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울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에정칼럼] 에너지전환, 구체적 가능한 목표 세우자
        2016년 10월 14일 0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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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에 체결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공식 발효를 앞두고 있다. 얼마 전 유엔(UNFCCC)은 기후변화 당사국 55개 이상의 국가들이 협정을 비준했거나 그에 준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넘겨 발효에 필요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했다. 이로써 모로코 마라케시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2)를 앞둔 11월 4일이면 기후변화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다.

    파리

    파리협약 회의 당시의 모습(환경부)

    2020년 이후 적용되는 신기후체제의 출범은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가 2005년에 발효된 전례에 비춰보면 괄목할만한 속도감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파리협정의 시대를 마냥 즐겁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열릴 제1차 파리협정 당사국 회의(CMA1)의 정식 멤버가 될 수 없다. 내년 초에나 국회 비준이 가능할 것이라는 소식이 맞으면, 정부와 국회의 나태와 무능을 탓할 수밖에 없겠다. 한편 일부 나라에서는 이 협정을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이 일고 있다. 국회 비준을 거치지 않고 신기후체제의 참여를 선언한 미국이 또 다시 변수가 될지도 모른다.

    법적 효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파리협정 체결 당시 그 내용과 방식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파리협정, 새로운 그린라운드 출범). 심지어 ‘사기’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 바 있다.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이라는 낙관 속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역사 종언’의 새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선언이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완화, 적응, 재정, 시장, 기술 등의 세부 쟁점에서 극심한 불화가 예상된다. 때문에 먼 길 돌아온 파리협정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제도 기후정의의 몫일 것이다. 이제는 협상 타결이라는 상징성,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면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해 온난화 수준을 조정해야 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로 온도 상승폭을 제한해야 한다느니,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350~450ppm으로 맞춰야 한다느니, 이런 계량적인 목표들이 설정된다. 이 마지노선을 넘으면 온도 상승으로 인한 영향이 대단히 심각해 인간과 자연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받는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는 공기 중에 각종 온실가스 분자가 몇 개나 있는지, 쉽게 알 수 없다. 영하 20도에서 영상 40도의 날씨를 겪는 사람들에게 지구평균 온도 2도라는 기후변화 또한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탄소예산(carbon budget)이 유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종 연구를 종합하면, 2도 상승으로 억제하기 위해 남은 탄소예산은 8430억tCO2이다. 현재 연간 배출량을 392억tCO2로 잡으면, 21.5년 뒤인 2037년에는 예산이 고갈된다. 1.5도를 목표로 한다면 탄소예산은 3930억tCO2이다. 10년 뒤인 2025년에 바닥이 난다.

    탄소예산 시나리오들

    * 자료: Oil Change International(2016)

    * 자료: Oil Change International(2016)

    이런 기후변화 안정화 시나리오에는 2050년(1.5도 목표)과 2070년경(2도 목표)에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경로가 섞여 있기는 하다. 실제 배출되는 양을 포집하거나 흡수하는 기술적, 생물적 장치를 통해 상쇄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불확실성으로 논란을 야기하고 있고,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에너지 전환이 더 설득력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신기술이 지구를 구원하리라는 기술만능주의를 버리자.

    탄소예산이 주는 이점은 따로 있다. 화석연료 자체를 대상으로 삼아 효과적인 정책을 입안할 수 있어서다. 에너지 생산에서 최종 소비로 이어지는 복잡한 사이클에서 가장 손쉬운 지점은 화석연료를 개발하는 상류 부문을 통제하는 것이다.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도, 화석연료 산업의 투자를 회수하는 것도 중요한 캠페인이자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온실가스를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하는 배출권 거래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탄소세를 부과하거나 직접 규제하는 방안을 적용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물론 사회적 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배출권 거래제 대안 모색: 탄소세와 개인별 탄소 할당제를 중심으로, 2011).

    당장의 쟁점은 이 태울 수 없는 탄소가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 될 위험이 있다는 데 있다. ‘태울 수 없는 탄소(unburnable carbon)’라는 표현이 있다. 쉽게 채굴하든 어렵게 채굴하든, 사용할 수 있는 매장량이 충분해도 더 이상 태워서는 안 되는 화석연료, 이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지난 9월,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이 공개한 <파리협정이 화석연료생산을 관리해 줄여야 하는 이유> 보고서를 살펴보면, 석유, 가스, 석탄의 확인․추정 매장량(석탄은 확인 매장량만 포함) 중 68~85%는 태워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매장량과 탄소예산 비교(1)

    * 자료: Oil Change International(2016)

    * 자료: Oil Change International(2016)

    현재 생산 중이거나 개발 중인 매장량의 예상 배출량만 해도 9420억tCO2이다. 느슨하게 잡힌 파리협정의 설정 목표라도 달성하고자 한다면, 상당한 양의 투자와 이익을 포기해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화석연료 매장량과 탄소예산 비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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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Oil Change International(2016)

    이런 수치들의 정확도야 바뀔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변하지 않는다. 낭비적이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없애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만큼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늘리는 에너지 전환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일이고,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말을 빌리면, “이것이 세상을 바꾼다.” 이것은 기후변화 자체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면 녹색산업으로의 전환은 물론, 나아가 다른 세상으로 이행하는 급진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핵심적인 전략이 된다.

    구체적이고 가능한 목표를 세우자. 태울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이것이 핵심이다. 똑바로 하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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