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검찰사법개혁에 관한 소견
        2016년 10월 04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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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변호사 정우람씨가 한국의 사법개혁에 대한 소견을 기고로 보낸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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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과 법원으로 대변되는 사법권력의 본질은 시민의 궁박에 있습니다. 쟁송의 굴레에 얽힌 사건당사자들의 곤궁은 시민과 사법기관 사이에 현저히 균형을 잃은 일방적 역학관계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내면에는 시민의 불행을 기화로 권력이 추구하는 지독한 감성적 쾌감의 원천이 숨어있습니다.

    폭력에 내재하는 위험한 감성 형태 중 “망나니의 쾌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은 외부의 저항으로부터 보호된 안전한 상태에서 상대의 일방적 파괴만을 만끽하는 궁극의 폭력 유희입니다. 그것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강도와 중독이 더해지고, 상습화되며, 국가권력으로 표출되는 정당성의 외관마저 확보할 때, 우리는 인종탄압, 종교,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전쟁 등 권력이 인간을 상대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비극을 목격합니다.

    검찰사법개혁에 대한 논의는 사법권력에 내재된 이 비루한 폭력 유희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기소권과 사법판단권을 각각 독점한 검찰과 법원은 구조적으로 외부의 견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닙니다. 망나니의 쾌감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민의 감시와 제재로부터 보호된 안전한 상태에서 해당 기관들의 압제적 권한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습니다. 표적 수사, 보복성 기소, 정치편향적 판결 등 그것의 잘못과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모든 형식의 대응장치가 배제된 것은 물론입니다.

    권력의 횡포로부터 시민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진실이지만, 진실이 소수의 검사 내지 판사가 의도하고 허용하는 만큼만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데 그 맹점이 대두됩니다. 이것은 검찰과 법원에게 사건당사자가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피해자의 인격을 서슴없이 모독하는 강압 조사, 막말 판사, 괘씸죄를 물어 패소 판결을 내리는 등의 온갖 형태의 사법폭력이 자행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폭력의 쾌감을 만끽하려는 권력의 비루한 욕구가 진실 독점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스스로 보장받음으로써 국가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 국민이 이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는 기막힌 포식관계가 현출된 것입니다.

    사법권력이 흠결 있는 가해자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그것의 무한한 폭력 욕구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따릅니다. 세월호 집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하고, 평화의 소녀상을 지켜낸 대학생들을 입건 조사하고, 물대포로 사망한 고인과 그 가족을 부검영장으로 능욕할 때, 이에 좌절하는 민중의 무력함으로 자신의 위세를 확인받을 때 비로소 망나니의 모진 갈증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 앞에서 동아줄을 흔들어 본 적 있으십니까. 하물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선량한 시민들마저 자신 앞에 무릎 꿇려 벌벌 떨게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사법권력의 진정한 카타르시스입니다.

    이 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지난 5년간 사법 절차에 연루된 80여명의 시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조차 그 마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표현의 과잉이 아닌 참혹한 현실의 증명입니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사법피해자들의 절규는 시민의 궁박을 기화로 자신의 비루한 폭력 욕구를 해결하는 사법권력의 근본적인 한계를 역설합니다.

    검찰사법개혁은 국가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논의로부터 다시 시작돼야 합니다. 국민이 그것의 잘잘못을 가려 엄중히 꾸짖을 수 있는 외부적 방어기제의 구축이 반드시 논의돼야 합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합니다. 사법권력이 견제 받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검찰사법개혁은 국가권력의 일방적이고도 잔혹한 폭력 유희 앞에 더 이상 굴종하지 않겠다는 우리 시민 모두의 헌법적 선언입니다.

    필자소개
    미국 변호사, wooram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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