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노동당 경선,
    코빈 재선의 의미와 과제
        2016년 09월 27일 11:2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토요일 영국 노동당의 대표로 제레미 코빈 현 대표가 재선되었다. 강경한 반 긴축정책 입장의 좌파 성향인 코빈 대표가 당내 현직 의원들의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원과 지지자, 참여 노동조합 등의 모든 층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되었다. 의미와 상황을 짚어보는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

    제러미 코빈 영국노동당 대표를 실각시키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24일(현지시각) 리버풀 연차 당대회에서 발표된 노동당 대표 경선 결과, 코빈(61.8%)은 오웬 스미스(38.2%)를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대표직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코빈은 등록당원과 25파운드를 낸 ‘등록 지지자’ 모두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코빈3

    코빈

    제레미 코빈 대표

    코빈은 지난 6월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당 주류들은 당론과 달리 EU잔류 운동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곧이어 ‘그림자내각’의 안젤라 이글(Angela Eagle) 기업혁신기술부장관을 필두로 과반수에 가까운 장관들이 사퇴를 선언하면서 코빈을 압박했다. 하지만 코빈이 대표직 사퇴의사가 없다는 단호한 의사를 보이자 5일 후 원내노동당은 총회를 열고 찬성 172표 대 반대 40표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불신임안이 통과되자 지난해 9월과 같은 당원 입당운동이 대거 벌어지면서 경선 의사를 표시했던 안제라 이글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내에서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오웬 스미스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번 당 대표 재선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코빈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것이 여론조사기관의 전망이었다. 런던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유력정치인으로 떠오른 사디크 칸 등이 오웬 스미스 지지를 호소했지만 당원들은 ‘당의 혁신’을 선택했다.

    그림자내각의 재구성

    코빈이 대표직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전망은 어둡다. 우선 추락하고 있는 노동당의 지지율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다. 브렉시트의 유탄을 맞고 총리에서 물러난 캐머런을 대신해 총리에 오른 테리사 메이(Theresa May)의원이 노동당의 분열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보수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노동당의 분열과 신임총리에 대한 기대감들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여성총리라는 점에서 ‘대처 실루엣’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대표 선거기간 동안 전국을 누볐던 코빈이 어느 정도 ‘컨벤션 효과’를 가지고 올지, 아니면 냉담한 유권자의 반응이 나타날지는 이후 여론조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자내각을 재구성하는 것도 난제다. 당의 분열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당의 주류인 우파의원들과 타협이 필요하지만 우파의원들이 전향적으로 당 통합에 임할지는 여전히 의문부호이다. 현재 그림자내각에는 코빈의 최측근인 재무부장관 존 맥도넬(John McDonne)과 보건부장관을 맡고 있는 노장 다이앤 애봇(Diane Abbott)을 제외하면 나머지 장관들은 ‘당의 혁신’이 아니라 ‘임시처방’에 가깝다.

    핵심부서라고 할 수 있는 산업부장관 레베카 롱-베일리(Rebecca Long-Bailey)는 30대 후반에 초선의원이다. 안젤라 이글의 사퇴로 기업혁신기술부장관을 맡은 리차드 버곤(Richard Burgon) 역시 30대 초반에 초선의원이다. 믿을 수 있는 좌파의원들을 핵심부서에 배치한 것은 비상한 상황에서 선택한 결정이지 정상적인 당 운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작은 희소식은 우파의원들이 그림자내각에 참여할 의사를 보였다는 것이다. 당 대표 선거기간 동안 코빈의 압도적인 당선이 확실해지자 우파의원들은 색다른 다른 제안을 들고 나왔다. 당 대표가 임명하는 그림자내각의 장관을 원내노동당에서 임명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코빈은 이 제안에 대해 “(그렇다면) 당원투표로 선출하자”라며 단호하게 반대했다.

    우파의원들이 그림자내각에서 줄 사퇴를 하면서 코빈을 압박했지만 여전히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영국의회는 매주 수요일 다수야당인 노동당의 대표가 질의하고 총리가 답변하는 것이 관례다. 이를테면 매주 정치토론이 열리는 셈이다. 이런 방식은 장관들도 동일하다. 그림자내각의 장관이 질의하고 현직 장관이 답변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대정부질의 의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림자내각의 장관직이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중요한 경력이기 때문에 우파의원들도 계속해서 보이콧을 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

    코빈이 대표선거 내내 전면에 내세웠던 슬로건은 ‘지역공동체의 재건설과 (질적)변화’(Rebuild & Transform Communities)였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슬로건은 좌파의 오랜 의제인 주택과 교통, 에너지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한축으로, 철도와 전기, 가스와 같이 민영화된 기간산업을 재국유화하는 것이 또 다른 축이다.

    이를 위해 국영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의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국영투자은행은 채권을 발행하고 중앙은행(영란은행)은 새로운 돈을 찍어내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마련된 재정으로 사회간접시설 부문의 기업과 노동자에게 돈을 유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아니라 실물경제에 ‘직접’ 투자하는 계획이다. 이를 그림자내각의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존 맥도넬은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라고 호칭했다.

    코빈의 등장으로 영국노동당은 전례가 없는 입당운동이 일어나며 현재 당원숫자 무려 65만 명에 이르렀다. 새롭게 입당한 당원들 대부분은 코빈의 지지자로 당원투표로 대표를 선출하는 당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대표직은 흔들림 없이 유지될 전망이다. 다만, 원내노동당에서 소수파의 위치에 있는 코빈은 다수파인 우파의원들과 적절한 타협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선수락 연설에서 코빈이 “당의 통합과 단결”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