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를 당했는데,
    긍정적 마인드 가지라고?
    [진보 구의원의 동네이야기] '권한'
        2016년 09월 09일 04: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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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 초선의 구의원인 정의당 김희서 구의원의 동네 이야기, 생활정치 이야기를 연재한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아래는 필자의 자기 소개 글이다.<편집자>

    정의당 구로구의원. 진보적 지역정치를 늘 고민 중. 혁명으로 세상을 확 바꿔야겠다고 꿈꾸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부터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고 진보정치에 함께하는 방법으로 대중정치활동을 선택한 사람. 자꾸 오른쪽으로 가는 건 아닌지 본인 스스로 늘 경계하는데, 주변 지인들은 그거 맞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음. ‘너 정치적으로 출세하려고 그러냐?’라고 쿨하게 이야기하는 독한 지인도 종종 있음. 그래도 진보의 원칙과 대중운동의 확장 둘 사이에서 늘 치열하게 고민함. 글 쓰는 게 힘들어서 칼럼 하나 쓰려면 하루를 다 소비해야 하지만 동네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진보활동가가 다만 몇 명이나마 늘어날까 싶어서 헉헉거리며 글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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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서 예결위

    김희서 구로구 의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세월호 1주기 집회 때 연행되어 한참 고생하다 얼마 전에 활동하던 노조에 다시 복귀한 후배다. “형님, 힘 좀 써줘야겠어요. 구로구에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부당해고가 있는데 형님이 구로구의원이니까 팍팍 힘 좀 써 주세요”

    구로구 학교에서 일어난 부당해고에 관한 이야기다.

    내용은 이렇다.

    나이가 55세가 넘은 학교급식 조리노동자가 해고를 당했다. 3년 반 넘게 그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근무해오셨고, 문제없이 일을 잘해 오셨는데 계약기간 종료와 함께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거다. 물론 학교와 교육청은 계약 종료일 뿐이고, 재고용을 위한 심사에서 떨어진 것일 뿐 해고가 아니라고 한다. 그 와중에 학교와 교육청은 서로 우리를 찾아와서 이럴 일이 아니라며 상대 쪽과 핑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적으로 따지면 55세 이상이라 무기계약직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거나, 갱신기대권이 있으니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거나 등의 다툼이 있겠으나 그건 노무사나 변호사들이 해결해 주셔야 될 일이고 나는 일단 ‘내가 사는 동네에 억울한 분이 계시니 함께 해 달라’는 걸로 알아듣고 알겠다고 했다.

    ‘제도속의 권한’은 진짜 필요할 때 힘이 못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여러 상황으로 볼 때 ‘구의원의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구청의 기간제 노동자가 해고를 당했거나, 구청이 위탁한 업체에서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다면 ‘구의원의 권한’으로 바로잡을 수 있지만 이 건은 그런 게 아니다.

    교장은 “옆 동네 구의원이 뭐 하러 왔어요? 교육청과 풀겠습니다” 수준으로 대응하면 그만이고, 같은 구로구이기는 하지만 내가 활동하는 지역구도 아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오히려 권한, 책임, 영역 이런 거 철저하게 따지는 공직사회에서 특히 교장선생님들 사이에서 “김희서인가 구의원 있죠? 그 사람 뭐 모르고 여기저기 날뛰는 사람이더라. 구의원이 뭐라고… 자기가 할 일, 역할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더라”는 말 듣기도 쉬워 보인다.

    그런데 권한 밖이면 어떤가? 이번엔 활동가로, 진보정당 당원으로 연대하면 되는 거고, 교장선생님 통해서 동네 유지들에게 몇 마디 들으면 어떤가? 동네에서 진보정치 하겠다고 했을 때는 불만세력으로부터 ‘꼴통’이나 ‘오버한다’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듣는 건 각오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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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해고 노동자

    평화로운(?) 동네에서 목격하는 ‘세계관의 차이’

    교장선생님을 항의 방문하기로 한 날 해고된 노동자를 만났다.

    50대 중반이 넘어선 여성노동자. 대학생 아들의 등록금과 생계를 걱정하는 어머니.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이지만 기왕 노동을 하는데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종사하니 뿌듯하다는 분이셨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정년이 1년 반 남았는데 그때까지만 지금처럼 계속 일하고 싶다는 게 그분의 바람이었다.

    노동조합과 해고자 분과 함께 교장실로 갔다. 여성 교장선생님이셨는데 그분도 50대 중반,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키우고 있고 교육자로서의 자부심이 넘쳐 보이는 분이셨다. 교육청에서 제도가 바뀐 탓에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본인도 답답하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본인이 권한과 제도 ‘안’에서 그동안 급식실 아주머니들께 얼마나 잘해줬는지 설명하고, 본인도 이번 재고용 심사에서 꼭 통과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고된 노동자에게 진정어린 눈빛을 건네며 한마디를 하신다.

    “인생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계기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왜 꼭 이일을 고집하셔요. 더 좋은 일을 찾는 긍적적인 마인드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해고 노동자는 교장실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어처구니가 없었고… 무엇보다 화가 났다. 순간, 가슴에선 무언가 치밀어 오르고, 얼굴이 불그락 해지면서, 머리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뻗쳐나갔다.

    마리 앙트와네뜨가 생각났고.. 식민지를 개화했다는 제국주의 국가 통치자가 생각났고..오갈 곳 없는 철거민을 죽이고도 제 손에 피 안 묻혔다는 정치인, 경찰, 양복 입은 사장, 중간 간부들이 생각났고…서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 보인다는 만화 ‘송곳’의 대사도 생각났다.

    같이 있어주는 것, 편을 들어 주는 것

    같은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이 다른 게 현실인데, 제도 안에서 권한만 가지고 싸워봐야 늘 마찬가지 결과만 돌아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와 권한은,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이 쥔 것은 잃지 않는 수준에서 열어놓은 것이고, 그 안에서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선량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합리적으로 도달하는 결론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교장실 회의에 참석한 사람 모두 협의로는 큰 진전이 없고, 더 강한 투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교장실을 나온다.

    해고노동자는 꾸벅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말씀하신다

    “의원님 고맙습니다. 의원님이 계셔서 큰 힘이 됐어요. 앞으로도 같이 해주실 꺼죠?”라며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신다.

    “네.. 힘내시고요..”라고 이야기하지만

    혼자 속으로 ‘힘이 되기는.. 개뿔이죠, 의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같이 있고, 같이 싸우는 것뿐이죠’

    이럴 때 종종 구의원은 왜 했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편들어 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네 우습게 보지 마라. 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동네가 그렇다. 지역에서의 정치가 그렇다. 정치력으로, 권한으로 한방에 해결해 ‘주는’ 것보다 들어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득권 세력들 사이에는 ‘해결해 주는’ 것도 많은데, 사회적 약자 편에서 함께 할 때는 그렇다는 거다.

    결국 동네 진보 구의원이 하는 많은 일들이 그런 일이다. ‘혹시 해결할 힘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의원인데’ 하는 기대를 가지고 연락이 오거나 또 필요한 분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나의 깃발이 되어 주는 것. 그 깃발 아래서 현장과 현실을 만나고 함께 하는 것. 그래서 밑바닥부터 한 땀 한 땀 조직하는 것. 어쭙잖게 나는 진보적인 지방의원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에도 생각보다 엄청난(^^) 정치가 있고, 어마어마한 세계관의 싸움이 있고, 기득권의 울타리와 그것을 깨려는 싸움이 늘 있다. 한편으로는 정말 재미있고, 즐겁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이런 것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속에서 누군가와는 하나로 묶이고, 또 누군가와는 나뉘게 된다. 함께 지키고, 함께 싸우고, 함께 놀고, 함께 감동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지고 이기면서 말이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조금씩 해볼까 한다.

    필자소개
    정의당 구로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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