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연봉제의 위협,
    노동자들만의 문제일까
    “실적 강요에 환자, 돈으로만 취급”
        2016년 09월 08일 07: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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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악’의 일환으로 강행하고 있는 성과연봉제의 피해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공병원에선 의료수가를 늘리기 위해 과잉진료를 일삼아 의료비용이 폭증하고 경찰·소방 부문에선 내부 경쟁으로 인해 성과를 조작하거나 피의자를 고문하는 등의 사례까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연봉제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문제만이 아닌 국민 전체에게 어떤 피해가 가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저지 시민사회공동행동과 더불어민주당 김종민·한정애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8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부문 성과주의 도입에 따른 국민 피해 증언 및 해결 방안 시민사회 공동토론회’에선 성과연봉제 강행으로 국민에게 전가되는 피해 사례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성과주의

    공공부문 성과주의 도입 시민사회 공동토론회'(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국가유공자 위한 보훈병원에서 과잉진료 남발
    성과 위해 필요없는 검진·검사 권유…부작용으로 호봉제 전환한 사례도

    성과연봉제 도입에 따른 위험이 가장 큰 분야는 안전과 생명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의료부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1회용 주사기를 2~3번 재사용하거나 값싼 주사기 사용, 만성질환자에게 약 장기처방 남발, 신규환자에 대해선 CT·MRI·PET 등 모든 검사를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실시하고 고가의 비급여 진료와 과잉진료가 늘어났다”고 우려했다.

    이는 성과연봉제가 단순히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하다.

    국가유공자를 진료하는 특수목적 공공병원인 보훈병원에선 3급 이상 간부직과 의사직을 상대로 성과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이중진료, 과잉진료 등 국가유공환자를 상대로 진료 건수 늘리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 정책국장은 “국가유공 환자수가 정해져 있는데 진료 건수를 확대하려다 보니 이중진료, 이중오더 등 과도한 검사, 과다처방 등 과잉진료 남발되고 있다”며 “진료 건수를 늘리다 보니 의사 과부하, 진료시간과 상담·설명시간이 충분치 않아 서비스 질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진료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의사들은 사직을 강요당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 정책국장은 이로 인해 의사들은 수익 확대를 강요받고 국가유공환자들을 “건수와 돈으로 취급된다”고 지적했다.

    보훈병원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로 환자가 감소하자 의료기관별, 진료과별로 목표관리제 실적, 전문의별 실적(입원, 외래, 투약일수, MRI, CT, 수술)을 분석하고, 경영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의 구체적 내용은 ▲검사주기 단축 ▲주요 검사((MRI, CT, 초음파) 활성화 ▲단순 투약처방 환자(고혈압, 당뇨 등)를 대상으로 한 검사 및 검진 활성화 ▲외래환자 진료실적 증대 등이 포함돼 있다. 사실상 의료진에게 불필요한 검사·검진을 권유하라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의사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홍성의료원은 월 검사건수에 따른 성과금액을 차등 산정해 지급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 이후 검사 건수는 상당한 수준으로 높아졌다. 일례로 복부초음파검사, CT 검사 등은 필요치 않으면 굳이 하지 않는 검사였으나,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서 복부초음파검사는 기초적인 검사로 전락하게 됐다. 일부는 필요치 않은 검사를 “병원에 온 김에 검사나 한번 하고 가라”는 권유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들은 검사를 권유하면서도 검사의 필요성이나 금액 등에 대해 환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정 정책국장은 “검사 건수가 늘어남에도 병원의 적자경영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더 적은 인원으로 진료지원부서 운영하면서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고 의료사고 등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가 다시 호봉제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서울시동부병원은 정부 방침에 따라 2005년부터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가, 2013년 호봉제로 다시 전환했다.

    특히 성과연봉제는 협업이 중시되는 병원 업무의 특성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제도다.

    정 정책국장은 “부서별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병원의 경우 부서간 이기주의, 부서별 경쟁 등으로 업무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족한 의료용품을 빌려주지 않아 제때 처치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성과주의 맹신이 불러온 참극…경찰, 피의자 고문·폭행 사례도

    이희우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이 이날 토론회에서 소개한 한 사례는 성과주의 시스템이 공공기관 본연의 목적으로 어떻게 변질시키는지 보여준다.

    2010년 3월 이 모씨는 경찰에게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후 폭행당했다며 5월 국가인권위에 진정한다. 국가인권위는 유사한 내용의 진정 3건이 접수된 사실을 확인 후 2009년 8월부터 2010월 3월까지 양천서에서 조사받고 기소돼 구치소 등으로 이송된 32명과 대면조사를 거쳤고 그 중 22명은 고문을 받았다는 진술을 했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고문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양천경찰서 경찰관 5명에 대해 고발 및 수사를 의뢰, 형사재판에서 3명의 경찰관이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인 2008년부터 이명박 정부 하에서 성과주의 강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011년 취임 1주년에 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실적위주 관리가 편법을 낳고 국민을 경찰의 주인이 아닌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면서 성과주의 체계를 도입한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이 정책연구원은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가치관이 성과급 등 과도한 성과주의(실적주의)에 따라 사익을 우선하는 것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며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의 성과주의에 따른 국민의 피해는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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