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년 노동자들의 희망을 위하여
        2016년 10월 05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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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비부머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는 대단히 크다. 그들의 땀은 한국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그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밑거름이 되었다. 베이비부머들이 한국사회 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건은 소위 87년 노동자대투쟁이다. 이 투쟁 이후 수많은 노동조합이 건설되었고, 지금의 민주노총이 탄생될 수 있었다.

    세월은 흘러 그 베이비부머들이 그들이 정렬을 쏟았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있다. 말이 좋아 퇴직이지 실상은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베이비부머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부지런히 돈을 모아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세대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퇴직후 자신들은 부양을 받기 어려운 처지에 몰려있다. 왜냐하면 죽어라 돈을 버느냐 결혼을 늦게 해서 퇴직후에도 자식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아직 대학을 마치치 못한 자식의 교육비와 늦게 결혼하는 자식의 결혼 비용 마련을 위해 또 다른 곳에서 노동을 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셀프 부양과 더불어 부모와 자식을 계속 부양하기 위해서는 재취업이 불가피하지만 사회적인 취업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재취업은 하늘에서 별따기보다 어려운 실정이다. 베이비부머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사회적 부양제도가 발전되어 있지 않아서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즉, 퇴직자를 위한 사회복지제도가 갖춰져 있다면 여기에 기대보겠지만 불행히도 이런 제도는 없다.

    노년유

    딱한 처지의 베이비부머들을 국가기관이 아닌 노동조합이 방패막이가 되어 주면 좋은데 우리의 기존 노동조합은 현직에 있는 노동자들만 챙기지 퇴직한 노동자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노사의 합의사항이 아님에도 퇴직노동자들을 버리는 것은 노사의 공통된 행위이다.

    하지만 퇴직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공들여 만든 사회와 노동조합의 버림에도 불구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있다. 퇴직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자신들의 권익과 사회정치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그들은 거리에서 노인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기초연금 현실화 투쟁을 하고 있고, 마을에서는 일자리 만들기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물론 민주화를 위한 각종 투쟁에 연대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해 사회의 관심은 아직 작다. 퇴직자를 조직하려고 하는 노후희망유니온이 민주노총 가입을 신청했지만 아직도 가입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데서 보여지듯이 기존 노동조합의 시선도 그렇게 살갑지 않다. 그래서 퇴직노동자들은 힘들다.

    힘들게 살아온 그들 베이비부머들.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서 베이비부머들의 여생은 길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에 그들은 남은 기간의 상당 부분을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은 그들보다 앞서 노인이 된 선배 노인들처럼 평균 71.4세까지 노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인복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 는 한 베이비부머들의 여생은 즐겁기는커녕 고통스러울 것이 뻔하다. 그래서 그들도 선배 노인들처럼 자살을 택해 그들의 선배 노동자들이 세운 OECD 1위의 자살률을 유지할지 모를 일이다.

    이제 사회와 기존 노동조합이 이들 베이비부머들을 응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경제와 노동조합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그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힘들어 여생을 한탄 속에 살게 하거나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맥아더의 말(“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과 달리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지도 않는다”는 미담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끝>

    필자소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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