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부정의'의 확산
    [에정칼럼] 아세안 파워그리드 함의
        2016년 10월 10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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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2일 아세안 회원국인 태국과 라오스, 말레이시아는 전력 거래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태국 전력망을 통해 라오스에서 생산된 전기 100MW를 말레이시아로 수출하는 것에 3자가 합의를 한 것이다.

    이는 동남아시아 10개국을 잇는 전력망체계 건설을 목표로 하는 아세안 파워그리드 이니셔티브(ASEAN Power Grid Initiative)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첫 번째 다자간 전력거래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역적 차원에서는 아세안 회원국 간의 전력 교환을 통해 역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으며, 말레이시아 차원에서는 라오스의 수력발전으로 생산된 ‘친환경 전기’를 수입해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국 에너지 믹스에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들이 말하는 에너지 안보는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형 수력발전 댐에서 만든 전기가 과연 친환경 재생가능에너지인가? 과연 아세안 파워그리드는 동남아시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아세안 파워그리드 계획의 등장

    아세안 파워그리드 계획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아세안 에너지협력협정(Agreement on ASEAN Energy Cooperation)’ 체결로 아세안 내 에너지자원 개발과 역내 에너지 거래 촉진을 위한 회원국들 간의 협력의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1997년 채택된 ‘아세안 비전 2020’에 아세안 파워그리드를 통해 역내 전력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표가 포함되면서 이를 실행으로 옮기고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고 2007년 아세안 10개국은 아세안 파워그리드에 관한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on the ASEAN Power Grid)를 체결하게 된다. 아세안은 전력망 건설이 역내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며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세안 회원국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 부문의 참여, 특히 자금조달 측면에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세안 회원국 전력 기관장들의 모임을 정례화하고 에너지 협력을 위한 5개년 아세안행동계획을 통해 각국의 계획, 건설, 운영에 관한 정보 및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전력 연계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동안 아세안 내의 전력 거래는 태국과 라오스, 라오스와 미얀마,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두 국가 사이에서만 진행되어 왔던 것이 처음으로 3자간 전력거래로 확대되었고, 이는 아세안 파워그리드 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세안 파워그리드 계획 ⓒ Nikkei Asian Review

    아세안 파워그리드 계획 ⓒ Nikkei Asian Review

    에너지 안보의 확대? 에너지/환경 부정의의 확산!

    그러나 이와 같은 아세안의 야심찬 계획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추진되어 온 에너지 개발이나 전력거래 사업에서 너무나 많은 에너지/환경 부정의 사례를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에너지 안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발전소 건설을 강행해왔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환경문제가 발생하거나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삶의 터전과 생계수단을 잃는 것은 취약계층의 몫이 되었고 개발의 이익과 혜택은 소수의 개발업자, 투자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에너지/환경 부정의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해온 것이다.

    그런데 한 나라 안에서만 일어나던 부정의는 지역협력을 통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연결되고 국가 간 전력 거래가 더욱 쉬워지면서 그 범위를 넓혀간다. 자국민들의 저항과 반대로 댐을 건설하지 못하게 된 태국은 대신 옆 나라 라오스에 댐을 짓고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입해오면서 – 석탄화력 발전소도 인근국가인 라오스와 미얀마에 건설하여 생산된 전기를 수입해올 예정이다 – 일국의 부정의는 태국과 라오스 사이의 부정의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아세안 파워그리드를 통해 역내 전력망이 모두 연결되면 전력이 쉽게 이동하는 것과 함께 에너지/환경 부정의 문제도 더 빠르게 이동하고 확산될 것이다. 태국에서, 말레이시아에서, 더 나아가 싱가포르에서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라오스의 더 많은 산지가 파괴되어야 하고 더 많은 현지주민들이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라오스는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력 거래가 장려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책임감 있게 우리나라에 풍부한 수자원을 개발하고 댐을 건설하겠습니다.” (2016년 9월 라오스 에너지광산부 차관의 발언)

    라오스가 더욱 적극적으로 수력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는 아세안이 수력발전을 ‘깨끗한 녹색 재생가능에너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형 수력발전 댐이 친환경 에너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 만 그루의 나무가 잘려 나가고, 마을이 수몰되어 사람들이 쫓겨나고, 댐으로 막힌 강물이 흐르지 못해 물고기들이 줄어들어 주민들의 생계가 망가지는 등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 이러한 방식은 깨끗하지도 않으며 재생가능하지도 않다.

    아세안 파워그리드 사업은 에너지 안보,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 확대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하더라도 결국 이 전력망을 타고 흐르는 것은 에너지/환경 부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동남아 국가들이 연결되고 아세안공동체로 나아가면서 그동안 동남아 곳곳에 흩어져 있던 피해 주민들,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의 연대도 더욱 확대되고 단단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동남아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동남아 에너지개발 사업에 진출해있는 한전과 발전자회사, 기업들에 대한 감시 또한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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