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퇴진시키는 게
    파업 승리, 노동개악 막는 가장 빠른 길
    양대노총, 이제 노동자 이름값 제대로 하자
        2016년 10월 31일 08: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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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씨앗은 그 때 뿌려졌다. 현재의 많은 부분은 87년이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 「87년 체제」라 하는 이유다.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대신에 군사독재세력의 온존을 보장했다. 그리고 하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됨으로서 지배세력은 큰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 뒤 대통령이 되려면 모두 보수세력과 합당을 하거나 결탁함으로서만 가능했다.

    그 때 막 본격화된 노동조합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후 지배세력은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완비하고, 조직적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본의 이익을 챙기는 데 걸림돌이 되는 노동조합의 발전을 막았다. 무노동 무임금, 손해배상, 가압류, 필수유지업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동을 걸었다. 상층노동자들에게는 기업별 임금상승과 복지혜택을 주어 흡수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를 두어 단결을 방해했다. 89년 19.8%이던 조직률은 오늘날 10.2%로 떨어졌다. 이게 내년이면 민주노조 30년이 되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 옛날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대로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들은 노동조합의 두 가지 경제적 기능(노동시장에 대한 영향력, 노동조건의 개선)을 시지프스의 노동”으로 만들어 버렸다.

    29일 사진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29일 청계과장 촛불집회

    오늘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의 본질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에 대한 절대적 훼손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87년 체제가 만든 민주주의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고등학생의 발언처럼 ‘반쪽짜리 민주주의’라는 점이다.

    어설픈 타협으로 이뤄낸 87년 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온존시켰고, 무엇보다 노동자에 대한 민주주의를 철저히 외면했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단식을 하는 등 벼랑 끝 전술을 써야만 한다. 파견, 용역, 특수고용 등 어려운 용어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는 87년 이전보다 더한 무권리 상태다. 교사, 공무원은 노동3권을 갖지 못했다. 진행 중인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 시도는 노동자들에 대한 개별화, 개인화를 목적으로 하고 귀결은 노동조합의 무력화다.

    국정농단에 대한 저항은 2008년 촛불시위 이래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능성은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현실화되지 않는다. 해방 직후가 그랬고, 4.19가 그랬고, 80년 서울의 봄이 그랬었다. 교활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저들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를 넘나든 무서운 처세술이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청산되지 않는 역사” 이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공공부문 파업을 한 달째 이어가고 있는 과정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촛불을 든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응원하고 있다.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응원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다”고 악선동을 하는 보수언론을 잠재웠다. 이에 답해야 한다. 처음으로 노동자가 중심이 된 촛불이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사실 돌아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그 때, 백남기 농민에 대한 타살이 일어난 그 때, 시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의 참여를 보고 환호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민주노총은 입으로는 큰소리를 제법 쳤지만 얼마가지 않아 자신들만의 단단한 조개껍질 속으로 돌아가곤 했다. 한 가닥 기대를 했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실망어린 눈빛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세월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특별법은 누더기가 되었고, 그나마 특별조사위원회는 강제로 해산을 당했다.

    민주노총, 이릅값 할 때가 왔다

    “지금 우리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역이다. 오늘 우리의 투쟁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모든 거짓과 미신과의 투쟁이다. 우리 모두의 자유와 평등,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자”라고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이 대회 때마다 호소하고 있다. 이 부름에 응답해야 할 몫은 조직된 노동자 전체의 것이다. 철도파업은 이미 한 달을 넘어서고 있다.

    29일 철도

    29일 촛불집회 전 철도노조 집회 모습(사진=철도노조)

    지난 주말 열린 촛불집회에는 전주 시내버스가 동시에 경적을 울리고, 지하철 기관사가 집회 중임을 방송을 통해 알리기도 했다. 이런 운동은 더 확산되어야 한다. 각기 사업장에 맞는 방법을 동원,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의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상황과 조건을 무시한 선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노동조합들은 매주 토요일 진행될 촛불집회에 조직적으로 참가하라는 지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조직을 해야 한다. 문자나 팩스, SNS만이 아니라 실제 참가를 아래로부터 조직해야 한다. 이런 기세를 모아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버티고 있다면 ‘마지막 꼭지를 따야할 최후의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자. 결정적인 한 방을 가진 민주노총의 실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성과연봉제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노총과 공동으로 투쟁을 전개한 공공부문의 투쟁을 보고 교훈을 얻자. 오랜 기간 누적되고, 학습된 피해망상증으로부터 해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 투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성과연봉제 저지, 민영화 저지,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등 노동개악을 저지하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반노동 정책을 강압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우리 투쟁의 대상이 누군가? 바로 박근혜 정권 아닌가? 지금은 박근혜 정권의 개별적인 반노동 정책이 아니라 그런 정책을 끊임없이 만들고 재생산하고 확대하고 있는 악의 근원 박근혜 정권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성과연봉제 저지가 아니라 성과연봉제 같은 반노동 정책과 악법을 강행하고 있는 정권 자체를 무너뜨리는 게 우리 노동자 투쟁의 승리를 위한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길이다.

    철도노조 등의 단위사업장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양대노총이 작년부터 공조를 해왔던 기본 목표가 무엇인가? 노동개악을 저지하자는 것 아니었던가? 지금은 노동개악을 기획, 추진, 실행하려는 정권 자체를 공격하는 게 노동개악을 저지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리고 그런 길이 열리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노동자들만이 외롭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도 박근혜의 하야와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조선일보 같은 보수세력들도 그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박근혜 정권과 거리를 두려는 행태를 조심스레 보이고 있다. 이제휘청거리고 식물상태가 되어가는 박근혜 정권에 양대노총이 일격을 가해야 하고 가할 수 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실행하자. 그게 이 나라 노동운동의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이다.

    “말은 맞지만 앞장서면 우리 노조만 깨진다.”며 너도 나도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을 벗어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하자. 자신감을 가지면 실제적인 총파업도 불가능하지 않다. 양대노총의 투쟁으로 확장, 박근혜 하야를 위한 총파업 혹은 그에 버금가는 상징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지금의 국면은 새누리당조차 거국중립내각을 제기하고 있는 정도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지배세력은 ‘총체적 위기’라고 느끼고, 영악하게 상황을 타개할 궁리를 전면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 때와는 달리 노동자의 투쟁에 큰 박수를 보내는 국민의 요구에 조직적인 힘으로 답할 때다.

    이제야말로 악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뽑을 때가 되었다. ‘반쪽짜리 민주주의를 넘어 보다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과제는 노동자의 것이다. 촛불집회에 나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젊은이들의 절규에 답하자.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조직된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시지프스의 노동을 넘어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기 위해 지금 당장 여기서 투쟁을 시작하자.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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