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기고] 국민들 저마다의 민주공화국을 말해야
        2016년 10월 31일 06: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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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알고 있듯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박근혜와 최순실에 의해 국정이 농단됐고 모든 국민들이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해 많은 국민들이 ‘하야’를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부응해 정의당은 하야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고,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하야를 부정하며 특검이나 거국중립내각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진보로 크게 묶자면 목소리가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기획의 방향이 정해진 듯 고립된 정국을 일사천리로 가로지르며 대응하기 시작했다. 최순실이 귀국하고 청와대 인사 개편이 속도를 내고 있으며 여당은 거국중립내각을 야당과 함께 요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너무나 미흡하지만 검찰 수사 역시 진행 중에 있다. 이런 가운데 분열되고 무기력한 야권 진영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아직은 섣부른 전망이다. 박근혜 정권이 개헌 카드를 발표한 당일 저녁 JTBC가 대통령 연설문 관련 보도를 한 것이 24일이었다. 현재 사태는 겨우 일주일 밖에 경과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결정적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온 거리의 정치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진보진영을 비롯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리로 나서는 것이고, 이 힘은 아직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다.

    본질은 명확하다

    모든 정치가 그러하듯 거리의 정치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어’다. 어떤 구호를 외치고 어떤 담론을 제기하는가. 그 구호가 얼마나 많은 대중을 대변하고 그들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가져다주는가. 언어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언어가 있는가?

    일단 하야와 퇴진이 있다. 이는 분명하고 적확한 언어이지만 그것만으론 아쉽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엔 너무 분명하고 여지가 없다. 실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금 이 초유의 사태가 그저 정권의 퇴진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새누리당이나 재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으며, ‘비선실세’는 비단 박근혜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하야 이후에는 어떤 대안이 있는가? 과연 보수적인 국민들이 불안정한 정국이 지속되기를 원할까? 하야라는 언어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2008년 촛불시위부터 시작해서 늘 집회에서는 ‘순수’나 ‘깃발’ 논쟁이 제기됐다. 그 핵심은 운동권의 언어나 문화에 의해 조직되지 않은 참여자들이 주변화되는, ‘숟가락 얹기’라는 운동권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런 운동권의 행태들은 이윽고 지난 이대 사태처럼 일반 대중으로부터 운동권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거칠게 말하면 ‘자업자득’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국면에서 진보진영은 동일한 실수를 범할지도 모른다. 분노한 대중들의 목소리와 무관하게 스스로의 인식과 전망에 도취되어 ‘정치혐오’의 대상으로 또 다시 전락할지도 모른다. 이를 반복하기 않기 위해선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정치적 언어로 벼려내는 일이 중요하다.

    국민들 대다수가 현 사태에 분노를 터트리는, ‘이른바’ 국민대통합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복잡한 최순실 게이트를 국민들이 다 꿰고 있기란 쉽지 않다. 보수언론이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핵심은, 현재 이 사태의 ‘본질’이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헌정 질서가 있고 국가 운영의 룰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국가가 비선의 손아귀에 그것도 일개 사이비 무당에게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 사이비 무당이 보여준 모습은 자기 잇속을 챙기며 거만한 갑질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국민적 분노는 이런 현 사태의 ‘본질’에 대한 공통된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사적 네트워크의 원리

    그런데 이 사태가 그저 박근혜란 개인의 성격과 도덕성 때문에 생겨난 것인가?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허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현재 벌어진 사태의 이면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87년 6월항쟁으로 성립된 87년 체제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염원이 만들어낸 것이다. 87년 체제는 정치적으론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를, 사회경제적으론 개발국가 시기에 만들어진 질서의 극복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87년 체제 성립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정치적 개혁은 일정하게 성공했으나 사회경제적 개혁은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이 실패는 양극화나 경제적 불평등만 낳은 게 아니다. 개발국가 시기, 국가는 국민들을 돌보기보단 쥐어짜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적 제도를 믿지 않게 되었고, 사적인 인맥에 의한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됐다. 그 결과가 인맥, 학연, 혈연 등으로 표현되는 ‘사적 네트워크’였고, 이는 지금도 한국사회의 핵심 운영원리다.

    못 가진 사람들의 경우엔 이런 사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 자체가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 최순실과 같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이들이야말로 사적 네트워크의 수혜자였다. 그들의 이해 추구 과정에서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규칙들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를 만든 원인인 것이다. 그것이 이명박 정권과 영포라인의 ‘비지니스 통치’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 이 구조적 모순은 ‘샤머니즘 정권’까지 탄생시켰다.

    이게 비단 보수진영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이명박‧박근혜 정권만 비선실세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전 대표와 관련해 ‘친노’ 혹은 ‘친문’ 논란이 일었던 것 역시 비선실세 문제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 역시 박경철 씨와 관련해 비선실세 논란이 제기됐다. 진보정당의 경우,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은 ‘비선실세’의 존재 때문이다. 사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성립되고 유지되는 ‘비선실세’는 사회 일반적인 문제다. 이러한 사적 네트워크의 원리가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를 낳은 중차대한 구조적 원인인 것이다.

    민주공화국

    다시, 민주공화국이다.

    ‘하야’라는 언어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박근혜 정권에게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언어가 가능한가?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경우엔 공개적으로 하야를 부정했다. 이는 무엇보다 하야 직후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400여 일 동안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던 대선이 갑자기 60일 이내로 당겨진다면, 수권능력의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기성정당이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고백하는 것이다. 적어도 수권능력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정당이, 실은 평시에 수권능력을 갖추기 위해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비록 정기적인 대선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현 정부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상시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선거철에 반짝하는 것 외엔 수권능력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정부 운영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들은 박근혜의 위기 탈출 시도를 막지 못한 채 정국의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기성정당만을 바라보며 그들의 무능력에 실망할 수는 없다. 근 10년 내내 민주당의 무기력을 지켜봐야만 했다. 사실 87년 체제가 절차적 민주화를 달성하긴 했지만, 87년에 성립된 정당체제는 모조리 붕괴하고 있는 중이다. 87년 6.29 선언을 만들어낸 두 거대 양당 중 하나는 지독한 부패로, 다른 하나는 지독한 무능으로 귀결됐다. 이들은 87년 체제라는 이 시스템에서 계속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이들로선 87년 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많은 이들이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2008년 촛불 시위에서 널리 불렸던 이 노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가사로 하고 있다. 단순한 멜로디와 박자에 단순한 가사이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힘을 품고 있는 노래다. 2008년 촛불시위는 이 노래를 통해 6월 항쟁이라는 민주주의 전통을 환기하면서 이명박 정권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민주공화국을 되살리고자 했다. 이 노래는 당시의 대중적인 정서와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중요한 언어였다.

    지금 다시 이 언어가 요청된다. 이제 막 시작된 거리의 정치에서 외쳐야 할 구호는 ‘민주공화국’이다. 불려야 할 노래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다.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민주공화국이 사적 네트워크의 기득권 추구에 의해 망가진 상황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사회적 합의는 부정됐고 비선실세가 국가의 주인임이 드러났다. 이 망가진 민주공화국을 되살리는 일은 우선 다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민주주의를 소극적으로 지키는 것에 머무르는 게 아니다. 21세기에 ‘샤머니즘 정부’ 같은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선 구조적인 변화가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87년 체제가 실패한 자리를 딛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성정당과는 달리 하야를 전제로 한다면, 하야를 외치는 동시에 하야 이후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적극적인 대안과 전망을 만드는 일이다.

    그 대안은 ‘민주공화국’을 ‘국민의 언어’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라는 링컨의 유명한 문장처럼, 국민들은 저마다의 민주공화국을 말할 수 있다. 국민이 안전한 민주공화국, 취업이 잘 되는 민주공화국, 야근 없는 민주공화국, 차별 없는 민주공화국, 복지국가 민주공화국, 전쟁 없는 민주공화국…. 저마다의 사연과 염원들을 모을 때만 그것들을 이뤄낼 수 있는 국가와 시스템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일단 자신의 바람을 언어에 담아 외치는 것에서 시작하자. 이제 다시, 거리에서 민주공화국을 외칠 때다.

    필자소개
    성공회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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