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회에 갇힌 상상력
    [진보정치 현장] 의회와 의회 바깥을 연결해야
        2012년 08월 08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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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주의. 학생운동 할 때부터 지금까지 진보정당운동을 지지하고, 함께 해왔던 내가 이른바 좌파에게 들었던 많은 비판 중 하나가 바로 의회주의다. 때로는 합법주의로 같은 말로 사용돼 투쟁성과 변혁성을 의심받는 말이었고, 때로는 타협 또는 개량과 비슷한 말로 사용돼 사회주의의 전망을 포기한 것이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진보정당운동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노동계급의 저항으로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진보정당운동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또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 부침을 거듭하더라도 진보정당운동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사라질 수 없으며, ‘체제’화된 자본주의와 싸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4년의 기초의원 임기 중 절반을 마친 지금, 대체 나의 기초의원 활동은 내가 갖고 있는 이 믿음, 나아가 당으로 집단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향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요즈음 깊이 되묻고 있다.

    똑똑한 기초의원 한 명도 아쉬울 수 있지만, 그 한 명의 기초의원이 당으로 집단화된 우리의 지향과 상관없는 활동이라면 굳이 우리가 기초의원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많은 사람의 투자와 노력, 몇몇 사람의 헌신적인 협력을 전제로.

    한계가 분명한 기초의원이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사회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괜찮은 수단으로서의 기초의원 자리를 획득했다면, 이 자리는 앞선 우리의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자.

    우선 기초의원에 다시 당선된 2010년 이전에 나는 무엇을 했던가. 2008년 진보신당 창당을 위해 노력하고, 진보신당의 생존을 위해 그 해 총선에 후보자로 나섰다.

    총선 후 한편으로는 지역기반(?)을 갖는 정치인으로 정착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지역에서부터 비자본주의적 삶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공동체 활동에 힘을 쏟았다. 동네 엄마들과 함께 동화읽는모임과 녹색살림모임, 풍물모임, 기타모임을 비롯한 여러 자조모임을 만들어 다른 사람의 재능이나 상품을 화폐로 교환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어린이날 행사에서 어린이책 할인 판매를 하고 있는 햇빛따라(사진=장태수 블로그)

    또 이런 엄마들과 함께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놀토 마을학교도 운영했다. 자그마한 이런 활동은 2009년 어린이도서관 햇빛따라를 만드는 성과로 이어졌고, 어린이도서관 햇빛따라는 문을 연지 3년이 지난 지금 380명의 회원, 후원회원이 함께 가꾸고 있다. 대구시로부터 최우수 작은도서관으로 선정되고, 대구시교육청과 학부모교육을 함께 진행하면서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서구청에서는 햇빛따라의 강좌진행을 문의하기도 하고, 지역 언론매체에서도 햇빛따라를 소개한 바 있다. 지금은 햇빛따라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해져서 대한노인회 서구지회와 협력하여 경로당 어른들께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이야기 동영상을 상영하는 찾아가는 이야기극장도 하고, 여름방학에는 도서관 1박2일 프로그램과 청소년자원봉사학교를 진행한다.

    9월부터는 청소년 미디어교육도 진행할 계획인데, 벌써 신청자가 줄을 섰다. 물론 이런 일들은 대부분 도서관장과 열성적인 엄마들의 손발이 한 일이다.

    물론 진보정당 소속의 기초의원이 해야 할 일이 공동체 활동을 확장하기 위서해만은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에서 진보정당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작은 의미가 아니다.

    또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하고 일을 하면서 갖게 되는 신뢰는 정치적 지지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들 지역을 강조하는 요즘, 지역에서의 이런 활동이 전국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착각해서도, 또 우리 지역의 사례를 일반화하면 당장에 뭔가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거라는 지나친 낙관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이런 시도 자체는 중요한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을 공동체 활동가로 길러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기초의원에 당선된 후 의회 일정 쫓아가고, 각종 행사와 자리에 참석하고, 상정된 안건처리에 마음이 메이면서 지역에서 무엇을 할까에 대한 상상력이 떨어졌다.

    구청장의 전횡을 고발하여 지역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진보정당 공직자로서의 정치적 존재감을 알리고, 환경미화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려던 구청의 계획을 저지하면서 기초자치단체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전통시장 상인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대형마트 영업활동을 규제하는 조례를 만드는데 함께 노력하는 등등의 의정활동 성과가 왜 없겠는가.

    폭우에 살던 집이 반쯤 무너진 차상위계층 노인네 두 분의 보금자리를 새로 장만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풍수해보험 보상을 받아내고, 장애등급제로 활동보조 서비스권리를 박탈당한 장애인과 함께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싸우며, 도시가스 공급확대 등의 각종 주민불편민원을 해결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쌓아나가는 성과가 왜 없겠는가.

    전반기에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후반기에는 소속 의원 12명 중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누리당 소속인데도 부의장에 선출되는 지역정가의 화제를 만들어내며 등록 취소된 진보신당을 선전하였으니, 이것도 성과라면 성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후반기를 시작하는 요즈음, 기초의원으로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종국에는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지역공동체 활동을 어떻게 더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정치적 고민과 상상력이 의회에 갇혀 있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이정도면 적당히 한다. 이정도면 우리 처지에 잘 하는 것이다는 스스로의 위안이 나태와 자만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해야 할 많을 일들 속에서 한명의 주민을 한명의 공동체 활동가로 성장시키는 바램을 기초의원이라는 꽤 쓸 만한 수단을 갖고 있을 때 해내지 못한다면, 그런 환경을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나는 왜 기초의원을 하고 있는지, 다음에도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진지하게 자문해야 할 일이다.

    정당정치에 불편함을 갖고 있는 동지들이 의회주의를 과도하게 걱정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는지, 내 활동에서부터 찾아볼 일이다.

    다행히 지난 달부터 시작된 지역의 교육, 문화, 복지 관련 민간단체들이 각 단체의 한계를 뛰어 넘어 지역에서 공동체 활동을 함께 해보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하여 만들어가는 (가칭)서구주민연대의 결성과 활동이 나의 안이함과 부족함을 깨고 메우고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필자소개
    노동당 대구시 서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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