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한반도는 군주제?
    공화제 채택한 지 100년 지났지만
        2016년 09월 07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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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들을 쉽게 놀라게 하는 영상은 있습니다. 바로 평양 김일성광장의 열병식 장면들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정은 제1비서 등이 등장하자마자 열광하면서 박수갈채를 보내는 군중들… 이를 보는 외국인들에게는 – 그들이 유럽인일 경우 – 아마도 20세기 중반의 유럽 대중독재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한데 이북의 열병식을 균형감각 있게 보자면 한 가지 같이 봐야 할 장면은 또 있습니다. 바로 남한 대통령의 ‘민생투어’ 장면들이죠. 임금이 순행을 오듯이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재래시장이나 그 무슨 서민 동네 국밥집에 오기만 하면 과연 어떤 광경이 벌어지는가요?

    평소에 대통령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쥐박’이니 ‘닭년’이니 별의별 쌍욕을 지어내면서 “국가원수 모독”(?)하는 재미로 소일하는 사람들까지도 웃으면서 절하고 손을 내밀곤 합니다. 극우정권의 실정에 불만 품는 시민이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시고 행차오신 윗분”에게 쓴 소리 한 마디 제대로 할 가능성은요? 거의 없습니다.

    실정, 총체적 난국, 민생 위기 등에 대한 불만은 아무리 깊어도… 결국 임금은 임금입니다. 순행 오시면 백성들이 의당 환대해드려야죠. 임금이 수라상 잡수신 국밥집에는 그 뒤에는 “000 대통령이 국밥 드신 집”이라는 푯말도 오래오래 박혀 있을 겁니다.

    환호

    북과 남의 권력자를 향한 환호들

    독립운동이 복벽운동이라는 종전의 흐름을 극복하고 공화제를 미래의 광복될 나라의 정체로 채택한 것은 1910년대 말, 신해혁명 이후로 공화제가 이미 당연시되는 망명지 중국의 분위기 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딱 한 세기 이전의 일이죠.

    한데 지금도 우리가 꼭 “5년짜리 임금”의 치세 하에서 사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도 그 만큼 막강하지만, 또 실제 정치에서 판은 “윗분” 중심으로 짜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날 여당의 “친박”, “비박”, “구박”, “원박”, “신박”, “신신박”, “복박” 등등으로 짜여 있듯이, 야당 역시 “친노”냐 “비노”냐에 따라 갈라지는 게 적지 않습니다.

    국가의 지도급 인사 천거, 검증, 기용 시스템은? “코드” 아니면 “수첩”입니다. 한국이 과연 민주국이냐 “5년제 군주국”이냐 라는 질문을 던질 때에 “이렇게도 대통령 욕 많이 하는 사회가 있느냐”는 반문이 들리기도 합니다. 한데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죠. 대통령 욕을 많이 하는 이유는, 바로 국가와 사회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는 믿음입니다. 군주국에서 부덕한 임금의 폐정을 비난하는 것이 일반적이듯 말씀이죠.

    지금도 특히 과거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을 이상화시키는 리버럴들 같으면, “괜찮은 야당 인사”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요순 시절이 돌아올 것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국가 시스템이 엉망이고 재벌이 국정을 사실상 좌우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과연 그걸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시절에 신자유주의가 착근된 것이 아닌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말이죠. “착한 임금”이 등극하기만 하면 정말 만사가 형통할까요?

    선거형 군주제(?)의 문제는, 이런 중세적 시스템이 청와대뿐만 아니고 사회의 각 단위를 부패시킨다는 것입니다. 청와대에 “5년짜리 국왕”이 들어 있듯이 사회 모든 구석에서는 새끼 각하와 작은 수령, 오야붕, 보스들이 득실거립니다.

    사실상 세습왕국에 가까운 재벌기업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죠. “재벌 3세” 같은 말에 대해서 사회적 저항감도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한데 교회 목사를 봐도, 불교 대학 이사장이나 총장을 봐도, 심지어 상당수의 시민단체를 봐도 역시 군주국이나 조폭과 다를 게 없는 ‘보스 중앙집권제’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서의 자원 총동원을 수월케 하는 장점은 있다지만, 평상시에 조직의 합리적 운영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명박이 우두머리가 되는 상황에서는 수십조 세금의 탕진을 막을 만한 국가시스템이 없고, 박근혜가 등극되고 나서는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 배치와 같은 우거, 폭거를 막을 만한 시스템 역시 없습니다. 사회의 각급 각층 조직, 단체들도 마찬가지죠. 그 누구도 바로잡지 못하는 오야붕의 잘못으로 운영난에 빠지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리고 인권/노동권 침해는…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죠.

    “군주제 시스템”이 아니라면 “인분 교수”가 자기 제자를 오랫동안 인분을 먹이는 등 말 못할 방식으로 괴롭히면서 나머지의 자기 수족들까지도 그 폭력극에 동원시킬 수 있었을까요?

    우리에게 진짜 민주주의가 언제 올 거냐면, ‘민생투어’ 떠난 미래의 또 다른 박근혜에게 가면 갈수록 삶이 빠듯해지는 주민들이 면전에서 “박근혜 씨, 국정을 잘 못하십니다. 이런 식으로 생색내시지 말고 집무실에 돌아가서 자기 일이나 똑똑히 하시지, 왜 해야 할 일도 못하면서 이렇게도 많은 월급을 타시나요?”라고 면박을 줄 수 있을 때입니다.

    대학원생 홍길동이 지도교수 박놀부가 자신의 논문도 제대로 보지 않고 지도에 따르는 수당만을 챙기는 걸 보고 “박놀부 씨, 죄송하지만, 학교 규정에 따라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야말로 한국 대학은 공부할 만한 곳이 될 겁니다.

    한데, 공화제를 형식적으로 채택한 지 100년 지나도 아직도 군주제와의 이별은 제대로 되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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