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연금,
    어떻게 설계하고 실현할 것인가
    [책소개]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오건호/ 책세상)
        2016년 09월 24일 03:1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연금’은 고령화·고용 불안 시대 및 복지국가의 기본 의제이자 한국 사회의 핵심 논제 가운데 하나이다. 예전에는 국민연금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공적 연금’이 핵심이다. 2007년까지 일반 시민에게 적용되던 공적 연금은 국민연금 하나였지만 지금은 기초연금도 있다. 사적 연금이지만 법정 의무 제도인 퇴직연금도 비중이 조금씩 커간다. 국민·기초·퇴직 연금의 다층 체계로 발전하고 있는 전체 공적 연금의 시야에서 초고령 시대 노후 연금의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점검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현재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연금 논의는 2015년의 ‘대체율 50%’ 논쟁이나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의 해결이 지금껏 표류하는 데서 보듯, 정확한 이해와 시각 없이 진영 논리만 있는 상황이다.

    연금·복지국가·재정 등의 분야에서 연구자이자 정책 입안자이자 활동가로서 첫손에 꼽히는 오건호 박사는 신간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한민국 연금 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연금 논의의 지평을 국민연금에서 공적 연금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책은 세대 내·세대 간 형평성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국민연금 중심의 기존 연금 문법을 재검토하고, 세대 내·세대 간 연대와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연금 중심의 연금 개혁 모델을 제안한다.

    기초연금은 현세대 노인 빈곤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인에게도 국민연금 가입 여부를 묻지 않기에 사각지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현재 필요 재원을 현세대가 마련하는 재정 구조여서 지출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므로 세대별 재정 연착륙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보장성’, ‘지속 가능성’, ‘형평성’이라는 가치를 모두 실현하는 연금 해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오랜 연구와 심도 있는 분석이 응축된 52개의 도표 등 책에 수록된 광범위한 실증적 통계 자료가 이러한 논지를 뒷받침한다.

    공적 연금이 내 노후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까? 누구는 미래에 기금이 소진되어 위험하다고 하고 누구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지 말라고 비판하는데, 왜 이렇게 진단이 엇갈리는 걸까?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자, 비정규직, 실업자 등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음 세대는 과연 우리를 위해 계속 연금을 내줄까? 이 책은, 이처럼 궁금하지만 깊이 알기 어렵고, 알수록 헷갈리는 연금 문제를 위한 시민 교과서가 되어줄 것이다. 공적 연금의 시대적 무게가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세대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공적 연금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공적연금

    보편적 노인 수당, 기초연금의 강점은 무엇인가?

    2008년 도입된 기초노령연금이 2014년 7월 기초연금으로 바뀌면서 이 제도의 법적 위상이 ‘보편적 노인 수당’으로 분명해졌으며, 금액도 약 10만 원에서 20만으로 인상되었다. 재정상의 이유로 소득 상위 30%가 제외되긴 했지만, 70%의 노인이 혜택을 받는 준보편적 제도로서 노인의 기본 생활 지원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공적 연금으로서의 기초연금의 강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각지대를 원천적으로 해소한다. 가입자에게만 혜택을 제공하는 국민연금이 노동시장의 격차를 노후에 재생산하는 문제가 있는 것과 달리, 기초연금은 대한민국 노인 대다수에게 적용된다. 기여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회 수당 형식으로 지급되므로 소득 재분배의 효과도 크고 노인 빈곤율 개선에도 바로 효과를 낼 수 있다.

    둘째, 미래 재정의 부담을 연도별로 늘려가는 재정 연착륙 구조의 제도이다. 기초연금은 당해 지출이 발생하고 그 재정을 당해에 마련하며, 노인 수의 증가, 기초연금의 인상 등에 맞추어 필요한 재정을 점차적으로 늘려가므로 특정 시기, 특정 세대의 재정 부담이 갑자기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셋째, 적립 기금 문제에서 자유롭다. 기초연금은 당해 필요 재원을 당해 세금에서 조달하는 부과 방식 제도이므로 기금을 적립할 필요가 없다. 공연히 기금을 적립해 내수를 제약하지도 않고, 불안정한 지구 경제 환경에서 거대 기금 운용에 따른 위험도 피할 수 있다. 현재의 9% 보험료율 구조에서도 국민연금기금은 장차 GDP의 50% 수준에 이를 전망인데, 보험료율을 높여간다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 공적 연금을 강화하려면 기초연금의 역할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

    기초연금의 불편한 진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보수 진영에서는 앞으로 노인 수가 늘어나 기초연금의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을 지적한다. 지급 대상 범위를 취약 계층 노인으로 줄여가자는 취지가 담긴 주장이다. 반면 저자는, 기초연금 재정은 노인 수가 많아지는 만큼 당해 세대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 독소 조항들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러한 기초연금의 ‘불편한 진실’을 조목조목 지적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의 문제이다.

    대다수 노인에게 정액 연금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 대응에 효과가 있는 제도이지만, 정작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이 수혜에서 배제당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 약 40만 명이 매달 25일 기초연금을 지급받은 후 다음 달 20일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보충성의 원리’(기초생활 생계급여는 정부가 정한 생계급여 기준액과 수급자 소득인정액의 차액을 보충하는 급여이므로 늘어난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를 낮춰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유효하지만, 저자는 문제의 본질은 ‘형평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70% 노인들의 현금 소득이 기초연금만큼 일제히 증가하는데, 가장 가난한 노인들만 여기서 배제되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하거나(기초연금으로 인해 소득인정액이 늘어나지 않도록 시행령의 ‘소득 범위’에 기초연금을 포함하지 않는 방식) 국회가 법을 개정하는 해법을 촉구한다. 정부 정책이 어려운 노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적 연금 개혁 모델을 제시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미래 연금 재정의 불안정, 척박한 연금 정치, 시민들의 연금 불신… 이처럼 험난한 지형에서 어떻게 공적 연금을 개혁할 것인가? 친복지국가 경향의 시민단체들이 주창해온 국민연금 중심 개혁 모델도 가능한 대안이다. 그러나 서구와 달리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보험료가 급여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국민연금은 세대 간, 세대 내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용 불안 시대에 연금의 사각지대에 대응하고, 국민연금의 계층 간 형평성을 개선하며, 미래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기초연금 중심의 연금 개혁에 주목한다. 즉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라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해 노동시장의 지위와 무관하게 운영되는 기초연금을 개혁의 중심에 두고 국민연금, 퇴직연금을 적절히 배치하는 개혁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 단계의 1단계 모델과 향후 모색할 수 있는 2단계 모델로 구분해 개혁 대한을 제시한다.

    1단계 개혁 모델 : 기초연금의 내실화와 30만 원

    기초연금의 내실화는 앞서 지적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한다. 가장 가난한 노인이 기초연금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해소하고 40만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에게도 기초연금을 보장해줘야 한다. 둘째, 매년 진행되는 기초연금액의 조정 기준을 물가에서 소득으로 되돌려야 하며 셋째,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의 가입 기간과 연계해 감액하는 방식을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넷째, 지자체의 기초연금에 대한 재정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중앙정부의 재정 사업으로 전환하든지 최소한 현행 국고 보조율 평균 75%를 90%까지 올려야 한다.

    내실화가 기초연금의 구조를 정비하는 일이라면 급여율 인상은 기초연금의 보장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행 기초연금의 급여율 10%를 15%, 즉 30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 상시 노동자의 평균 소득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기초연금 급여율은 약 6%에 불과해 OECD 18개국의 평균 기초연금 급여율 20.1%에 크게 못 미친다. 현행 기초연금의 급여율을 15%로 인상하면 OECD 계산 방식인 상시 노동자의 평균 소득 대비 10%에 육박할 수 있다.

    저자는 1단계에서 필요한 국민연금 개혁안도 제시하는데, 일부에서 주장하는 급여율 50%는 계층 간 급여 격차를 확대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악화시키기에 반대한다. 따라서 사각지대의 개선 및 보험료 상한액 인상에 집중하면서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높여가는 것이 1단계 국민연금 개혁안의 방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취약 계층에 대한 국민연금 보험료의 지원 확대, 크레디트 제도의 강화, 국민연금 보험료가 적용되는 소득 상한 상향 조정, 보험료 인상에 대한 장기적 논의 등이 필요하다.

    “1단계 모델에서 국민연금 평균 소득자의 경우 가입 기간을 20년으로 가정할 때 국민연금 40만 원, 기초연금 30만 원을 받아 공적 연금 70만 원이 된다.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을 받는다면 연금액의 상승 효과는 더 클 것이다.”

    2단계 개혁 모델 : 공적 연금 3원 체계와 기초연금 강화

    공적 연금 개혁은 1단계에서 그칠 수 없다. 노인 부양비는 더욱 높아지고 노인 빈곤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연금 체계도 ‘연속 개혁’의 길을 가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2단계 개혁 모델의 목표는 공적 연금 3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을 공적 연금으로 전환해 제2의 국민연금으로 재구조화하고, 국민연금은 보험료율의 점진적 인상을 통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개선해나가며, 기초연금 역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한국의 공적 연금 체계에서 그 역할을 높여가는 것이다.

    지금 2단계 개혁 모델을 단일 설계도로 특정화하기 어려운 만큼, 저자는 2단계 모델을 세 가지 유형으로 제안한다. 기초연금·국민연금은 1단계 모델을 유지하고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성숙시켜 공적 연금으로 전환하는 A유형, 여기에 덴마크·캐나다처럼 하위 계층 노인에게 5%의 보충 연금을 추가로 제공하는 B유형, 그리고 기초연금의 급여율을 20%로 상향하고 이와 연동해 국민연금의 급여율을 30%로 하향하는 C유형이 그것이다.

    세 유형 모두 공적 연금의 개혁 방안으로서 장단점을 지니므로 미래의 재정 여건과 노인의 빈곤 상태 등을 감안해 이 중 적절한 안을 선택할 수 있다. 공적 연금이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의 3원 체계로 자리 잡는 것이 2단계 개혁 모델의 핵심이며, 세 제도가 각각 강점을 발휘하는 가운데 공적 연금의 총 법정 명목 급여율이 70% 이상 확보될 수 있다.

    연금 개혁과 필요 재정

    저자가 제안하는 1단계, 2단계 모델 모두 공적 연금의 급여를 강화하는 것이기에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기초연금은 급여율이 오르는 만큼 조세 재정을 확보해야 하고, 국민연금은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의 단계적 인상을 도모해야 한다. 전환 연금은 현행 퇴직연금을 재원으로 전액 충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연금 개혁에 필요한 재정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1단계 모델(기초연금 15%+국민연금 40%)의 총 재정 규모는 GDP의 12.5%로 상향된다. 2단계 모델의 경우 A유형은 필요 재정이 12.5%로 동일하며, B유형은 하위 계층 노인에게만 제공되는 보충 연금의 재정 규모가 크지 않아 전체 지출은 GDP의 13% 수준으로 예상된다. C유형에선 기초연금이 2배 인상되지만 국민연금의 급여율이 30%로 낮아져 총 재정 규모는 GDP의 13.4%로 전망된다.

    GDP 대비 13%의 연금 지출은 만만한 규모가 아니다. 그런데 OECD 국가들은 2010~2015년 기준으로 이미 공적 연금에 평균 9%, EU 28개 국가들은 11.3%를 지출하고 있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10%를 넘은 나라는 14개국, 13%를 넘은 나라도 5개국에 이른다. 2013년 기준 한국의 고령화율은 12.2%로 OECD 평균 15.8%에 비해 낮은 편이나 2060년에는 40.1%에 도달할 전망이다. GDP 대비 13%의 재정은 미래 우리나라의 초고령 상황을 생각하면 감당해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 세대의 부담이 갑자기 늘어나지 않도록 세대별 재정 책임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연착륙 이행 경로를 만드는 일이다. 노인 부양비의 상승에 따라 점진적으로 재정 책임이 증가하는 부과 방식의 재정 구조를 가진 기초연금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나는 근래 우리나라 시민들이 품은 조세 정의에 대한 열망에 기대를 가진다. 2015년 연말 정산 사태에서 보았듯 아직 세금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크지만 이것을 단순히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조세에 대한 저항보다는 ‘왜 공평하게 거두지 않느냐’는 조세 정의감의 표현으로 적극 해석할 필요가 있다. 왜 근로소득세만 더 거두느냐, 법인세,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는 왜 방치하느냐는 항변인 것이다.”

    “증세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에 있다. 자신의 요구를 정식화한 것이 정책이라면 이것을 위해 사회적 힘을 모으는 게 정치이다. 지금까지 야권과 시민사회는 ‘정책의 영역’에서 부자 증세를 선언해왔을 뿐이다. 이제는 복지와 세금을 결합해 증세의 정당성을 드높이고, 일반 시민들도 누진 증세에 참여해 부자와 대기업을 압박하는 증세 정치가 필요하다. 복지로 되돌아오는 게 분명하고, 복지를 누리게 될 시민들이 조세 책임에 참여한다면 여기서 조성된 자부심은 상위 계층, 대기업의 누진 과세를 구현하는 실질적인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선언적 부자 증세를 넘어 시민 주도의 공평 과세, 복지 증세로 나아가자.”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