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악의 빈곤 형태, '타임 푸어'
    "빨리빨리"와 "바쁘다, 바빠"는 시간적 가난의 징표
        2016년 10월 04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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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사회나 초기 산업사회 같은 경우에는, ‘빈곤’의 정의는 간단합니다. 의식주 해결이 언제 어려워질지 모를 사람, 즉 언제 배가 고프고 언제 유망민 신세가 될지 모를 정도로 물질적으로 “없는” 사람은 바로 “빈민”, “궁민”으로 분류되곤 했습니다.

    사실, 이런 전통적 의미의 빈곤은 한국에서만 해도 1970년대까지, 즉 보릿고개가 존재했던 시절까지는 꽤나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라’와 ‘기업’들은 비록 부유해져도 민중들의 삶이 그만큼 좋아진 건 전혀 아니니까 지금도 약 15~20%의 한국인들은 전통적 의미의 빈민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전통적 의미의 빈곤은 다시 핵심부에서도 증가돼왔지만, 대개는 산업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다수에게의 ‘빈곤’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라면, 기본적 의식주 해결을 국가가 어느 정도 보장해줍니다. 한데, 꼭 배가 고플 확률은 낮아도 신자유주의로 넓어진 중하층은 기아 대신 불안에 시달립니다.

    오늘이야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어도 계약은 1년이고 그다음은 알 수 없고.. .잘린다 해도 실업급여 등으로 그다음 비정규 직장을 잡을 때까지 버틸 수 있지만, “1년 단위”로 사는 인생은 불안하여 그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죠. 또는, 어느 은행에서도 주택융자를 받을 수 없으니까 주거 개선 등은 어렵고 집세가 밀릴 때가 있고 자꾸 임대주택들을 전전해야 하고…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전형적인 빈곤의 모습은 아마도 “제도화, 구조화돼 있는 불안”일 것입니다.

    절대적 빈곤에서 불안, 타임 푸어로

    불안은 중하층의 생명을 갉아먹습니다. 그런데 자본의 먹이사슬에서 그것보다 약간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중중, 중상층을 봐도, 불안은 줄어들어도 그 대신에 “시간적 빈곤”이 그 자리를 메꿉니다.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없고 광적으로 빠른 업무 리듬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런저런 질환들을 계속 얻어가면서, 시간적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는 것은 중중/중상층 “타임 푸어”들의 모습입니다.

    보수 신문들은 가끔 한국의 중중층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무자들의 “화려한 연봉”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가면서 교묘하게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키워 분리 통치의 효과를 노리지만, 실제로 이 “노동귀족”들은 한 달에 3~4백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서 주당 60시간 정도로 일해야 한다는 걸, 그렇게 해서 대부분은 골병이 드는 등 40~50대가 되면 건강이 거의 망가진다는 걸 물론 빠뜨립니다.

    “잘사는 노동자”라는 게 바로 자기 시간은 거의 없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기업’이 식민화한 노동자라는 점을, 제도권 언론들은 당연히 이야기하려 하지는 않죠. 87%가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는 보통 처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집에서 함께 하는 것은 이루기가 어려운 꿈입니다.

    정규직이라 해도, 한국 직장인의 통계적인 평균 귀가 시간은 7시 5분이며, 평균 하루 노동시간은 거의 11시간입니다. 평균 주당 야근일은 3,5일이고요….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정규직이 돼도 평균 6시간밖에 수면하지도 못합니다. “슬립 푸어” 직장인들의 사회는 대한민국이죠.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사실 “빨리빨리”와 “바쁘다, 바빠”는 현대판 가난의 상징이죠. 시간적 가난, 여유의 빈곤 말이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되든 5만 불이 되든, 내가 그나마 직장이라는 정신병원을 잊고 좀 릴렉스할 수 있는 내 연례 휴가는 평균 10~11일이라면 그 달러뭉치 숫자는 나에게는 도대체 뭔 상관이 있을까요? “3만 달러”라는 숫자는, 그 10~11일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과연 행복감을 줄까요?

    “타임푸어” 삶은, 많은 경우에는 각종 병리로 귀결됩니다. 스트레스 대응책으로 술, 담배가 선호되고, 매일매일 파김치가 돼 돌아오는 사람들 사이에 가정 불화, 가정 폭력이 쉽게 발생되고, 만성적인 수면부족과 스트레스로 면역성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는 것이 예사가 되고…사실 이런 삶의 모습은 현대판 빈곤의 최악의 형태죠.

    신자유주의는 시간적 빈곤을 고착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세계적 신자유주의 노동분담 체제에서는 한국의 위치란 제조업 위주의 착취공장입니다. 이 착취공장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지배층의 일부 이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고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나지만, 한국만큼 “타임 푸어”들의 일상이 고된 나라도 찾아보기가 힘들죠.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반대하는 혁명으로 나서자면 “여유 있는 자유의 삶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맞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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