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슬란드 조기총선,
    세계 첫 해적당 총리 무산
    10년 동안 약진한 좌파녹색동맹
        2016년 10월 31일 08:4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29일(현지시간) 실시된 아이슬란드 조기총선에서 집권 우파정당인 독립당이 21석(총 63석)을 차지하며 제1당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연정 파트너인 우파 진보당이 19석에서 8석(11,5%)으로 급락하면서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한때 4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며 돌풍을 일으켰던 해적당은 예상 외의 낮은 득표율을 올리며 10석(14,5%)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겨울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아이슬란드의 지리적인 특징 탓에 조직적 기반이 취약한 해적당이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수도인 레이캬비크 등 대도시를 제외한 농어촌지역에서 여론조사보다 현저히 낮은 득표율을 올렸다.

    올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제1당을 차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되면서 사상 첫 ‘해적당의 집권’이라는 외신보도가 이어졌지만, 기성 정치권과 부패에 대한 반사이익의 거품이 빠지면서 제3당을 차지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당을 어떻게 지역조직으로 확대해야 하는가 하는 숙제를 남겼다. 예컨대 ‘플라자 포데모스’를 통해 온라인과 지역조직을 쌍방향으로 당을 운영하는 포데모스의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링크)

    한편, 올해 초부터 꾸준히 지지율을 올리며 약진해왔던 좌파녹색동맹이 10석(15,9%)을 차지하며 제2당에 오르는 이변을 기록했다. 해적당, 좌파녹색동맹과 함께 선거 전에 연립정부를 약속했던 밝은미래는 4석(7,2%), 사회민주당은 3석(5,7%)을 차지했다. 연립정부 선언은 제1당 혹은 2당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던 해적당이 주도했지만, 좌파녹색동맹이 2당에 오르면서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의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 해적당과 같은 10석이지만 득표율에서 앞서면서 주도권은 좌파녹색동맹이 쥐게 됐다.

    좌파녹색동맹이 이런 결과를 얻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탄탄한 지역조직 때문이다. 좌파녹색동맹은 농어촌 지역에서 고른 득표율을 올리면서 이를 입증했다. 지난 10년 동안 좌파녹색동맹은 돌풍과는 거리가 멀었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배경이기도 한 지구전 즉, 해마다 그야말로 “1%씩 전진하는 당”이 좌파녹색동맹의 모습이었다.

    좌파녹색동맹

    카트린 자콥스도띠르 녹색좌파동맹 대표

    독립당-진보당과 좌파녹색동맹-해적당 등이 모두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서 캐스팅보트는 7석(11,5%)을 획득한 부흥당으로 넘어갔다. 부흥당은 독립당의 이념의 한 축인 생태자유주의 그룹이 탈당해 창당한 중도우파 정당이다. 부흥당은 독립당 내에서 정파연합 형태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당에 관철시키고 있었고, 이 때문에 당에서는 끊임없는 마찰이 계속 발생하면서 탈당으로 이어졌다.

    독립당-진보당과 좌파녹색동맹-해적당 등이 과반수 획득에 실패함에 따라 연립정부를 둘러싸고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할 전망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부흥당이 독립당-진보당의 연정에 참여하는 경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지만 생태자유주의그룹(Economic liberalism), 즉 부흥당이 독립당을 탈당하면서 가지고 있는 앙금이 생각보다 거세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약점이다.

    다른 장벽은 부흥당의 또 다른 이념인 ‘Pro-Europeanism’가 걸림돌이다. 부흥당은 EU 가입과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독립당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독립당이 EU 가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주요 지지기반이 어민들이라는 점이다. EU 가입은 어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이고 독립당의 존립을 뿌리 채 뒤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같은 우파지만 이질적인 정파가 당에 공존했던 것이다.

    2010년 아이슬란드 어민들이 기온 상승으로 EU와 협약한 쿼터의 3배가 넘는 고등어를 잡으면서 이른바 ‘고등어전쟁’이 일어났다. 그러자 덴마크령 페로제도 역시 쿼터를 무시하고 고등어를 잡겠다고 선언하면서 고등어 잡이는 외교문제로 비화했다. EU는 즉각 아이슬란드에 대해 무역제재와 유럽 내 모든 항구의 이용을 금지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고등어를 실은 페로제도의 배가 스코틀랜드에 하역을 시도하자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하면서 일촉즉발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고등어 수출에 실패로 인해 아이슬란드 국내가격이 폭락하면서 정부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부흥당이 EU 가입을 연립정부의 조건으로 꺼내든다면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좌파녹색동맹-해적당 등의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경우다. 중도우파 정당인 부흥당이 참여할 가능성은 일단 낮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첫 번째 시나리오에 대해 부흥당의 앙금이 강력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 시나리오의 약점은 좌파녹색동맹-해적당이 내줄 선물이 없다는 것이다. 좌파녹색동맹-해적당 역시 EU 가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부흥당이 EU 가입이라는 카드를 접고 내각에 유력한 장관 자리들을 요구하는 경우다. 하지만 독립당-진보당의 양당 동맹과 달리 좌파녹색동맹-해적당은 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밝은미래와 사회민주당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는 복잡한 구조다. 특히 이제는 몰락한 사회민주당이 부흥당의 ‘조건 없는 참여’를 주장하면서 연정은 처음부터 암초에 직면해있는 상태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좌파녹색동맹-해적당이 사회민주당을 내치고 부흥당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과반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두 번째 시나리오이자 첫 번째 시나리오다. 부흥당이 독립당-진보당에게 EU 가입이라는 카드를 접고 부총리를 포함한 유력한 장관 자리를 요구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의 약점은 어쨌든, 연정 파트너이자 1석이 더 많은 진보당이 받아들 수 없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총선의 국면은 여전히 열려있는 상태다.

    이번 총선은 집권당이었던 진보당의 귄로이그손 총리가 조세회피처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되면서 사임하면서 치러진 조기총선이다. 진보당-독립당 연립정부였지만 귄로이그손 총리가 사임하면서 연립정당인 독립당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지난 1년간 안정된 경제성장율과 낮은 실업률이었다. 문제는 귄로이그손이 총리를 사퇴했지만 당 대표를 유지하면서 이룬 선거라는 것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아이슬란드를 좌파녹색동맹-해적당이 부흥당을 끌어들여서 ‘위기내각’을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부흥당을 자극해서 재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만약 그런 국면이 열린다면 해적당 총리라는 외신이 아니라 좌파녹색 총리라는 유럽정당사에 없는 ‘신기원의 집권’이 열릴 수도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