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으로 따져본 대선 슬로건
    [말글칼럼] (안철수)≧손학규>박근혜…나머지
        2012년 08월 08일 05: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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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주자들의 슬로건들이 자주 교체가 되는군요. 하도 바뀌어서 따라잡기가 힘들 정도예요.

    박근혜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박근혜가 바꾸네’로, 김두관은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 국가를 향하여’에서 ‘한국의 룰라’로, 정세균은 ‘빚 없는 사회’에서 ‘내일이 기다려진다’로 바꿨습니다.

    제일 많이 바꿔서 뭐가 뭔지 도통 알 길이 없는 후보는 문재인입니다. ‘강한 대한민국’, ‘대한민국 남자’로 시작하더니 ‘사람이 먼저다’로 확정지은 모양입니다.

    처음 슬로건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후보는 손학규군요. ‘저녁이 있는 삶’, 후보 스스로 만족스러운지 정책집 제목도 똑같더군요.

    특이한 경우는 안철수 쪽입니다. 아직 슬로건이 없는데도, 있는 것보다 더 위력적입니다. ‘슬로건 없는 슬로건’이랄까요? 이것도 좀 살펴보려고요.

    공감에 관하여

    공감, 함께共 느낄感, ‘함께 느낀다’는 말입니다. ‘느낌’이란 건 다차원적이에요. 크게는 몸의 느낌과 정신의 느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시 ‘정신’의 느낌은 질감이 사뭇 다른 여러 차원으로 나뉩니다. 감정에서부터 신념까지 좌르르 펼쳐지는군요.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순전히 더위 탓입니다. 페이스북 글을 두어 시간에 걸쳐 읽어보니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가 이 더위더라고요.

    문득 이 더위만큼 공감도가 높은 게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게 ‘아, 몸의 감각이야말로 최대의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구나’로 생각이 이어지더군요.

    몸의 감각에 이어 감정이 뒤따릅니다. ‘짜증난다’든가 ‘힘들다’든가 ‘불안하다’든가 하는 거죠. 이어서 ‘강으로 가자’든가 ‘맥주 마시자’든가 ‘에어컨 틀자’든가 하는 해결책 쪽으로 갑니다.

    예서 곧장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누구는 ‘생태주의자인 내가 에어컨 트는 건 신념을 깨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실존적 고민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이 더운 날 고생하는 강정이나 쌍용차 분들도 있는데 어찌 감히’ 할 수도 있을 테죠.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라는 지구적 차원으로 생각을 넓힐 수도 있다.

    이 잇따르는 생각의 과정은 추상화 과정입니다. 구체적인 것에서 하나의 속성을 포착하여 일반화하는 과정이라는 거죠.

    우리 주제인 ‘공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이 과정은 곧 공감도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덥다’는 몸의 감각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지만, 이어지는 과정은 여럿으로 나뉘어 공감하는 무리가 이래저래 쪼개진다는 겁니다.

    추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공감도는 떨어지게 됩니다. ‘덥다’에서는 같아도 ‘바다로 가자’나 ‘에어컨 틀자’나 ‘수박 먹자’ 쪽으로 가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죠. 여기서 ‘에어컨 틀기’를 둘러싼 실존적 고민으로 가자면, 훨씬 공감도는 떨어집니다. 나아가 ‘지구 온난화’로까지 가게되면, 소수만이 공감하는 이념이 됩니다.

    몸에 가까운 게 공감도 높아

    결국 공감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접근은 최대한 몸의 감각에 다가가는 겁니다. 슬로건도 마찬가지예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슬로건은 공감도가 떨어질 수밖에요. 몸에 착 달라붙는 게 좋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은 참 좋은 슬로건입니다. 듣자마자 ‘아, 맞아, 우리에게는 정말 저녁이 없어.’란 느낌을 주죠. 자연스럽게 노동시간, 복지로 이어집니다. 여기다 ‘맘Mom 편한 세상’까지 들이미니 참 슬로건 하나로는 연타석 홈런입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슬로건 하나 없이 압도적 다수의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안철수의 생각≫과 ‘힐링 캠프’에 나와서 참 많은 얘길 했는데, 그 중 슬로건처럼 대중에게 다가간 한마디가 있어서라 봅니다.

    저는 그게 ‘불안감’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고백건대 저부터가 책에서 이 말을 접했을 때, 정말이지 전율처럼 다가오더군요.

    화려하지도 않고 길지도 않습니다. 슬로건으로는 부적격인 부정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찰싹 들러붙습니다. 저만 해도 세 아이 학비나 부모님 생활비 대느라 노후 대책 같은 건 꿈도 못 꾸거든요.

    반면, ‘대한민국 남자’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내게 힘이 되는 나라’, ‘빚 없는 사회’ 같은 건 한참 아래 급입니다. 그래서 바꾼 거겠지요.

    바꾼 건 어떨까요? 가령, ‘박근혜가 바꾸네’는요? ‘박근혜’와 ‘바꾸네’의 어감이 비슷해서 입에 들러붙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몸과 가까운 셈이죠.

    여당 후보가 바꾼다는 구호를 내건 게 독특하긴 합니다만, 그만큼 힘이 있다는 걸 강조한 것이기도 합니다. 뭔가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중간층을 끌어들이려는 작전으로 보입니다.

    몸에 가까운 어감과 노리는 대상이 분명하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슬로건으로 보입니다. 다만, 의도와 달리 그 자신이 변화의 대상이라는 점이 부각될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후보와 슬로건의 공감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는 참 그렇습니다.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데, 사실 노무현의 슬로건보다 한참 떨어집니다. 듣자마자 ‘그래서 뭐?’, ‘사람 누구?’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죠. 대상이 불분명하니 다가오는 맛이 없지요.

    김두관의 ‘한국의 룰라’는 더 처집니다. ‘룰라’가 누구인지 모르면 아예 느껴지지가 않지요. 정세균의 ‘내일이 기다려진다’도 몸에 느껴지는 게 없고요.

    좀 기이한 점은, 손학규의 슬로건은 참 좋은데, 그게 후보와 잘 매치가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게 박근혜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왜 그럴까요?

    박근혜는 어쨌든 그의 이미지와 이력, 그리고 지금 위치하고 슬로건이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뭘 했는지가 전혀 다가오질 않는 거죠. 후보의 몸과 슬로건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겁니다. ‘후보는 간 데 없고, 슬로건만 나부껴~’, 하하.

    그런 점에서 안철수의 ‘슬로건 아닌 슬로건’은, 그가 의도했든 어떻든, 그의 이미지와 삶과 능력과 딱 일치하는 걸로 다가옵니다. 가령 박근혜가 불안감을 얘기했다면 굉장히 분노스러웠을 겁니다.

    문재인은 ‘사람이 먼저다’에 특공대 옷을 입은 모습이 겹쳐서 참말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돼버렸습니다. 김두관은 ‘룰라’까지 들고 나서는 바람에 돈키호테 같은 이미지가 됐고요.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정의당의 당원이다. 수도권에서 오랫동안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부산에 정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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