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철밥통들이 파업을 한다구?
    [공공 파업] "공공기관 돈벌이 경쟁은 미친 짓"
        2016년 09월 17일 0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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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파업이다. 그것도 ‘철밥통’으로 불리는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도 상위그룹에 속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9월말부터 일제히 파업에 들어간다. 9월 23일 금융노조, 27일부터 공공운수노조, 28일 보건의료노조가 동시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철밥통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철로 만들어서 튼튼하고 깨지지 않는 밥통이라는 뜻으로, 해고의 위험이 적고 고용이 안정된 직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있다. 항상 그랬듯 정부와 보수언론은 ‘철밥통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일제히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공공

    성과퇴출제 반대 캠페인 모습(사진=보건의료노조)

    철밥통 일자리, 이미 한국에는 없다

    두 가지만 물어보자. 첫 번째 질문, 정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철밥통인가?

    김대중 정부는 IMF를 빌미로 공공부문에 대한 정리해고 등 인력구조조정을 주요 목표의 하나로 진행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 17,000명, 지방정부 28,000명, 공기업 32,000명, 산하단체 14,000명, 출연기관 3,000명 등 약 9만 명을 감축했다. 그리고 이어 공기업 민영화를 단행했다. 당시 공기업만 보면 19개 기관 143,000명 중 22%를 정리해고한 셈이다. 국정교과서, 종합기술금융, 한국중공업,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등 수많은 공기업이 민영화의 길을 걸어 온 것은 다 아는 얘기다. 이 시기 동안 공공부문에서만 약 17만 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는 통계도 있다.

    민영화된 한국통신, 지금의 KT에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가 10년 동안 2만6,500명에 달한다. 그리고 2013년에만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2년 말 기준으로 서울지하철은 구조조정 결과 11,492명이던 정원이 9,87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구의역 참사로 돌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공공부문을 공격한 김영삼, 이명박 정권 아래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당해 온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필수업무유지’라는 독특한 법 조항도 도입했다.

    정부 “성과퇴출제 도입하면 1700억 보너스 주겠다”
    노조 “그 돈을 안정된 청년일자리 만드는 데 사용하라”

    두 번째 질문. 도대체 왜 ‘철밥통’이면 안 되는가?

    해고의 위험이 적고, 고용이 안정된 직장은 오히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외주, 다단계 하청, 파견 등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가 결과가 오늘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고, 국민들의 안전도 위협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규직 철밥통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지금 강조해야 할 것은 비정규직을 없애고, 가능한 많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강제로 성과퇴출제를 도입하기 위해 각 기관마다 이사회를 불법으로 열도록 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당근)로 1,680억 원 이상을 집행하고 있다. 파업에 돌입하려는 공공운수노조는 그 돈으로 안정된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옳은가?

    공공기관에 성과만능주의와 민영화를 도입하면 그에 따르는 위험성이 너무 많다는 것은 수차례 지적해 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과잉진료, 안전위협, 요금폭등을 누가 막을 것인가? 석유공사가 민영화되어 SK, GS칼텍스, 현대 등이 주유소 영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국통신이 민영화되어 마찬가지로 SK, LG, KT의 돈벌이 대상이 된 지도 오래다. 수많은 민자 고속도로와 지하철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철밥통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두환을 만나 인생이 바뀜. 원래는 학교 선생이 소망이었음. 학생운동 이후 용접공으로 안산 반월공단, 서울,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함. 당운동으로는 민중당 및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경험함. 울산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정리할 뻔 하다가 다행히 노동조합운동과 접목.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준)의 전신 중의 하나인 전문노련 활동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결합히게 됨. 민주노총 준비위 및 1999년 단병호 위원장 시절 조직실장, 국민승리 21 및 2002년 대통령 선거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 등 거침. 드물게 노동운동과 당운동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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