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얀바댐, 평화의 댐 그리고 4대강
    [일본의 일상] 1952년부터 2009년, 57년간 건설중인 댐
        2012년 08월 06일 0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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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년만에 중단된 공사 계획

    2009년 8월 30일 일본의 총선거로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54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국책사업의 54년 묵은 먼지를 털기 시작하는데 눈에 띄는 공공사업 중 하나가 무려 57년간 진행 중에 있는 얀바댐이었다. 이 얀바댐 사업은 전국 댐계획 중단 134개의 목록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계획이었다.

    군마현에 있는 얀바댐은 애초에 1949년에 치수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당시 건설성(지금의 국토교통성)의 계획이었다.

    태풍 리스린급에 대비해 수도권 윗지방 토쿄의 인접한 북쪽 군마현 도네강에 7300만톤급의 초대형 댐을 세워야만 수도권 1도(토쿄도)5현(치바, 가나가와 요코하마)의 수해대책이 될 수 있고, 향후 경제발전에 대비한 생활용수및 공업용수의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다목적댐 건설계획이었다.

    1949년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지만, 어쨌든 나는 이 자료를 읽으며 문득 평화의 댐이 생각났다. 내가 중학생 때니까 1980년대에 있었던 평화의 댐은 국민들의 코 묻은 돈을 긁어모아 만들어졌고,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의 대국민 사기극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댐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2329억원으로 보수공사를 한 평화의 댐에 올해 다시 들어갈 예정인 보수공사 비용은 무려 1650억원 수준이다.(한겨레보도 7월 16일)

    돈먹는 하마 다목적 댐

    평화의 댐에 들어가는 유지보수 비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댐은 그 건설 효과에 비해 유지보수 비용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돈 먹는 하마이다.

    전세계에서 치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역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 외에 댐으로 누릴 수 있는 효과는 건설 및 유지보수 비용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고, 그래서 근년에는 개발도상국에서도 댐 건설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다목적댐 건설은 1970년대까지 활발했던 토건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업이다. 제네콘이라고 불리는 건설재벌에게는 다목적 댐 건설 사업계약은 노다지에 해당했다.

    일단 댐을 계획하면 건설비는 진행 시점에 따라 얼마든 불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댐 본체에 드는 건설비는 물론 부대비용으로 토지 매입에 드는 비용부터 수몰지역 보상비용, 수몰지역 주민이주지 조성 비용, 댐 주변지역 도로 건설 비용, 댐 주변지역의 산사태 예방 지반보강 비용, 댐 건설시의 우회천 건설비용, 우회천 복구비용…… 명목만 만들면 끊임없이 새로운 건설 비용이 추가되고 댐 계획을 제로로 돌리지 않는 한은 피할 수 없는 부대공사 비용이 끝도 없이 생겨날 수 있었다.

    사진 설명: 얀바댐이 세워질 온천마을 아가츠마산의 오래된 풍모의 철로와 다리.. 얀바댐이 세워지면 이 아름다운 풍광이 전부 물에 잠긴다

     이것만으로도 댐 건설은 건설재벌의 노다지일텐데, 특별히 얀바댐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존재했다.

    1949년에 계획되어 1952년에 확정 계획으로 발표된 도네강 8개 댐 건설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중단되었다.

    수질이 문제였다. 산성천인 도네강 지류는 산성 수질이 시멘트를 삭히기 때문에 애초에 댐을 만들 수 없는 지역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문제로 한동안 중단된 댐 계획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얀바댐을 만들기로 한 지역 상류에 석회 공장으로 세우고 석회수를 흘려보내는 것으로 산성수질을 중화시키는 계획으로 수정된 것이다. 그런데 산성 수질을 중화시키는 석회수는 이번에는 침전물을 만들어내었다.

    그래서 이 침전물을 거르는 작업을 위한 댐을 건설했다. 그러나 불과 3년만에 이 침전물 제거 작업을 위한 댐은 침전물로 꽉차서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바지선을 띄워서 침전물을 걸러서 덤프트럭에 실어 주변 석회산에 묻기 시작했다. 이 침전물에는 비소 등의 중금속까지 섞여있어서 2009년 당시에 두곳의 침전물 매립지를 채우고 세번째 매립지를 찾아헤매다가 겨우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면서 논란이 갈수록 커지는 이 댐을 세워야할 이유를 아무도 납득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댐건설계획은 진행되었다.

    사진 설명: 얀바댐 상류의 석회중화사업으로 인한 침전물 처리 장면

    지역운동의 성쇠

    1960년대엔 일본 곳곳에서 댐 계획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만큼 일본 전국에서 무작위로 다목적댐 계획이 추진되었고, 본래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일본인들에게 자기가 나고자란 지역이 수몰지역이 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는 식민지 시절과 전쟁을 겪어 고향을 잃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한국인과는 매우 다른 점이었다.

    게다가 얀바댐의 경우에는 애초에 산성천이었던 이유가 유명한 온천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댐 건설하자고 그 지역경제의 기반에 해당하는 온천관광 지역을 수몰시키겠다는 황당한 계획에 지역주민이 쉽게 동조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가장 오래전부터 가장 길게 반대운동이 이어져 오고 있고 지금도 반대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2009년 일단 스톱이 걸리기 전까지 57년이나 이어져온 계획으로 마을주민은 두패로 갈렸다. 반대운동을 이어온 주민과 기왕하는 사업 빨리 끝내달라는 주민으로 나뉘어서 서로를 원망하고 분쟁이 생겨 한때 오손도손 살아가던 온천마을은 완전히 와해되고, 이 반대운동에 외지인들도 수도권 지역운동으로서 참여하다보니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다큐멘터리 자료를 보면서 지금의 제주도 강정마을의 모습과 겹치는 지점이라고 생각되었다. 무분별한 국책사업이 지역을 어떤 식으로 파괴하고 사람들의 보금자리와 공동체로서의 터전을 어떤 식으로 해코지 하는 가가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진행하는 국책사업을 경제면에서도 지식면에서도 이길 수 있는 지역과 주민은 별로 없었다.

    더구나 1970년대의 대학생들의 안보데모에서 발생한 패착들이 지역운동에도 영향을 미쳐 데모 자체가 불온시되고 금기시되는 움직임이 사회전반에 만연하게 되어 대부분의 댐 반대 지역운동은 빠르게 그 기세를 잃어가고 십년, 이십년이나 계속된 분쟁 속에서 고령자는 기력을 잃고 젊은이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면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비로소 일본 전국의 댐 건설은 본격화되었다.

    1960년대의 안보투쟁시절과 1970년대의 안보투쟁시절은 확연하게 달랐다.

    1960년대의 안보투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의 미일 불평등협약에 대한 반감과 주로 베트남전쟁 반전을 기반으로한 운동이었고, 2차대전 후 패전국 일본이 빠른 경제회복과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생긴 각종 사회적 억압에 대한 반발이 운동의지지 기반이 되었다. 각종 지역운동, 개발사업에 비판적인 사회운동 등에 재일한국인들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가치와 모색들이 나타나는 시기가 60년대였다.

    하지만 1970년대 격화된 학생운동의 패착-정파적 분열과 총괄이나 무장투쟁으로의 전환 등-은 1960년대에 발현된 다양한 사회적 가치의 싹을 자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자민당 정권으로서는 정권 기반을 든든히 하고 지배세력의 입지를 굳히는 빌미를 잡은 것이었다.

    또 하나 이런 움직임은 1970년대 일본 사회운동의 방향을 엉뚱하게 틀어버리는 역설적 경우를 만들어내는데, 긍정적인 경우로는 지역 생협운동으로 발전하였지만, 부정적으로 전환된 중에 하나가 원자력 발전소이다. 당시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클린에너지로 이해했고, 각종 사회단체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많이 생겨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편으로는 지역운동과 사회운동을 억압하면서 한편으로는 포섭된 사회단체를 어용화시키는 양가정책을 폈다.

    이러한 배경으로 국책사업과 토건재벌은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성장해갔다.

    일본의 토건사업은 댐, 도로, 철도, 발전소등 이 주된 것이지만 특히 원자력 발전소나 철도는 자민당 정권이 지역선거에서 표심을 사는 중요한 요소이고 개발 공약이었다.

    총선거를 통해 정권 유지를 해야하는 일본의 정치구조의 특성상 표가 필요한 지역에 철도와 발전소를 유치하는 것은 지역구 의원의 핵심공약인 것이다. 그래서 자민당 의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회의원들의 토건재벌과의 유착관계는 뗄레야 떼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갔다.

    댐들의 무덤

    2009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134개의 댐 건설을 중단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3개의 댐이 완공되었다. 그러나 산사태나 부실 공사 등으로 아직 가동을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의 얀바댐은 1000억엔대로 시작한 공사비가 댐 건설 사상 가장 엄청난 공사비인 4600억엔-한국 돈으로 약 6조원-으로 공사 집행비가 불어났고, 집행은 3300억엔이 진행되었으나 아직도 본공사는 시작하지도 못했으며, 2015년 완공을 계획으로 국도의 우회도로 조성 및 이주지 조성 등에 시간이 허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공사비는 8800억엔까지 더 늘어날 계획이라고 반대운동 측에서는 밝혔으나 사실 얼마가 더 늘어날지는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 일본 내에서 건설은 되었지만 각종 이유로 가동을 하지 못하는 댐이 8곳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 댐들은 수력 발전력도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댐들이 세워지기 전에 발전소에 공급하던 물들을 댐 공사를 이유로 중단하면서 돌아가던 발전소 터빈이 멈추고, 이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인한 손해 보전비를 세금으로 토쿄전력에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무덤화된 댐들은 주변경관을 해치고, 지역주민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고, 콘크리트덩어리로만 존재하고 있는 꼴이다.

    그 와중에도 댐의 유지 보수비는 전력회사나 관리회사에 지불하지만, 댐이 가동하지 못하면 지역 자치단체는 댐 가동으로 인한 교부금을 받을 수 없어 댐 건설에 들어갔던 지출을 보전할 길이 없어서 지역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아직 얀바댐은 건설중이다. 54년만에 이루어진 정권교체도 막을 수 없었던 댐 건설의 심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관료주의 국가정책의 어두운 일면일 것이다.

    건설경제의 어처구니없는 결말

    얼마전에 누군가 TV에 출연해서 4대강으로 휴가가라고 권고(?)했다는 얘길 들었다. 나는 악취와 녹조에 대한 미학적 견해따윈 가지지 않았지만 그게 누군가의 취향이라면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보수와 유지를 필요로하는 녹색성장 따윈 국가경제에도 국가건강에도 지역경제에도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낙동강 녹조현상

    22조를 4대강 사업에 쏟아부었지만, 사실 주변 땅값에 들어간 사적 비용들, 앞으로 4대강에서 생길 각종 문제점 해결 비용, 홍수재해나 가뭄으로 인한 우회적 비용, 지역경제가 치러야할 비용들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치수는 원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대강이든 평화의 댐이든 핵발전소든 간에 거대한 건설 계획이 가지는 커다란 맹점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변수를 계산할 수 없고, 그 변수에 의한 늘어나는 비용을 계산할 수 없고, 심지어 그 변수로 인하여 건설효과는 기대치만큼 나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면 건설로 인한 파괴와 피해는 매우 확연하고 뚜렷하다. 건설비용으로 인한 재정 압박과 지역 파괴로 인한 지역주민의 터전 상실, 지역주민들의 유출로 인한 지역경제의 파괴 및 지역경제의 침체는 몇푼 안되는 교부금으로는 도저히 보전할 수 없는 성질이고 또 보전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이다.

    단순히 환경 파괴라는 감성적 접근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도 건설 경기 부양이 가지는 헛점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자료를 4대강과 관련해서 찾을 수가 없었다.

    4대강과 관련해서 지금 유일하게 두물머리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두물머리 투쟁이 정권에 대한 감정적 반감이외에 무엇에 근거해서 이어갈 수 있는지 좀 더 고민해야할 것이다.

    그나마 정권마다 정책이 바뀌어 57년씩이나 미련하게 건설 계획을 끌고나가지 않을 한국사회가 좀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일당 지배로 관료주의가 지나치게 견고한 일본 사회에서는 그 건설 계획에 커다란 비리가 발견되지 않는 한 중단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서 중단하고 싶어도 중단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필자소개
    일본 후쿠오카에서 14년째 살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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