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저모] 거리로 나선 의료노동자
    뭔가 아시는 환자분, “검사 못 받았지만 파업 이겨주길 바랍니다.”
        2016년 09월 29일 04: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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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이 가치는 곧 “환자는 돈벌이 대상이 아니다!”는 말과 같다. 공공의료의 이 소명을 지키기 위한 서울대병원 노동자의 파업이 3일차를 맞았다.

    노조는 매일 오전 파업출정식을 열어 의지를 다진다. 오늘(29일)은 거리로 나가 세종문화회관 외부 계단에서 진행됐다. 깔끔한 흰 티셔츠에 “국민이 먼저”라고 새긴 문구가 병원노동자의 돌보는 심성을 전한다. 손에는 “국민피해 성과주의 반대!”라고 쓴 손현수막을 들었다. 조합원들은 간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구호를 외치며 율동도 한다. 시민들이 지켜보고 지나는 청소년들은 세상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파업 3일차 거리 출정식

    파업 3일차 거리 출정식

    간부발언 경청하는 조합원

    간부발언 경청하는 조합원

    구호 외치는 조합원 "국민피해 성과주의 반대한다!"

    구호 외치는 조합원 “국민피해 성과주의 반대한다!”

    파업출정식 바라보는 지나던 시민들, "화이팅!" 외치기도

    파업출정식 바라보는 지나던 시민들, “화이팅!” 외치기도

    성과퇴출제 따른 국민피해, 병원에서 가장 뚜렷

    정부가 강제 도입하려는 성과퇴출제에 따른 국민피해는 병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환자에게 더 많은 과잉진료를 하고 더 비싼 수술을 받게 하면 월급을 제대로 받고, 그렇지 못하면 저성과자라며 해고되는 게 성과퇴출제다.

    이미 서울대병원은 부서별 차등성과급제를 시행해 4개월 동안 이전보다 162억 원이나 많은 추가이윤을 챙겼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과 민간투자(민영화) 방식으로 서울대병원은 첨단외래센터를 세운다고 한다. 그런데 또 이 첨단센터도 문제다. 본래 진료공간을 혁신하고 확충한다는 목적의 센터가 설계 과정에서 ‘돈벌이 센터’로 둔갑했다. 접근성이 좋은 지하 1층은 상업시설로 채우고 지하 2~3층의 환자 편의시설은 사라졌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환자 주머니 터는 경쟁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고 성과퇴출제 전면 적용에 거부해 파업에 돌입했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병원 경영진은 노조와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임금체계로 변경하려면 노동자와 합의해야 하지만, 경영진은 9월부터 비밀리에 임금제도 변경을 준비하고 있으며, 환자나 직원들은 눈 밖이고 정부 눈치 살피기에 초집중한 병원장은 파업 날까지도 해외출장을 떠나며 무책임했다.

    세월호 영정사진 및 전시장 둘러보는 조합원들

    세월호 영정사진 및 전시장 둘러보는 조합원들

    세월호 광장 홍보물 읽는 조합원들

    세월호 광장 홍보물 읽는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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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정부 일 하는데 해가 될까봐 지지 철회?

    △성과퇴출제 금지, 의사성과급제 폐지 △외주 어린이환자 급식 직영전화 △첨단외래센터 돈벌이운영 금지 △개인의료기록 유출 의혹 영리자회사 철수 △안전우선,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파업 요구로 내걸고 있다.

    정부와 회사는 외면하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굳이 권하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찾아와 노조 서명판에 지지 서명을 남긴다. 보수언론이 환자들을 쫓아다니며 파업으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만 한다고 일러주는 환자도 있단다. 과잉진료에 분노해 서명한 어떤 아주머니의 에피소드는 씁쓸하다. 자진해 서명을 하더니 한 참 만에 다시 돌아와 “우리 아들이 정부 일을 하는데 해가 될까봐”라며 서명을 지우셨다. 정부가 무서운 국민,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병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파업은 시민 지지 속에 거침이 없다. 경남 산청에서 올라왔다는 어떤 외래환자는 “내가 예정한 검사를 못 받았지만, 꼭 파업을 이겨주길 바란다”며 독려하고, “김영란 법에 걸릴지도 모르지만…”하며 격려금을 전하는 방문객도 있다고 한다.

    파업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난생 처음 파업에 나선 신입사원들, 그들은 노조를 통해 주류 언론에서 못 듣는 세상일을 접하고 열정을 불타우기도 한다. 밤샘근무 후 녹초가 된 사람을 호사가 퇴근도 못하게 붙잡아놓고 “왜 투쟁복을 입고 일하냐!”며 당장 벗으라고 윽박질러도 버텨낸다. 그리고 다음해에 그는 스스로 대의원을 맡아 노조 간부가 된다고 한다. 어떤 간부는 ‘저성과자 모자’를 스스로 제작해 쓰고 다니는 재치도 발휘한다. 그런 뚝심 있는 노동자들이 파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오늘 세월호 광장을 찾았다. 국민과 함께, 힘겨운 시민과 함께 한다는 취지며, 그렇게 세상을 돌보는 노동자가 되려는 노조의 마음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젊은 조합원들

    뜨거운 햇볕 아래 젊은 조합원들

    남자도 햇볕은 뜨겁다.

    남자도 햇볕은 뜨겁다.

    "저성과자는 누가 정하는가? 함부로 해고하지 말라!" 항의의 모자

    “저성과자는 누가 정하는가? 함부로 해고하지 말라!” 항의의 모자

    착한 이름, 착한 파업

    서울대병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한다. 파업권을 갖지 못한 비정규직은 대의원대회를 여는 방식으로 파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 이름은 ‘민들레분회’다. 외주업체 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회사 이름을 따라 노조 이름을 바꾸지 않도록, 우리 자신의 이름을 갖겠다는 취지다. “민주주의의 들판에 희망찬 내일을 위하여”, 민들레분회의 의미다. 노조 이름처럼 “착한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제휴 기사=노동과세계(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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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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