끼게 됩니다. 윌리엄 그릴의 『커럼포의 왕 로보』는 늑대와 사람의 영혼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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