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낮은 범죄율
    하지만 높은 살인 범죄율
    [텍사스 일기] 폭탄가방 대소동 ①
        2016년 10월 12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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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오기 전에 가졌던 염려 중 하나가 “미국은 안전한가?”였습니다. 26년 전 뉴욕이 오늘날의 치안상태와 전혀 다른 시절, 밤의 뒷골목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갱들이 아무렇지 않게 기관총 쏴대는 장면이 즐비한 할리우드 영화가 그 같은 이미지를 마음속에 더 쌓았을 겁니다.

    하지만 2013년에 발표된 OECD자료는 선입견과 다른 결과를 제시합니다. 가입 36개국 대상 평균 범죄율 조사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는 캐나다였습니다. 고즈넉한 자연풍광과 유연한 사회 분위기로 봐서 쉽게 납득이 갑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놀라지 마십시오. 세계에서 3번째로 범죄율이 낮은 나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관광객들이 밤거리를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위? 미국보다 세 계단이나 낮은 6위였답니다.

    하지만 이 자료에서 주의 깊게 봐야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인구 10만명 당 살인사건 발생율이지요. 위에서 사례로 든 3개국을 비교하자면, 가장 수치가 낮은 곳은 역시 캐나다(1.8명). 다음이 한국(2.8명). 미국(5.0명)은 마지막 순위입니다. 한국보다 발생율 수치가 무려 2배에 가깝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사회 전체를 통틀어 전체 발생 건수는 낮지만,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살인 등 초대형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범죄율이 낮은 것도 살인사건이 많이 생기는 것도 모두 개인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 특유의 사회문화 때문입니다.

    눈앞의 사람들 중 “누가 총기를 지녔을지 모른다”는 공포(恐怖)가 전체 범죄율 하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가정집에 무단 침입하는 경우 총으로 사살해도 정당방위가 되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각 가정에서 보유한 총기 숫자가 전체 인구 3억 명보다 더 많습니다. 살인사건 발생빈도도 마찬가지, 총이 많으니까 총을 그만큼 많이 사용하는 겁니다(살인의 90%가 총기살인).

    특히 텍사스의 경우 50개 주 가운데 넘버원이라 불릴 정도로 총기 애호문화가 성(盛)합니다. 길거리에서 쉽게 총 파는 가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웬만한 스포츠용품점에 가면 어김없이 총기 판매 가게가 있습니다. 장총과 권총 심지어 반자동기관총까지 진열대에 주루루 걸려있지요. 소총탄, 권총탄, 엽총탄 등 다양한 종류의 총알을 박스 채 늘어놓고 직접 손으로 만져보면서 구입할 수 있구요. 심지어 우편함에 가보면 총기판매 리플렛이 하루가 멀다 하고 꽂혀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사진 1).

    폭탄가방대소동1

    각설하고, 하여튼 미국사람들은 법을 잘 지킵니다. 시민들이 모두 일급 지성을 갖춰서 그럴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의 준법(遵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입니다. 첫 번째는 스스로 양심에 따른 자율적 준법이지요. 두 번째는 안 지킬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지키는 타율적 준법입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전형적인 후자에 해당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유로운 총기 소지가 범죄 억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걸로 판단됩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포가 사람들끼리의 자잘한 충돌 혹은 마찰을 자율적으로 줄여주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야 싸움이 일어났다면 멱살잡이부터 시작해서 서로 밀고 당기고 뭐 이런 과정을 거치지요? 여기는 그런 모습 자체가 매우 드뭅니다. 상대에게 도발을 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표면적으로 미국사람들이 잘 웃고, 잘 악수하고 서로에게 젠틀한 태도를 지닌 중요한 이유로 저는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법률이나 규정 위반에 대한 처벌이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통위반 딱지의 경우 사소한 위반이라 해도 벌금이 최소 200달러(우리 돈 22만원)를 넘습니다. 거기에 운전면허증 미소지 같은 중복위반이 되면 우리 돈 7, 80만원을 훌쩍 초과합니다.

    뻥 뚫린 고속도로 위에서 자동차들이 한결같이 규정속도를 지키는 것이 미국에서 받은 중요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이래서 선진국이구나, 라는 생각이 깨어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습니다. 교통 위반 시 압도적인 처벌이 기다리고 있으니 알아서 기는 것이었지요. 이것이 바로 미국인들의 철저한 준법정신 뒤에 숨어있는 비밀입니다. 활발하고 자기주장 강한 미국인들이 불법행위를 극도로 회피하는 것은 한마디로 처벌이 두렵기 때문인 게지요.

    이 같은 공포가 겉으로는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보면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세상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가 잠재되어 있음이 어렵지 않게 감지됩니다. 9.11 이후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테러에 대한 강박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가족이 바로 그런 사건을 겪었습니다.

    큰 아이 군복무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5월 중순에야 남매가 모두 왔습니다. 먼저 와서 알아놓은 많지 않은 명소를 부지런히 안내했습니다. 지난 글에서 텍사스 최고의 관광 상품이 푸른 하늘이라 한 말 기억하시는지요? 한 이삼일 돌아다니면 갈 곳이 바닥날 정도로 구경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아독존 & 군계일학이 있으니, 바로 텍사스 남부 샌안토니오의 인공운하 리버워크(River Walk)입니다. 농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2013년 NBA에서 우승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근거 도시 샌안토니오. 스페인말로 파세오 델 리오(Paseo Del Rio)로 불리는 리버워크는 이 미국 10대 도시의 심장이라 할 만합니다.

    샌안토니오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문화가 현대 미국문화와 결합된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건물들이 그렇지요. 기후와 풍광도 그렇지만 고층빌딩들부터 여느 미국 대도시와 달리 어딘가 이국적 풍모가 강합니다(사진 2).폭탄가방대소동1-1

    리버워크는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강이 하도 자주 범람을 해서, 아예 강줄기를 덮어버리고 그 위에 인공운하를 건설한 것입니다. 천재 건축가 로버트 허그만(Robert Hugman, 1902-1980)이 1929년 ‘The Shops of Romula and Aragon’이란 대규모 설계계획을 제출함으로써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폭 6미터 ~ 8미터 정도의 수로가 도심을 고리처럼 싸고 도는데, 그 위를 관광용 보트가 사람을 가득 태우고 순회합니다. 이명박이 서울 시장을 할 때, 샌안토니오를 방문하고 나서 청계천 재건축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끝내줍니다.

    수로 옆 산책로에 수많은 레스토랑, 카페, 호텔, 노점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사시사철 관광객이 흥청댑니다. 생일기념 혹은 사랑고백을 전하는 멕시코 악단의 연주가 사람들의 가슴을 공연히 들뜨게 합니다.

    특히 밤이 되면 곳곳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건물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수로에 반사되지요.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입니다(사진 3). 이 멋진 관광지에도 경찰은 있습니다. 하지만 표정이나 풍모가 미국 내 다른 어떤 지역 근무자들보다 느긋합니다. 수염이 허옇게 샌 할아버지 경찰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띕니다. 그렇게 여유롭게 근무를 서던 경찰들이 어느 날 저녁 비상이 걸렸습니다. 폭탄테러 조사 때문에.

    폭탄가방대소동2

    폭탄가방대소동3

    이 도시에 이름을 제공한 성 안토니오 동상(사진 4) 옆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정체불명의 검은 색 가방이 발견된 겁니다. 조심스레 수거된 가방을 X레이 투시기가 샅샅이 스캔하는 긴장된 순간이 이어졌습니다. 대체 누구 가방이냐구요? 바로 우리 아들 녀석의 가방이었습니다! (2탄에서 계속^^)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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