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위기의 본질, 기업화
    자본의 경제영토 확장 대상이 대학
        2016년 08월 22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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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늘 북유럽 일한학회 (NAJAKS)를 마치고 오슬로에 돌아왔습니다. 학회에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감원 바람”에 대한 타령이었습니다. 호주국립대, 코펜하겐대, 헬싱키대…”철밥통 중의 철밥통”이었던 대학 교직원은, 인제 상당수 나라에서 언제든지 필요할 때에 잘라도 되는 일반 회사원의 신분이 된 셈입니다.

    열심히 잔업까지 하지 않으면 내 책상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는, 이제 정규직 연구자들에게도 점차 일상이 될 전망이죠. 회사원처럼 강원 당하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대학과 일반 기업체의 차이는 점차 없어져갑니다.

    교내에서 백화점처럼 가게들이 막 생기고, 이번 이대에서 겨우 막아냈지만 많은 대학들이 “부대사업”으로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대한민국에서야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대학마다 중국에서 캠퍼스 하나씩 세워 중국 학생 등록금으로 장사하려는 미국 “명문” 사립대들도 다를 게 없고… “대학 업계”, “고등교육업계” 같은 표현은 이제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업계”에요.

    대학 위기의 본질은 대학 기업화를 강요하는 체제의 압력입니다. 국가 지원을 줄이거나 한국처럼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돈을 무기 삼아 휘두르고 비정기적으로 해주는 경우 사실 대학으로서 선택의 여지도 별로 남지 않죠. 어디로부턴가 교직원 봉급비와 건물 유지비를 일단 따와야 하잖아요. 한데 이런 압력은 절대 우연도 아니고 어떤 특정 권력자의 음모나 무지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한 특징을 나타내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 확대재생산을 위해서 계속해서 “확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체제입니다. 신시장 점령, 신상품 개발, 새로운 욕망 만들어내기, 새로운 자원 침탈… 자본의 경제영토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바로 과잉생산이나 원료값 등귀, 마진 증발 등의 위기들이 오죠. 그런데, 1990년대 초반에 동구권과 중국, 베트남 등이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고 나서는 지리적으로 새 경제 영토 획득의 가능성은 희박해졌습니다. 물론 북조선은 남아 있지만, 그 시장 규모는 – 아무리 개방해도 – 얼마 되지 않는 거죠.

    인터넷, 전자 관련 90년대 이후 신상품들도 이미 한계를 드러내 과잉생산 단계에 진입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자본이 지리적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만큼 부문적으로라도 확산돼야 하는 것은 이윤체제의 논리죠. 그래서 최근 20여 년 동안 한국 자본의 운동을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들은 괄목할 만합니다:

    대학

    이미지 출처는 참세상

    – 대학에 대한 자본의 식민화 정책 : 자연과학계/이공계 등은 자본의 기술개발센타 역할을 강요받습니다 (“산학협력”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꾸며지지만요). 이윤 창출에 필요 없다는 인문사회계열은 고사를 당하거나 “기업인문학” 차원에서 기업가/임원들의 “교양”으로 이용됩니다. 대학이 스스로도 기업화되면서 졸업하자 바로 기업의 이윤창출 재료인 “인력”이 될 수 있는 완벽한 “인간제품”, 즉 취업 확률이 높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을 그 존재의 의미로 삼게 됩니다.

    – 의료에 대한 경제 영토화 정책 : 영리병원 설립 허용 쪽으로 계속해서 의료정책을 밀고 가는 것입니다. 의료관광을 전경화시켜 중점 사업으로 키우는 것도 이 노선과 직결돼 있습니다.

    – 특히 아동, 청년층의 여유시간에 대한 식민화 정책 : 동년배 사회에서 배척 받지 않으려면 시간나는 대로 컴퓨터게임하는 문화를, 게임을 스포츠로 인정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냈는데, 그 틈새에 업자들이 들어가서 이제 각종 게임으로 열심히 청년층의 소비자화, 탈지식화를 유도합니다.

    – 대민 폭력도 상당 부분 민영화돼갑니다. 노조 파괴를 (옛날의 안기부 대신에) 창조컨설팅이 해주고, 노동자에 대한 직접 폭력도 이제 경찰보다 많은 경우 용역업체 직원들이 휘두릅니다.

    더 이상 신시장, 신상품, 신기술, 신소재로 확대재생산이 어려워진 한국자본주의라는 괴물은, 이제 새로운 이윤의 원천으로 교육, 의료, 여유시간/놀이/레이저/웰빙, 폭력/폭압 관련 “서비스”까지 노리는 것입니다.

    대학이 “위기”에 빠졌다기보다는, 말하자면 자본의 새로운 먹이감으로 그 수라상에 올려 진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행동적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먹히고 마는 과정도 얼마 걸리지 않아 가까운 미래에 (주)모대학이 “우리 학교 와주시는 고객 분들이 졸업과 함께 바로 취업 안 되시면 등록금의 …%를 돌려드립니다”와 같은 광고로 고객 (옛 “학생”)을 삐끼하고 있을 것입니다. 늦기 전에 우리가 이런 논리에 당당하게 “노”를 외쳐야 합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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