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지하철노조가
    파업을 잠점 중단한 이유
        2016년 10월 05일 09: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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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한 법적 조치로 ‘법과 원칙이 우선하는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

    지난 9월 30일 파업 기간 중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배포한 보도자료다. 다시 말하지만 부산지하철 사측이 아닌 노동조합이다.

    사측의 전유물이다시피한 ‘법과 원칙’이라는 단어를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건 굉장히 낯설다. 그런데도 부산지하철 사측은 이 보도자료를 토대로 쓴 언론의 기사에 대해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사측 사이에 대체 어떤 사건이 있었길래 이렇게 관계가 전도된 듯한 장면이 펼쳐지는 걸까?

    사건은 파업 시작 6일 전인 9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사측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성과연봉제 관련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노동쟁의 조정은 노조가 9월 2일 신청하여 지난 19일 이미 종료되었다. 사측은 이미 조정이 종료된 상황에서 성과연봉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조정을 신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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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법에는 ‘조정전치주의’라는 게 있다. 일정 기간의 조정을 거쳐야 파업을 할 수 있다. 만약 사측의 조정이 받아들여지면 새로운 조정기간이 생기고 사측은 그 기간 내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러나 조정이 끝난 노동쟁의에 또 조정을 받아주는 건 조정 제도 자체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미국 비자를 받았는데 행선지 뉴욕 비자를 받지 않았다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만약 이런 조정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노동조합의 파업권은 심각하게 침해받는다. 사측이 조정신청으로 파업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측은 조정신청으로 미약하나마 불법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면 이를 확대·반복하여 조합원들 심리를 흔들어 파업을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파업을 저지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동력을 상실한 노동조합이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마디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측은 파업 3일 전 노조의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단정하고 참여자는 징계하겠다며 강력하게 경고하는 문자를 전 직원에게 보냈다. 파업 기간 중엔 하루에도 수차례 이런 불법파업 경고 문자를 날렸다. 심지어 파업 첫째 날엔 8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불법파업 참여를 이유로 직위해제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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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측의 주먹은 통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파업 참여 인원엔 별다른 이탈이 없었다. 게다가 불법파업의 근거였던 조정신청은 무너져버렸다. 28일 특별조정위원회에서 사측은 스스로 조정을 취하하고 말았다.

    사측은 노동조합의 불출석과 위원회의 노사 간 자율적 타결우선 의견을 받아들여 조정신청 취하했다고 말했다. 800명이 넘는 직원을 직위해제 시키는데 쓴 조정신청이라는 칼을 거두는 이유로 보기엔 너무나 맥락이 없다. 위원회에서 조정이 받아들여질 기미가 안 보이자 스스로 취하했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주먹은 헛손질이 되었고 이제 사측은 감당해야할 법만 남았다. 합법적인 파업을 막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다. 부당노동행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이미 9월 30일 부산교통공사 사장을 명예훼손 및 협박 등의 위법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고객홍보실과 경영지원처를 각각 명예훼손과 필수유지업무협정 위반 행위로 10월 4일 고소고발 계획이다. 부당노동행위 증거자료가 확보된 간부들도 고소·고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9월 30일 노동조합은 파업을 잠점 중단했다. 노조가 파업 중단의 이유로 발언한 내용은 주객전도 미학의 절정이다.

    “현재 사측에는 대화할 사람도, 힘도 없다. 이대로라면 파업이 장기화해 장시간 시민들께 불편함을 끼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

    부산지하철노조 ‘스스로’ 업무복귀 선언(국제신문)

    한마디로 사측이 패닉 상태란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노조의 파업을 막으면서 벌인 무리한 일들이 사측 간부들에게 고소고발로 되돌아오고 있다. 밀어부치다시피 추진하는 바람에 사실관계도 불리하다. 그런데 임기가 있는 경영진들이 고소고발 건들을 책임지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 내부 네트워크나 명령체계가 제대로 작동이 될까? 노조가 사측을 진정으로 걱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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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부산지하철노조 미디어연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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