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단체제의 규정력
    한국 국가의 어떤 특별한 '성격'
        2016년 10월 11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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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분단체제”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애당초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체제’라면 토대와 상부구조를 가진 사회경제적 체제라는 의미로 사용해왔으며, 그런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비록 분단이라는 상황에 처해 있어도 그 체제야 (관치) 자본주의일 뿐입니다. 한데, 분단체제라는 말은 한 가지 차원에서는 분명히 쓸 만한 용어입니다. 한국 국가의 어떤 특별한 ‘성격’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죠.

    사실, 애당초부터 한국이라는 국가는 ‘대북 저지용’으로 세팅된 부분이 큽니다. 1950년대만 해도 세계 최빈국인 남한이 자력으로 도저히 유지시킬 수 없었던 60만 대군 예산의 70%를 “큰 형” 미국이 대주고 있었는데, 거의 노망에 빠진 노 독재자 이승만이가 예뻐 보여서 그렇게 잘해주는 것은 아니었고 그만큼 그 “글로벌 플랜” 입장에서 한국군에 의한 “대북 저지”가 급했기 때문입니다.

    50년대만 해도 한국을 거의 간접 통치하다시피한 미국의 입장도 그랬고, 한국 통치자들 스스로도 “체제 경쟁”을 우선적으로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병영 국가의 각종 기구들이 거의 다 “대북용”으로 맞추어져 있었던 것인데, 1990년대 초에 북조선이 약체화돼도 여전히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상대방의 실질적 입장은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사실상 평화-공존-경협을 원한다 해도, 한국 통치기구들 같은 경우에는 대북 대립은 이미 바뀌기도 어려운 하나의 절대적 “아비투스”가 된 것이죠.

    예를 들어서 그런 걸 보시죠. 대한민국은 국제 난민에 대해서는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로 박정한 국가입니다. 작년에 5711명의 시리아인, 우간다인, 파키스탄인 등은 난민지위 인정을 신청했는데, 실제 인정된 사람은 105명에 불과합니다. 난민 인정률은 3,8%인데, 세계 어딜 가도 이런 나라를 찾기가 좀 힘듭니다.

    시리아 내전이고, 아프간의 도살장이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정적이나 동성연애자, 이교도 등에 대한 박해고, 이건 한국 지배자들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해도 되는 “남의 일”입니다. 천조상국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개입할 생각도 안하죠.

    하나원

    탈북자 정착 지원 교육시설 ‘하나원’ 본관 모습

    그런데도 유일하게 한국에 와서 난민지위도 아닌 국적과 지원금 등등을 바로 받을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피난민 집단은 바로 탈북자들입니다. 지배자로서는 탈북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받는 각종 차별이나 비공식적인 곳곳에서의 박대를 생각해보면 “애정”의 문제는 분명 아닙니다. 오만심에 가득찬 한국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탈북자나 파키스탄/네팔/우간다로부터의 난민이나 다 똑같은 “거지떼”로 분류되는 “저임금 지대” 출신일 뿐입니다.

    탈북자에 대한 우대의 유일한 원인은? 북조선 체제의 근간을, 그렇게 해서 흔들 수 있다는 전략적인 계산이죠. 탈북자는 국내인들에게 “우리 체제 우수성”을 과시하고 북조선 주민들에게 주민이 이탈해야 할 만큼 “못사는” 북조선의 “후진성”을 상징해야 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인간 전시물”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이용은 그들 본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의 문제는, 물론 한국 통치자들에겐 아무 관심도 없죠.

    난민 수용이라면 오로지 북조선을 더더욱 약체화시키기 위한 “탈북” 관련 사업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한국의 정보 관련 보안 사업도 마찬가지죠. 한국에서는 “간첩”이라면 애당초부터 “북한 간첩”만을 의미합니다. 간첩죄가 “적국을 돕는” 것으로 돼 있는데, 지금 “적국”은 한 군데뿐이니까요.

    약 9년 전에 백성학이라는 자가 CIA 요원으로서 한국 지배층 인사들의 의견들을 모아 미국에 정보를 전달하고 나아가서 미국의 국익을 위한 한국 정계 로비 등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일대 스캔들이 일어났는데, 이런 CIA 요원의 활약은 한국에서는 원천적으로 처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중국 등과의 첩보전을 은근슬쩍 하긴 하겟지만, 언론에 노출되는 “간첩”이란 오로지 대북관계입니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물론 조작에 불과한 “관제간첩”이죠).

    방첩 부문도 그렇지만, 한국 군대는 북조선 이외에는 가상적이 있기라도 하나요? 사실 “대북” 아니라면 징병제의 거의 70만 대군 자체가 도대체 왜 필요할까요? 인구가 거의 3배나 더 많은 일본의 자위대는 모병제이며 그 인적 규모도 한국군보다 약 3배나 작은데 말이죠. 한국보다 인구도 경제 규모도 훨씬 큰 독일도 그 군은 모병제인 17만 명에 불과한데, “대북” 적대가 아닌 이상 한국군 장교의 3분의 2 정도는 예편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할 셈입니다.

    한국에서는 “대북” 적대 덕에 호의호식하고 있는 직업적인 “반북 전사”들은 아마도 적어도 수만 명이나 될 것입니다. 북조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면 감군으로 자리를 잃을 (사실상 잉여의) 군 장교나 정보기관 관계자, 각종 공안계 “전문가” 등등 말이죠. “대북” 적대가 키운 징병제 군대는 지금도 한국에서 일종의 “제2고등학교”로서 남성들의 인생주기를 결정하고, 훈육, 복종 습관 키우기 기관으로서 남성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국가의 기본틀에 대한 분단의 규정력이 이 정도 크다면 “분단체제”라는 말은 일정 정도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대부분의 남한인에게 당연지사가 되고 만 이 체제를 과연 어떻게 변혁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소위 “지식인”으로서는 북조선에 대한 ‘탈악마화’부터 급선무죠.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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